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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창인 Mar 07. 2020

82. 거짓말 3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 아는 이와 같으면 괜히 그를 대입하여 읽게 된다. 내가 요즘 잡히는 대로 소설을 읽기 시작한 것도  때문이다.  이름은 흔하지 않아 여느 작가의 피사체가 되기 어렵다. 덕분에  보물찾기는 나에게 더욱 즐거운 경험이다. 세상이 센을 부를  나는 치히로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


  그럼에도 나의 주파수와 공명하지 못하는 활자들에 파묻히는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이름으로  글을 쓴다. 하얀 에이포 종이 앞뒤를  이름  글자로 꽉꽉 채워 낸다. 나는 호격 조사가 없는 호명을 사랑한다. 손가락에 덕지덕지 묻은 흑연마저  흔적이라 생각하며 지우지 않고 잠에 든다.


  그마저 여의치 않을 때가 있다. 종이도 흑연도 없이 침대에서 홀로 우울과 씨름하는 때가 그렇다. 그러면 나는 검지손가락으로  이름을 울어버린 벽지에 그린다.  같은 위치에서 끝을 맺는 너의 이름은 엉성하게 마감질한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부유하는 조각들을 끝내 끌어안지 못하는 밤에 나는 나쁜 꿈을 꾼다.


  그런 꿈은 팔다리가 온통 묶여 아무것도   없는 어둠이다. 그러면 나는 겨우 입술을 움직여  이름을    만들어낸다. 아침 이르게 나를 찾아온 너는 침대에 걸터앉아 내가 잠꼬대를 했다며 웃는다. 나는 짐짓 불안한 얼굴을 하며 무엇을 말했는지 묻는다. 그러나 속으로는 어둠이 가신 방에 감사할 뿐이다. 내가 아는 언어는 오직 너밖에 없기 때문이다.


20.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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