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록] 이방인의 마음가짐

#에세이

by 늘보리

✿ 제목 : 여행의 이유

✿ 저자 : 김영하

✿ 출판 : 복복서가

여행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대하여…


이 책은, 연초에 계획한 도쿄여행을 며칠 앞두고 첫 표지를 넘겨,

인천을 떠나는 출국장에서 마지막 표지를 덮었다.


책이 내게 들려주는 말들은

여행에 대한 설렘이나 기대치를 높여주기보다는 이제껏 해보지 않던 여행에 대한 생각들,

예를 들어, 나는 왜 자꾸 여행을 하려 하는지, 거기서 뭘 얻어오고 싶었던 건지와 같은 생각들을 하게 했다.


지금까지 나는 항공권이 싸서 혹은 그 나라엔 어느 브랜드 상품이 다양하대서 등

조금은 충동적이고 가벼운 이유로 여행을 결심해왔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작가의 말을 듣다보니 그것들은 핑계고 그 안에 나를 등떠미는 더 무거운 이유가 있더라.


-


그래서 나는 여행을 왜 할까? 왜 해왔을까? 왜 자꾸 하려고 할까?


회사 가기 싫어서. 혼자 집에서 쉬고 싶어서.

그러니까 그건 일단 벗어나고 싶은 욕구에서 오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페넬로페의 침대에 누운 오디세우스는 비로소 깨달았을 것이다. 그토록 길고 고통스러웠던 여행의 목적은 고작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었다. 때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었다. 영원히 늙지 않는 아름다운 요정 칼립소의 침대에서 매일같이 맛있는 것을 먹으며 행복한 여행자로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혜의 여신이 그를 다시 고난의 여행길로 끌어냈고 그는 무거운 책임과 의무가 기다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울 곳으로 돌아갔다.
- 그림자를 판 사나이


작가는 내게, 떠나고 싶은 원인이 됐던 고통스러운 바로 "그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여행을 한다고 말한다.

떠나기 위한 게 아니라, 돌아오기 위해 여행을 한다니…

여행에서 가져온 기억을 갉아먹으며 일상을 견뎌내고 그게 다 바닥날 때 쯤 새로운 여행을 계획하는

그런 무한 루프가 반복되는 걸 보면 작가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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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행들을 되돌아봤을 때, 나는 섬바디somebody로 보여지고 싶었던 속절없는 노바디nobody였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 노바디의 여행


나름 해외여행 경험이 많은 편이라서 나는 스스로를 "여행쟁이"라고 생각해왔다.

특히 일본 여행에 대해선 소위 방귀 좀 뀐다고 친구들을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 나라의 언어가 통하고 여러 번 방문해 지리가 익숙해졌다며

현지인들의 "이웃" 비슷한 것이 가능할거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나는 이제껏 그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터전에 잠깐 들러 그들의 일상을 망치고 있는 "이방인"이다.

그런 나를 그들이 당연하게 환대하며 받아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여행에는, 출국 전 캐리어에 그곳이 터전인 이들에 대한 존중을 가장 먼저 담아보려고 한다.


이 일화는 흔히 오디세우스의 영리함을 드러내는 이야기로 알려졌지만, 나는 여행자의 바람직한 마음가짐으로 읽었다. 허영과 자만은 여행자의 적이다. 달라진 정체성에 적응하라, 자기를 낮추고 노바디가 될 때 위험을 피하고 온전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 노바디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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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번 여행에서 목표했던 건, 여태껏 일본에 가본 적 없는 15년 지기에게

내가 아는 세상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철저히 가이드 입장에서 여행을 계획했기 때문에, 얻을 거란 기대 없이 주기만 하는 여행일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여행의 이유"에 대해 고민해보면서 새로운 여행관을 손에 들고 돌아왔다.


이처럼 여행은, 하나도 새로울 것 없다고 생각하며 아무런 기대 없이 훌쩍 떠나도

매번 새로운 감상과 함께 새로운 경험을 들고 오게 만드는 것이다.

이 특별한 경험은 또 다음번 여행이 언제일지, 어디일지,

일어나지 않을 지도 모를 일에 대해 상상하게 하고 또 괜히 마음을 들썩이게 한다.


인간은 왜 여행을 꿈꾸는가. 그것은 독자가 왜 매번 새로운 소설을 찾아 읽는가와 비슷할 것이다. 여행은 고되고, 위험하며, 비용도 든다. 가만히 자기 집 소파에 드러누워 감자칩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게 돈도 안 들고 안전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 라고도 말할 수 있다.
- 여행으로 돌아가다


내 여행에 동행해준 이들은 거기서 어떤걸 들고왔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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