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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빵 May 21. 2019

태풍 속의 고요함

일요일의 에세이클럽

작년 9월, 오키나와 여행에서 태풍을 직격으로 맞았다. 일기예보는 오락가락해야 제 맛인데 비껴나가는 일 없이 정직하게 왔다 갔다. 아름드리 나무가 부러질 정도로 강한 풍속의 태풍이었다.

열심히 짠 계획이 무색해지는 여행이었지만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이동하며 관광도 하고 바다와 수영장을 오가며 헤엄도 쳤다. 운이 좋았던 건 오키나와에 도착했을때는 태풍이 오기 전, 서울로 출발할 때는 태풍이 빠져나간 뒤라 비행편 취소나 딜레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서울 사람이 섬에 태풍이 상륙한다는 게 뭔지 어떻게 알겠나, 그저 뉴스로만 보던 장면을 실제로 겪고 보니 패닉이었다.

오키나와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호텔을 예약했는데 한밤중에 이머전시 콜이 왔다. 일본어였다.

"내일 호텔을 폐쇄할 예정이니 체크아웃을 하고 자매 호텔로 대피해라"

체크아웃은 왜 해야 하는 것이며 그럼 대피한 호텔에서 체크인이 되는 것인지, 비용은 어떻게 되는 건지, 그 호텔로 이동은 무엇으로 하는 건지...

위급한 상황이라는 판단이 서자마자 갑자기 일본어가 잘 들리기 시작하고 영어, 일본어 섞어가며 서로 대화가 된다.

무섭게 부는 바람 소리에 한숨도 못자고 새벽같이 일어나 체크아웃을 하고 이동했다. 작은 차를 렌트한 터라 흔들리는 차체를 느끼며 해안도로를 지나는데 파도는 무시무시하고 이러다 차가 뒤집히는 건 아닐지 잔뜩 겁을 집어 먹었다.

그런 공포와 무관하게 체크인 한 룸은 쾌적하고 더 넓었으며 호텔 전용 온천도 있어서 뜻밖의 평화로움이 있었다. 창문이 깨질 것 같은 엄청난 바람의 박력을 느끼며 오키나와의 전통 공연도 보고 호텔 숙박객들이 모여 빙고도 했다. 경품은 보잘 것 없었지만 아이들이 조급하게 발을 동동 구르며 번호를 외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유쾌했다. 그러다 지루해지면 라운지에 앉아 차가운 생맥주를 한 잔 마셨다.

하루하고도 반나절의 기묘한 고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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