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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창인 Feb 28. 2020

81. 모든 것

1.
  지구인은 과하게 좋은 기술을 믿지 않는다. 핸드폰의 배터리 잔량이 나흘 넘게 100%라면 디스플레이를 의심한다. 한 달 넘게 상하지 않는 빵은 되려 먹기 싫다. 순간이동 체험의 1번 타자가 되는 것은 망설여진다. 쿤의 과학혁명은 기술 발전에도 잘 들어맞는다. 지구인은 적당한 기술의 패러다임을 내면화하며 산다.
  따라서 패러다임을 깨는 기술은 요란하게 등장한다. 스티브 잡스는 한 시간 반 가량의 대형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첫 아이폰을 선보였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기술 개발자는 자신의 작품이 가지는 충격량을 얼추 맞게 짐작한다. 그만큼의 소란을 떨었을 때 지구인은 비로소 무언가 터졌음을 안다.


2.
  나의 관심은 기술에서 소란으로 넘어간다. 인지의 핵심은 결국 소란에 있기 때문이다.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순간. 고흐가 귀를 자른 순간. 이센스가 감옥에 간 순간. 그 소란이 모든 것을 다시 태어나게 한다.
  소란은 동시에 이미지다. 디지털 파편.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봉준호의 사진.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 에넥도트. 이미지는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소란은 이로써 모든 것을 대표한다. 졸지에 벌어지는 일이면서도 매우 필연적이다.


3.
  이제 나의 관심은 소란에서 모든 것으로 넘어간다. 한 지점에 수렴했던 모든 것들을 펼쳐 놓을 우주가 필요하다. 지구인은 우주를 가질 수 없지만 우주를 꿈꿀 수는 있다. 떠들썩한 파티 뒤에서 둘만의 버거를 먹는 루니 마라와 호아킨. 무중력을 무대로 춤추는 이브와 월-E. 이 또한 하나의 이미지임에도 나는 그 안에서 영겁의 시간을 그린다. 내일 또 수백 개의 소란이 나를 덮치고 나는 그로 인한 희로애락의 바다를 헤엄친다. 그러나 단 하나의 소란이 품고 있는 모든 것은 바다 위 초승달처럼 엷게 서린다. 나는 나비가 되어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을 두르려 한다.


20.02.28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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