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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창인 May 21. 2020

83. 하낫 둘 셋 넷

하낫-.

비척이며 걷는 젊음

우리가 팔고 온 삶은 어느 지하벙커에 모아뒀을까


둘-.

흙먼지 날리는 트럭에 대고 분대장은 경례한다


셋-.

늦봄부터 사막처럼 달궈진 연병장

벚나무는 이제 아름다운 것을 겨우 붙잡고 서는데

우리는 못생긴 쇳덩이를 잘만 고쳐잡는다


넷-.

옆 분대 안경잡이는 고작 일주일 만에 돌아왔다

논산에서 아버지를 잃으면 허락되는 시간

네가 여기 있으면 안 되지

너는 돌아오면 안 되는거지

욕된 애도를 중얼거리며


우리는 사람을 죽이는 법은 배웠지만

죽은 사람을 잊는 법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하낫- 둘- 셋- 넷-

하낫- 둘- 셋- 넷-


한줄기 비행운이 퍼런 도화지를 부욱 찢어발기고

태극기는 죽어서 죽어서 꼿꼿이 서 있고

발밑 덤불엔 거미가 잰걸음으로 지나가니


나는 공연히 총구로 모래를 들쑤시며

꾸벅꾸벅 졸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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