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록] 채워지지 않는 허기

#에세이

by 늘보리

✿ 제목 : 헝거(Hunger)

✿ 저자 : 록산 게이

✿ 출판 : 문학동네

나는 지금보다 더 날씬하고 싶고, 그래서 많은 순간 먹고 싶은 걸 참고,

그렇기 때문에 늘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견딘다.

심지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허기를 느낀다.


나는 날씬해지기 위해 먹는 걸 조절하고 운동을 한다.

원하는 몸무게일 때의 '나'와 그렇지 않을때의 '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그건 스스로 욕구를 조절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더 먹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며 수저를 내려 놓고, 쉬고 싶다는 욕구를 이겨내며 운동을 하러 나간다.


그러면 그 뒤엔 스스로를 더 멋진 사람(= 원하던 모습에 가까운 사람)처럼 느끼게 만드는 성취가 찾아온다.

오로지 그것 때문에 나는 결핍을 억지로 참고 견딘다.


그리고 이 책은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를 견디는 방법으로 거구가 된 여성이,

그녀의 "몸"이 겪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회고록이다.


그녀에 비해 한참이나 적은 몸무게를 가진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기만처럼 보일 수 있으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누구에게나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 대한 "Hunger"가 있고

그걸 참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며

그걸 그릇된 방법으로 채울 수 밖에 없었던 (비슷한 경험을 한) 모두를 진심으로 위로한다는 것이다.


내 인생에 관한 이야기는 모조리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강렬한 욕망, 끝없는 허기에 관한 이야기이고 어쩌면 내가 감히 나에게 허락하지 않은 것들을 갈망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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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날씬함의 경제적 이익"에 대해 이야기 하며, 좁은 공간을 차지할수록 더 중요한 사람이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누구든 이 말에 공감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날씬한 내가 그렇지 않을 때의 나보다 타고난 절대적인 조건이 좋진 않겠지만,

날씬하기 때문에 호의적인 이성이 좀 더 많았고 날씬하기 때문에 여러 면접자리에서 좀 더 좋은 인상을 남겼을거란 생각은 부인할 수 없다.


유명 인사들은 날씬함의 경제적 이익을 이해하고 있으며 대부분은 기꺼이 그 경제에 참여하려고 한다. 그래서 더 말라 보이기 위해 볼을 쑥 집어넣고 찍은 셀카를 소셜미디어에 올려놓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더 좁은 공간을 차지할수록 더 중요한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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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작가는 타인의 이러한 생각들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그들처럼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노력 끝에 결국 포기를 선택하고 자꾸만 자기 안의 늪으로 빠져드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 안쓰러웠다.


책의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나는 그녀가 그 수렁 안에서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까봐 걱정했다.

그래도 기분 좋게 책의 표지를 덮을 수 있던 건 그녀가 자신의 흉터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는 점 때문이다.


나의 슬픈 이야기들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이토록 슬픈 이야기가 많다는 사실이 싫어도 이 이야기들을 계속할 것이다. 슬픈 이야기들은 언제까지나 내 어깨를 짓누르는 짐이겠지만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깨달을수록, 나의 가치를 깨달을수록 그 짐은 가벼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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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기 안의 사연이 있고 서사가 있고 거기엔 작건 크건 상처가 있다.

상처는 대부분 본인이 얻고 싶어 얻는 게 아니라 우연히 벼락 맞듯 얻어진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거기서부터다.

상처입은 채로 그 자리에 주저앉을 것인지,

아니면 내 발로 직접 병원에 찾아가든 타인의 도움을 받든 어쨋든 그걸 치료할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덧나더라도 상처가 아물겠거니 생각하며 가던 길을 그대로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지금의 나에게 만족하지 못한다고 해도

지금보다 더 낫고자, 나아지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나는 그게 원하는 내가 되기까지 절반은 이룬 거라고 생각한다.


내게 가장 큰 두려움은 내가 이 흉터를 단 하나도 걷어내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내게 가장 큰 희망은 언젠가 내가 이 흉터의 대부분을 걷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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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가 남을 만큼 커다란 상처를 받은 경험도 없고, 몇 백 키로가 넘는 거구의 인생을 살아본 적도 없지만,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꽤나 이입했고 같이 울고 웃었다.

내가 제3자의 이야기에 냉소적인 편이라는걸 생각하면 지금 이 반응이 굉장히 아이러니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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