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난 가장 나다운 게 무엇인지 알겠어
9월 7일, 오마이걸 유아의 솔로 미니앨범이 나왔다.
오마이걸은 데뷔 6년 차를 맞는 중견 걸그룹이지만, 퀸덤을 기점으로 오마이걸의 콘셉트, 실력은 대중들에게 크게 각인되었다. 그 전에도 <비밀정원>, <다섯번째 계절> 등 대중성을 획득한 노래는 있었지만 "오마이걸이 이 정도였어?"라는 이미지를 남기기에 충분했다. 특히 러블리즈의 노래를 커버한 <Destiny>나 강한 이미지를 보여준 <게릴라> 무대는 종종 생각나서 찾아보게 된다.
실력과 대중성 모두를 인정받고 있는 오마이걸이지만 솔로 앨범을 발매한 건 유아가 처음이다. 보통 메인보컬이 솔로 출격 첫 타자가 되는 편이라 이례적이기도 하지만, 평소 유아의 특성(?)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테다.
유아는 데뷔곡인 <Closer>에서부터 오마이걸의 콘셉트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센터 멤버였다.
무언가 신비롭고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외모에 날렵한 춤 선까지. (그런 그녀가 스트릿댄스도 섭렵했다는 건 퀸덤 나와서야 알았다.) 그래서 어쩌면 유아가 첫 주자로 나온 건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춤 실력도, 콘셉트 소화력도, 또 안정적인 노래 실력까지 두루 갖췄으니까. (링크)
이번 앨범을 듣고 A&R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 앨범을 구상할 때, 그들은 어떤 키워드들을 떠올렸을까. 신비로움, 춤, 정체성, 존재감, 등의 단어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5곡이고 작사가 또한 여러 명이지만 공통적으로 이 주제를 관통한다. <Bon Voyage*>라는 타이틀.
*좋은 여행되라는 의미의 프랑스어.
특히 타이틀 곡 <숲의 아이>는 유아만을 위해 세심하게 고민하고 만들어진 노래라는 게 느껴진다. 신비로움을 강조하는 숲의 아이, 초록색 광활한 초원을 달리는 유아의 모습.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 <Bon voyage>라는 앨범 타이틀과 꼭 맞는 출발점. 그리고 '그 누구보다 자유롭게 춤을 추는' 유아의 모습과 노래. 음색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음역대의 노래.
들어봐 고운 새들의 저 노랫소리
느껴봐 맨발에 닿는 풀의 싱그러움
지금 난 태어나서 가장 자유로운 춤을 춰
난 춤을 춰
- 유아, 숲의 아이
곡은 굉장히 단순하다. verse와 bridge를 지나면 '숲의 소리'가 후렴을 대신한다. 아프리카 부족의 ethnic 한 소리를 표현하는 리듬 악기, 외침 소리들, 피리소리 등이 등장한다. 광활한 자연을 달려 나가는 숲의 아이가 연상된다. (꼭 뮤비를 감상하길 권한다!) 비록 터지는 후렴구는 없지만 그렇기에 더욱 군더더기 없는 느낌이다.
반복되는 후렴의 외침은 그녀를 부르는 숲의 소리이겠지. 그리고 이 아이는 자신을 찾기 위한 더 깊은 여정으로 나아간다.
나는 찾아가려 해 신비로운 꿈
서로 눈을 맞출 때 더 푸르르던 숲
가장 높은 절벽에 올라가 소리쳐
멀리 세상 저편에 날 기다리는 숲
- 유아, 숲의 아이
서지음 작사가의 특징일 수도 있겠는데, 이 노래의 운율을 더욱 극대화해주는 건 '푸르르던'과 같은 섬세한 노랫말이다. 서지음 작사가는 오마이걸의 데뷔곡인 'closer'부터 꾸준히 함께 해왔다. 그렇기에 오마이걸의 세계관을 만들어온 사람 중의 하나라고도할 수 있는데, 이번 유아 솔로 앨범에도 콘셉트를 만드는 주축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가사가 많아서, 언젠가 한 번 꼭 글로 다루고 싶다!)
다음 트랙인 <날 찾아서>는 1번 트랙과 연결된다. '도시 속 소음을 뒤로하고' 그녀는 더욱 깊은 나를 찾아 떠난다.
Down in the down in 날 찾아서
I'm so beautiful 누가 뭐래도
Down in the deep
I'm so beautiful 그저 이대로
Down in the down in 날 찾아서
깊고 푸르른 나의 시간 속
- 유아, 날 찾아서(Far)
3번 트랙인 <Diver>는 디스코풍의 노래다. 유아가 마이클 잭슨을 좋아하고, 스트릿 댄스에도 재능이 있기에 아마 유아의 취향이 반영된 노래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무대로 본다면 더욱 멋있을 것 같다. 그리고 곡의 분위기마다 달라지는 유아의 창법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4번 트랙인 <자각몽>은 후렴구가 약간 아쉽긴 하다. 다소 진부한 'abracadabra'가 반복되면서 그런 것 같다. (브아걸의 동명 노래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역시 '자각'하는 꿈에 있다는 것.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게 이번 앨범의 주제라는 걸 알 수 있는 트랙이다. 그리고 '숲 속이었는데'라는 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역시 1번 트랙의 '나'와 연결된다.
Abracadabra
분명 난 숲속이었는데
순간 커다란 바다가 돼버렸네
바로 이때 다 즐기자 Summer
- 유아, 자각몽 (무대 링크)
숲에서 온 아이든, 바다를 향해 멀리 떠나는 나든, 그 어떤 공간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나'인데 그게 무슨 상관일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나른해 기분이 이상하네
더 놀고 싶어 하루종일
커다란 무지개 타고 놀래
그다음엔 어딜 갈래
날아서 어디든 닿을 듯해 빌어
- 유아, 자각몽
'날아서 어디든 닿을 듯'한 공간.
어디든 닿을 수 있다. 이 노래에선 유아의 음색이 특히 돋보인다.
마지막 곡인 <End of Story>는 이 앨범의 여정을 차분히 정리해주는 노래다. 처음에는 팬들에게 하는 노래일까, 생각했지만 결국 돌고 돌아온 자기 자신에게 진솔하게 해 주는 말 같다.
내 분주했던 걸음이 멈춘 자리엔 It's you
온 세상을 돌아서 하나도 빠짐없이 얘기해줄게
너의 반짝이는 두 눈에 해맑게 눈을 맞춘 채
Let me telling you
이 아름다운 모험의 마지막은 너란 걸
- 유아, End of Story
숲을 돌아, 기나긴 밤과 바다를 넘어, 나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을 마치고 난 다음에 나의 모습은 어떨까?
이전과 많이 달라질까?
살펴보면 이 앨범의 중심에는 전부 '나'가 있다. 앨범의 중심을 확실히 잡고 갔기에 이런 통일성이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무리 잘 짜여진 그림이라도 마지막 퍼즐의 한 조각은 결국 그것을 소화해내는 사람의 몫일 것이다.
오마이걸은 데뷔 초부터 화려하게 주목받으며 정상궤도를 달린 걸그룹도 아니고, 대형 기획사 출신도 아니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는 오마이걸의 성공에 더욱 감정 이입이 되는 것 같다.
앞으로도 그룹으로도 솔로로도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