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폴리오 모델이 되어보다.
보통 바디프로필 촬영이 끝나면 후회하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운동과 식단에서는 후회할 일이 없도록 하고 있었으나 포즈랑 표정 연습은 정말 난감했다. 사실할 시간도 여력도 없는 게 맞지만, 촬영 경험이 없는 사람이 포즈와 표정을 연습한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였다.
뭐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겠지만 카메라를 들이대면........ 너무 어색하잖아...... 몸과 표정이 굳어버리잖아.
나는 꼭 누군가 사진을 찍어주면 발 끝을 들어 올리는 버릇이 있다. 몸이 굳는데 발 끝은 왜 올라가는 거지?
이렇게 힘들게... 정말 개고생을 해서 바디프로필을 찍는데, 막상 사진이 이상하게 나오면 너무 속상할 것 같은데....?!
동생의 경고
내 친동생은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다. 바쁜 일정을 뒤로하고 나의 바디프로필 촬영을 도와주기로 했다. 동생은 헤어&메이크업도 잘 하지만, 사진 속 디테일 하나하나에도 엄청 신경을 쓰는 프로다. 한 번은 프로필 사진을 얻겠다고 동생이랑 익선동을 놀러 갔다가.... 표정, 포즈, 그리고 사진도 제대로 못 찍어준다고 엄청 혼이 났었다.
그때 많이 혼난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동생이 얘기하는 말이 무게감이 장난 없었다.
언니 진짜 연습 많이 해라,
이상하게 하지 말고
어디서 연습하냐!!
유튜브를 봐도 모르겠다. 이것아!
오? 해볼까?
점점 날짜는 다가오고 유튜브로 포즈 연습을 따라 하며 지내던 어느 날 헬스매니아 카페에서 한 글을 봤다.
바디프로필을 찍고 난 뒤에 바디프로필 작가를 꿈꾸게 되었다는 한 회원분이 바디프로필 포트폴리오 모델을 구하는 글이었다. 조건은 4가지였다.
1. 현재 바디프로필을 준비 중인 사람
2. 바디 컨디션이 괜찮은 사람
3. 헬스매니아 카페 회원인 사람
4. 모델 경험은 상관없음
그 글을 보고 혹해서 한참을 고민했다.
'아 연습 삼아해 볼까, 그런데 세상이 흉흉한데 무서운 사람이면.. 위험한 사람이면 어쩌지, 그런데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바디프로필 촬영 때 동생한테 혼나기 전에 연습을 해가도 좋을 것 같은데.... 경험 삼아서.... 난 전문 모델이 아닌데 지원을 해도 괜찮은 걸까'
걱정 근심을 한 아름 안고 지원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작가분과 대화를 주고받는데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 음??????????????? 알고 보니 그 작가분과 동생이 같이 일하는 파트너였던 것. 으아니!!!! 동생 몰래 연습해가려고 했더니 동생이랑 같이 찍게 생겼네!?!?!? 세상 참 좁다..... 세상 참 좁아. 그렇게 나는 바디프로필 포트폴리오 모델을 하게 되었다.
1. 컨셉
포트폴리오 촬영 준비는 바디프로필 준비보다 수월했다. 컨셉도 작가님이 정해주시고, 그에 맞는 의상만 구매하면 되었다.
2. 운동&식단
뭐... 운동과 식단은 늘 하던 것처럼만 했다.(지원 메일 보낼 당시 체지방률은 11.6% 였다.) 트레이너 선생님은 촬영 전 12시간 단수, 펌핑하는 방법과 포징 하는 방법을 조금 알려주셨다.
3. 왁싱
왁싱은 예전에 경험이 있어서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본 촬영 3-4주 전이라...... 본 촬영 전에도 한 번 더 왁싱을 해야 했다. 왁싱 주기는 최소 4주인데 3주 만에 하니..... 왁스로도 안 뽑혀서 나중에 족집게로 다 뽑느라 죽는 줄.
본 바디프로필 D-22
엄청 긴장을 하고 들어갔지만 작가님이 굉장히 편하게 분위기를 이끌어주셨다. 남자분 앞에서 이렇게 벗고 있는 것도 어색하고 부끄러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렇지는 않았다.
다만.... 문제는 나였다. 입이 자꾸 나와요! 입 신경 써요! 하고 입을 신경 쓰면 복근의 힘이 풀리고... 몸도 생각보다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름 연습하고 갔는데........................ 허허허 어색행....
어색함과 긴장이 모두 표현되었다. 첫 번째 컨셉 결과는 제일 많이, 제일 오래 찍었는데 건진 사진이 거의 없었다. 근데 보통 첫 번째 컨셉이 그렇다고 하더라.. 어색해서 건질 게 없다고.. 표정과 포즈도 몸이 풀려야 하는데 첫 번째 컨셉에선 그게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 촬영 경험이 없는 사람은 가장 원하는 컨셉을 첫 번째가 아닌 두 번째나 마지막으로 배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두 번째 컨셉은 생각보다 즐겁게 촬영했다. 진지하고, 여성 여성스러운 컨셉보다는 발랄하게 웃는 컨셉이 나에겐 더 잘 맞았던 것 같다. 거의 10-15분 만에 베스트 샷을 뽑아내고, 다음 컨셉으로 넘어갔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표정을 찾아서 컨셉으로 잡으면 더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세 번째 컨셉부터는 나를 내려놓았다. 체력적으로도 버티기 힘들어서 빨리 하고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뭐 볼 거 다 보여줬는데 그냥 하자!라고 생각했다. 그 컨셉에 충실한 컨셉충이 되니 편했다. '나는 섹시하다.... 나는 치명적이다.....' 부끄러움을 내려놓으니 사진이 빠르게 찍혔다. 덕분에 세 번째 컨셉도 건질 컷들이 많았다.
전반적으로 촬영은 너무 재밌었다. 작가님도 여자 바디프로필 촬영은 처음이었는데 덕분에 촬영의 감을 익혔다고 고맙다고 하셨다. 나도 본 촬영 시 어떤 걸 더 해야겠구나, 포즈나 표정은 이렇게 연습해야겠구나 라는 확실한 감을 잡은 계기가 되었다. 몸이 어디가 부족한지도 체크할 수 있었다. 또! 중요한 건 바디프로필을 또 찍어서 사진 부자 컨셉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 좋은 기회를 얻어서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