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음악이 더 궁금한데요

그간 제니의 음악성은 과소평가되어 왔다

by 빨간망토 채채

작년 12월에 로제의 첫 솔로앨범이 나온 이후, 올 초가 되니 리사, 제니의 솔로 앨범이 연달아 나왔다. 다들 칼을 갈고 준비한 듯, 저마다의 매력을 지녔기에 듣는 이는 기쁠 뿐이다. 팝(대중음악) 장르를 좋아하는 나는 연말 로제 앨범도 전곡을 굉장히 자주 들었고, 리사 앨범도 선발매 곡들을 좋게 들었다. 그렇지만 같은 시기에 앨범 단위의 결과물이 연달아 나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비교를 하게 되는 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취향의 영역이다 보니 개인의 호불호가 갈리는 건 어쩔 수 없음을 참고하시기 바라며 글을 시작해 본다.




굉장히 팝 앨범, rosie

로제의 솔로 앨범 「rosie」는 생각했던 방향과는 달라서 의외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로제가 추구하는 색깔이 굉장히 딥한 알앤비가 아닐까 싶었는데 굉장히 대중적인 '팝' 앨범이라 의외였다. 아무래도 첫 앨범이다 보니 대중을 고려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kpop artist로서 출발했고, 소속사가 추구하는 바도 있을 테고. 온전히 본인의 니즈만을 내세우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추측을 해본다. 그런데 로제가 또 작사작곡에 적극 참여했다고 하여 의문이 들긴 했다. 무튼 좋았던 트랙은 가장 진솔한 가사의 'Number one girl', 'Not the same', 희망찬 마지막 트랙 'Dance all night'.

4111311.jpg rosie 앨범 커버 (이미지 출처: 벅스뮤직)

근데 이런 생각을 나만 했던 게 아닌 것이, 이 앨범이 Taylor Swift의 노래 같다는 평들을 곳곳에서 마주쳤다. 나쁜 의미라기보다 '로제'가 지닌 음악적 색깔 때문에 의외였다는 측면이 클 것이다. 그리고 뭐랄까. 이 앨범을 통해 로제의 솔직한 사랑 경험을 '일부' 느낄 수는 있었지만, 그게 개인적인 수준으로까지 '와닿지는' 않았다. 그냥 사랑 노래라는 느낌이고 프로듀싱된, 타자화된 앨범이라는 생각이 더 들었다. 보컬도 너무 기교만을 강조하는 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무난히 듣기 좋은 웰메이드 팝 앨범임에는 이견 없다.




'멋'이 있는 앨범, Alterego

리사의 솔로 앨범 「Alterego」는 더 '힙함'을 가미한 앨범이었다. 일단 선공개 싱글들이 너무 임팩트가 강했다. 태국 댄서&크루들과 함께한 뮤직비디오가 인상적이었던 'Rockstar', Rosalia와의 'New woman', RAYE와 Doja cat이 가세한 'Born again'을 들으며 새삼 월드 클래스 아티스트구나 싶었다. 그리고 능력 되는 사람이 그 능력을 제대로 표현하면서 본인의 나라에도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것도 멋있었다. 그래서 그와 비슷한 'Lifestyle' 트랙도 리사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4115734.jpg Alterego 앨범 커버 (이미지 출처: 벅스뮤직)

리사 또한 메인 래퍼로 활동하긴 했지만 이 앨범에서의 유일한 발라드 트랙인 'Dream'이 인상적이었다. (이 곡도 Taylor 느낌이 나긴 한다.) 보컬의 기교나 이런 것들엔 상관없이 무엇보다 진솔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Whenever I close my eyes
It's taking me back in time
Been drowning in dreams lately
Like it's 2019, maybe

- LISA, Dream




그냥 '잘 한' 앨범, Ruby

그러고 나서 블랙핑크 멤버 중 마지막으로 공개된 것이 제니앨범이었다. 지난해 말 선싱글로 'Mantra'가 공개되었을 때는 사실, 'female empowerment'의 포장만 가져온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뮤직비디오오를 보고 여전히 섹스어필에 초점을 뒀구나라고 생각했다. 여성 아티스트가 연차가 차면 의례 하는 'girls can do anything'같이 가벼운 느낌으로 나를 긍정하는 마법의 주문인 'Mantra'의 표징만 가져온 것으로. 그런 생각과 동시에 굉장-히 힘을 뺀 노래여서 오히려 자신감이 엿보이기도 했고, 다가올 다음 노래들에 대한 궁금증이 이어지긴 했다.

캡처3.JPG Mantra 뮤직비디오 캡처 (이미지 출처: 제니 유튜브)

그리고 피처링진이 공개되었을 때도 엄청 화려하고 굉장히 트렌디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피처링진에 기대려는 건가? 하는 의구심을 (또)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Ruby를 처음부터 끝까지 - 그리고 반복해서 듣다 보니 제니가 그동안 음악적인 면에서 과소평가되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LA 공연에서 선정적인 노출 의상으로 뭐 어쩌고 저쩌고 이런 기사가 나오는데. 중요한 건 의상이 아니다. 앨범을 들어보세요.


일단 랩이야 뭐 원래도 좋았지만 긴 verse를 소화해도 질리지가 않고 잘 들리고. 보컬도 안정적이고 무엇보다 쟁쟁한 피처링진에 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제니가 곡을 더 잘 살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일단 가수의 기본 역량인 노래와 랩을 잘하는 사람이고. 심지어 좋아하는 장르를 잘하기까지 하고, 거기에 마지막으로 원하는 걸 뒷받침해 줄 자본까지 어우러져서 이런 결과물이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즉, 자신이 '뭘 하는지' 아는 생각 있는 아티스트란 거다.

4115971.jpg Ruby 앨범 커버 (이미지 출처: 벅스뮤직)

제니는 1인 회사를 세운 후, 미국 Columbia records와 계약해 미국 진출을 했는데 곡의 프로듀서진이 어마어마하다. Kendrick Lamar, Sza, doja cat, Shawn Mendes, Justin Bieber 등등 정말 현재 팝&알앤비&힙합 신에서 활동하는 프로듀서진이다. 물론 로제나 리사, 정국 등등도 그렇고. 수많은 곡들 사이에서 본인이 하고 싶은 + 잘 할 수 있는 + 보여주고 싶은 곡을 영리하게 선택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캡처.JPG ZEN 뮤직비디오 캡처 (출처: 제니 공식 유튜브)

제니 역시 본인의 첫 솔로앨범인 만큼 고민이 많았다고 하는데, 'ZEN'을 작업하고 난 후에는 뭔가 방향이 잡혔다고 한다. 그래서 Mantra 다음에 ZEN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나 보다. 처음에 뮤직비디오가 선공개되었을 때 봤는데 좀 어려웠다. 일단 노래가 굉장히 선언적이고, 상징하는 바가 많고 웅장한 분위기라 쉽게 듣게 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역사의 단편적인 부분, 이미지만 차용한 것 같아서 또 색안경 끼고 봤었는데 - 나름 이것도 엄청난 스터디를 해서 작은 소품하나까지 공들였다고 한다. 문광스님의 해설이 너무 인상적이고 흥미로웠는데, 실제로 가사적으로 불교적 개념을 많이 차용한 듯하다.

캡처2.JPG 지금까지 이런 해석은 없었다! 스님이 본 '제니 ZEN' 소름 돋는 반응 (출처: 불교방송 BTN 유튜브)


상징하는 것들을 조금 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 뮤직비디오와 함께 보는 걸 추천한다. 참 신기한 게, 로제의 앨범을 들으면서 로제는 정말 '호주인'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제니 앨범을 들으면서는 (오히려 외국인이라고 생각했던 제니가) 뿌리에는 그래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하고 주체적인 가사

이런 데에는 제니의 앨범이 진정성 있게 들렸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사랑에 솔직하고(Handlebars),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감정을 따라가고(Love hangover), 때로는 뭐 어쩌라고 싶기도 하고(FTS). 그럼에도 때론 감성적인 밤을 보내고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기도 하고(Starlight). 내가 Taylor Swift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도 주체적인 여성 화자의 감정과 이야기를 한다는 건데, 제니의 앨범도 그래서 좋았다. like JENNIE도, Mantra도 결국 나에 대한 이야기다. 제니의 인터뷰를 뒤늦게 찾아보며 제니가 나름의 스트레스 관리법으로 하는 찬물 샤워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Mantra(straight from the cold plunge)와 starlight에 그 내용이 담긴 점도 재밌었다.

So many after hours
I just wanna make my mama prouder
When the stupid thoughts started getting louder
Said bitch chill out and took a cold shower

- JENNIE, Starlight


4115394.jpg ExtraL 싱글 커버 (이미지 출처: 벅스뮤직)

그리고 female empowerment로 다시 돌아와서. 5번 트랙인 with the IE(way up)-ExtraL-Mantra로 이어지는 구간이 참 좋다. with the IE (way up)도 굉장히 재밌는 트랙이었다. Jennifer Lopez의 상징적인 곡인 'Jenny from the block'를 샘플링했는데, 여기서 Jenny에 'IE'를 더해 'Jennie'를 나타내는 제목이다. 올드스쿨 장르를 좋아하는 나는 처음부터 이 곡이 귀에 들어왔지만 가사와 배경을 알고 나니 어떤 의도에서 배치했는지 이해됐다. 한 시대를 풍미한 Jennifer Lopez가 2022년 발표한 곡으로,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삶과 대중을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담아냈다. 제니도 이런 여성 아티스트를 샤라웃 하는 의미도 있을 것이고, 진실된 아티스트로 남고 싶다는 것과 동시에 더 위로 올라가겠다는 당당한 의지를 담고자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침에 들으면 기운이 뿜뿜하는 노래.


그리고 ExtraL을 듣고 나니 제니가 '여성' 아티스트로서의 자각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좀 더 느꼈다. Doechii가 현시점 가장 핫한 래퍼 중 하나긴 하지만, 소수자 여성 아티스트와 함께 했다는 점에서도 그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All of my girls lookin’ good and they got they own money
This for my girls with no sponsor they got they own fundin’
(...)
Work work This might hurt I sweat hard
Wet t-shirt Extra large
Ain’t scared of the dirt
Scared of the dirt work work

- JENNIE, ExtraL (feat. Doechii)


앞서서 소개한 ZEN도 비슷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보면 알겠지만 이 노래는 가사의 양 자체가 많지 않다. 그렇지만 흔하게 (특히 여성 아티스트가) 사용하지 않았던 aura라는 단어라든지 'I'로 시작하는 선언적인 문장이 많다.

Nobody gon Move my soul Gon move my aura My matter
Nobody gon Move my light Gon touch my glow

- JENNIE, ZEN



기본적이지만, 실력

제니의 랩을 좋아하긴 했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보컬 실력을 다시 봤다. 올드스쿨, 알앤비, 다양한 힙합 알앤비 곡들을 시도했는데. Damn right이랑 Twin 같은 보컬이 중심이 되는 트랙에서도 본인이 뭘 부르는지 너무 잘 알고 잘 부르는 느낌이다. 그래서 앞으로 제니의 보컬, 랩을 리스너로서 더 다양하게 듣고 싶어진다. 여러 가지 활동도 좋지만 음악 작업을 가장 열심히 해주었으면.. 본인이 가진 음악적인 욕심도 많은 것 같다고 느꼈다.

캡처4.JPG like JENNIE 뮤직비디오 캡처 (이미지 출처: 제니 유튜브)

그리고 다른 뮤직비디오는 좀 더 스토리라인이나 다양한 구성을 사용한 반면 타이틀곡인 'like JENNIE'는 퍼포먼스에 초점을 맞췄다.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강렬한 퍼포먼스와 랩. 그래서 더 자신감도 느껴진다.




이 앨범은 일단 올해의 앨범 중 하나로 픽. 화려한 피처링진과 제니의 외모, 선정적인 의상, (비싼 티켓값 논란?)에 가린 앨범이다. 무엇보다 본인이 가진 생각이 이번 앨범에도 담긴 것 같아서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YG 껍질을 벗고 오히려 더 훨훨 나는 듯. YG가 제니에게 기대한 건 'solo'와 같은 섹시하면서도 약간의 실력을 더한 걸그룹 멤버였겠지만 말이다. 그 곡의 대중적 성공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제니의 음악은 더 갈 수 있다.


캡처5.JPG JENNIE - Ruby (Official Album Sampler) 캡처 (이미지 출처: 제니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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