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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창인 May 25. 2020

84. 파도 2

1.
  여행이 젊음의 특권이자 유사 의무인 시대다. 십대에는 나도 그 시대의 자랑스러운 일원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스물의 여름 이후로 여행은 빠르게 나를 외면해 갔다. 여행이란 단어가 도저히 잡히지 않는 이유는 역시 돈.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했다. 반쯤 맞고 반쯤 틀린 얘기다.
  삶의 아픔을 저울질할 수는 없지만 돈의 무게는 잴 수 있다. 부모님께 받는 돈과 스스로 버는 돈의 무게는 다르다. 두 축을 고려했을 때 나의 사람들은 네 개의 유형으로 나뉜다. 부모님께 모든 경제적 지원을 받거나. 부모님께 경제적 지원을 받되 여분의 생활비 정도를 스스로 벌거나. 경제적 지원 없이 스스로 돈을 벌어 살거나. 스스로 돈을 벌고 가정에 경제적 지원까지 하거나. 나는 셋째 유형에 속하지만, 나의 사람들 대부분은 첫째 또는 둘째 유형에 속한다. 나는 어째서 (돈에 한하여) 이질적인 유형의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가? 매우 풍족한 유년 시절을 살았기 때문이다. 부모님께서는 교육에 할애할 여력과 열정이 충분하셨고, 장남인 나는 그 혜택을 오롯이 받았다. 덕분에 이후의 경제력과 관계 없이 든든한 학벌을 얻었는데, 이곳에는 여전히 풍족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좋은 학벌은 순전히 돈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훌륭한 자산이다. 가끔 내부자들 사이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보이는데, 나는 그것이 기만으로 보인다. 이십 초반에 고액 과외를 손쉽게 잡을 수 있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다. 나 역시 그 특권을 누릴 기회가 주어졌고, 그래서 셋째 유형에 속하면서도 크게 힘들다는 느낌은 없었다. 단지 목돈을 마련하기가 힘에 부쳤던 것. 그리고 ‘긴급 수혈’이 안 되기 때문에 늘 여윳돈을 쥐고 있어야 했던 것. 이쯤은 발에 박힌 가시처럼 가끔 나를 아리게 하는 것들이었다.
  일상을 사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여행은 목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여행은 늘 나에게 후순위였다. 방학만 되면 사람들의 인스타그램은 방구석에서 볼 수 없는 장면들로 도배되었다. 그것은 피로감인 동시에 질투였다. 새 옷이나 컴퓨터 등을 장만했다는 자랑은 괜찮다. 소비되는 경험이니까. 그러나 여행을 몇 번 가보지 않은 나에게도 그 장면들은 기억이자 배움이 될 것 같았다. 정말 그럴 것만 같았다. 피로감인 동시에 질투. 질투가 주는 피로감. 그래서 여행은 점점 여우의 신포도가 되어 갔다. 방구석에서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도 여행만큼의 값어치를 한다고 되뇌었다. 여행은 나를 외면하고 나도 여행을 외면했다. 그 이유는 역시 돈. 반쯤 맞고 반쯤 틀린 얘기다.
 
2.
  그러나 나는 한번도 신포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포도가 눈앞에 떨어져 있었다. 파도 3 때문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여행의 적기 중 하나는 입대 직전. 동현과 나는 그 시간을 앞두고 있었다. 논의 없이도 우리는 어느 대륙을 갈지 알고 있었다. 유럽은 그만한 상징이 되기 때문이다.
  한번도 밟지 않았던 대륙에서 스무 날을 지낸다는 것은 설렘인 동시에 두려움이었다. 우리는 부푼 마음만큼 손발을 움직이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은 일들을 우리는 내일로 미뤘다. 무엇이라도 시작해야 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설렘은 줄었고 두려움은 커졌다. 여행은 변수를 안고 간다지만 우리에게는 변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라도 하고 봤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400만원을 주고 변수를 살 깜냥이 못 됐다.
  그 즈음 코로나는 이미 우리 곁에 있었다. 지금처럼 무서운 얼굴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의욕을 떨어뜨리는 사건이었다. 코로나라는 또 다른 변수. 변수가 지긋지긋해졌다. 반신반의할 만한 형국이었는데, 동현이 반신(半信)이라면 나는 반의(半疑)였다. 이미 예매해 둔 비행기표를 취소했을 때 제값을 못 받는 것도 하나의 걸림돌이었다. 결국 그 돈을 물고 여행을 취소한 것은 전적으로 동현의 양보였다. 그때는 우리가 이탈리아에서 받을 시선이 두려웠는데, 지금은 이탈리아가 두렵게 됐다. 여행을 취소한 것은 결과적으로 다행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결과론이고 나는 여전히 동현에게 마음이 쓰인다. 옳고 그름이 아닌 마음의 엇갈림은 후유증이 오래 간다.
  그래서 써버렸어야 할 큰돈은 여전히 수중에 있다. 여윳돈에 대한 강박이 있는 나는 이 사실에 묘한 안도감까지 느꼈다. 나는 그 안도감이 끔찍하게 싫었다.
  어쨌든 파도는 쳤고 이대로 잦아들 수는 없었다. 우리는 남도를 택했다. ‘어디를 가는지보다 누구와 가는지가 중요하다’는 우리가 되풀이해야 할 슬로건이었다. 그러나 어디를 가는지는 중요했다. 유럽은 하나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동현은 나보다 더 큰 상실감을 입속에서 조용히 굴렸을 테다.
  취소 수수료를 제한 돈만으로도 남도 여행을 족히 갈 수 있었다. 이미 손을 떠난 돈이라고 생각하니 쓰기가 쉬웠다. 목포에서는 산낙지와 회를 먹는 데만 10만원을 넘게 썼다. 여수에서는 고급 호텔에 묵고 패러글라이딩을 했다. 그러나 결국 내가 사랑한 곳은 해남 땅끝마을이었다. 세상의 끝은 믿을 수 없는 고요였다. 그날은 온몸을 휘감는 바람이 불었는데도 그저 고요했다. 바다와 동현 그리고 길고양이 몇 마리만이 있었다. 존재가 극히 적은 공간은 그 여운으로 가득 찬다. 나는 여운에 휩쓸려 바다에 빠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파도 한 번 치지 않는 바다였다. 목이 마르게 탐나는 멸망이었다.
  여행이란 단어가 도저히 잡히지 않는 이유는 역시 돈. 그런데 한푼도 들지 않은 여행지를 가장 사랑했다면. 두르던 것이 이토록 쉽게 벗겨진다. 이토록 쉽게 벗겨질 것을 두른다.
 
3.
  입대가 여행을 만들고 여행이 돈벌이를 만들었다. 파도 3이 파도 2를 만들고 파도 2가 파도 1을 만들었다. 그 사이사이에 무수한 잔물결들이 있다. 나를 붙잡던 온 힘을 내려놓고 그 연쇄작용에 몸을 내던질 수 있다면. 그러나 가장 작은 저항에 나는 가라앉고 만다.


  이 글은 완성되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삶은 삶이고, 돈은 돈이고, 삶은 돈이 아니고. 그런데 이따금 삶이 돈으로 느껴지기도 한다는 등의 말을 쓰려던 것 같다.

  파도 2는 이미 모래알에 스며들었다. 벌써 세 번째 파도가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러므로 더 이상 지나간 파도에 멋진 마무리를 부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 지금 여기는 유통기한이 지났다. 그럼에도 미완의 글을 공유하는 것은 투박한 기록에서 파도의 골을 얼추 짚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은 그걸로 됐다.


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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