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과 시작의 맞닿음
제주에서의 첫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았다. 대충 씻고 집 근처 바닷가로 향했다. 여유로운 아침이었다. 간간히 설레는 미소와 함께 길을 걸어 다니는 여행객들이 보였고, 골목의 가게들은 아침을 열 준비로 분주했다. 저 멀리 바다가 보이고, 발걸음을 서둘러 옮겼다. 그리고 보이는 바다.
'어, 여기 익숙한데'
내가 한 달간 머무르게 될 곳은 표선이었다. 한 달 살이를 계획할 때, 내가 머무르게 될 곳은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 여행객이 많이 없고 한적한 곳이었으면 했다. 그렇게 찾던 곳이 이름마저도 낯선 표선이었다.
분명히 한 번도 오지 않은 곳 같은데 내 앞에 펼쳐진 이 바다는 왜 이리 익숙한 걸까. 주변을 살펴보고 발걸음의 속도를 낮췄다. 찬찬히 기억을 되짚어본다.
'아! 여기, 그곳이구나!?'
문득 생각이 났다. 나는 서둘러 바다를 사진으로 담았다. 빠르게 뛰어다니며 이곳저곳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전송했다.
"우리 곧 취업도 하고, 결혼도 하고 그러다 보면 이렇게 4명이 모여서 여행 가기 힘들 거야. 진짜 이게 우리의 마지막 여행일 수도 있어"
2014년 23살. 고등학생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우리 4명은 함께 제주도를 여행하기로 했다. 여행 계획을 짜면서, 이 여행이 4명이 함께하는 마지막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생활의 첫 발이 너무나 힘든 탓이었을까? '앞으로 우리 잘돼서 여행 자주 다니자!'가 아니라, '앞으로 더 힘들어질 테니 이게 우리 마지막 여행일 거야'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첫 여행을 마지막처럼 계획했다.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까 근사하게 가자며 같이 옷도 쇼핑하고, 여행 캐리어도 사고, 설렘으로 가득하게 준비했다.
그렇게 시작된 자칭 우리의 마지막 여행. 어린 우리는 모든 것이 서툴렀다. 서툰 운전, 서툰 여행코스...... 그럼에도 우린 참 즐거웠다.
여행의 마지막 날. 밀려오는 아쉬움에 내비게이션도 보지 않고, 해안도로라고 적혀있는 곳으로 무작정 핸들을 돌렸다. 그렇게 어느 한 바다에 도착했다.
그 바다는 지금까지 본 바다 중에 가장 아름다웠고, 가장 잔잔했고, 가장 투명한 바다였다.
"야! 우리 왜 이제야 이런 바다를 본 거야? 지금까지 본 바다는 똥물이었네!?"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를 마지막 날, 그것도 공항 가는 길에 잠깐 봐서 너무 아쉽다며, 투덜투덜 대면서도 우리는 즐겁게 바다에 발을 담그고 놀았다.
우리는 그 바다 이름을 알지 못했다. 내비게이션을 찍고 간 바다도 아니었고, 여기가 어디다!라고 알 정도로 지리에 능숙하지도 않았다. 우린 그저 그 바다를 [우리의 마지막 바다]로 이야기하며 종종 추억했다.
제주에서의 첫 아침 그렇게 추억했던 [우리의 마지막 바다]가 내 눈앞에 있었다.
한 달간 묵을 나의 숙소 앞이 그 바다였다.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곳이라고 생각했던 표선은 이미 4년 전에 발을 담갔던 곳이었다.
아! 제주도가 마지막인 줄 알았던 우리의 여행은 그 이후로도 몇 번을 더 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