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에세이클럽
2월부터 매주 토요일, 5주 일정으로 진행되는 오키로북스의 <책 처음부터 끝까지>라는 워크숍에 참여하고 있다.
신포도 증후군1)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새해의 강력한 의지와 반팔십이 다 되어가도록 책업일치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낳은 결과다. 책으로 펴내고 싶었던 글감이 있기도 했고 일단 워크숍에 참여하면 강제로라도 소규모 출판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또 하나의 안일한 생각으로 일을 벌였다.
대학 졸업 후, '글을 써야지, 공모전을 내봐야지' 생각만 해왔다. 당연히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생각조차 없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그 시간이 강산이 바뀌는 시간만큼 길어서 그렇지.
간혹 잡지나 사보 같은 형태의 간행물에 의뢰를 받아 기고한 적은 있지만 인과율에 따른 것이기도 하고 동기부여가 되기엔 부족했다.
구구절절 이유도 많고 변명도 많은 글쓰기에 독립출판 워크숍이라는 데드라인을 만들었다.
1. 출판기획서
워크숍 첫 주에는 출판 기획서를 만들었다. 책 제목부터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은지 밑그림을 그리며 구체화 시키는 시간이었다.
책장에 책을 꽂을 때마다 제각각인 판형 때문에 줄이 안맞거나 너무 그 책만 튀어 보일 때, 출판사 욕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대로 만드는 게 독립출판의 매력이라는 것에 깊이 공감. 책이란 무조건 사서 소유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판형과 개성있는 책을 소장한다는 개념으로 봐야 한다.2)
2. 인디자인 AtoZ
1, 2주차는 인디자인 용어, 인쇄 용어가 어렵기도 하고 설정이 많아서 답답했는데 3주차에 접어들며 재미를 느꼈다. 역시 뭔가 쓰면서 눈에 보이는 형태가 나타나야 하는 법. 이 기분은 마치 대학시절에 미친듯이 과제를 하며 느꼈던 희열 같았다. 이제와서 교수님께 건의드리고 싶다. 후배님들 필수전공으로 '인디자인의 이해' 넣어주시면 안될까요. 글만 쓴다고 될 일이 아니다. 툴도 알아야지. 어쩌면 시각디자인과 쪽에는 이 수업이 있었을지도?
인디자인은 어렵지만 삽질의 결과가 바로바로 보여서 좋다. 허나 4주차 느낌은 이랬다.
'무슨 삽질인가 했더니 내 무덤이었구나'
3. 제 3의 감각
독립출판 워크숍을 들으며 가장 좌절하는 지점은 글쓰기 외 내가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이다. 난 글만 쓰면 어떻게든 될 줄 알았지.
글감을 인디자인에 얼기설기 얹어서 본문은 끝이 보인다 싶은데 이제 표지도 고민해야 한다. 열과 행을 맞추고 폰트와 자간을 조정하는 것. 워드 문서 작업으로 한다면야 나 편한대로 지정하면 된다. 인디자인으로 만든 본문을 인쇄형식으로 미리보니 어째 심심하고 비어보인다. 카테고리마다 이미지를 넣어볼까? 폰트 사이즈를 바꿔볼까?
책에서는 이거, 살펴보니 디자인의 영역이다. 그러니 출판 디자이너 분들이 있는 거겠지(존경합니다) 출판 기획, 출판 디자인, 한 권의 책에 대한 브랜딩 그리고 출판사와 맥락이 맞아야 할테고. 참 흥미로운 지점이다. 핀터레스트로 북 디자인 카테고리를 뒤져봐야지.
그러다보니 짜게 식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잘 못할 거 같다는 생각이 시작되니 본문 수정도 표지도 자신이 없다. 제 3의 감각이 이렇게 없어서야. 하기 싫은 마음이 슬그머니 들어 자괴감이 든다.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는 거냐고. 이번 생은 이미 망한 건데 현실 부정이 심해서 애써 외면했던 거 아닌가.
아니아니 이보게나 독립출판이라고. 그리고 가제본 1부만 해볼거라고. 정신 차리게나.
며칠 전, 페이스북의 내 피드를 역주행하다 2016년 스크랩한 글을 보고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났다. '독립출판 하는 법'이라는 아티클이었다.
1) 신포도 증후군 : 이솝우화에서 여우가 조금 높은 곳에 주렁주렁 열린 포도를 보고 먹고싶지만 시도하다가 마는 내용처럼 지레짐작, 미리 포기하고자 하는 내 마음의 깊은 병이다.
2) 이제 '책'은 이전과 달리 독서 플랫폼이 아니다. 콘텐츠의 확산과 공유를 위한 하나의 형식이다. '읽는' 행위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사람들은 직접 읽는 것이 아닌 누군가 읽어주고 해석해주는 것에도 이미 익숙하다. 오디오북(팟캐스트), 리더북도 그런 맥락으로 보고 있고 그 비중이 점차 증가할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를 시작으로 유튜브에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들의 독서방식에 대해서는 리서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