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에세이클럽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 오래 생각해왔다.
아직도 스스로에게 질문만 던지고 있으니, 가까이에서 답을 찾아보자면 이 친구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중학교 시절, J네 집에 놀러갔더니 모델 하우스 미니어처 같은 걸 보여줬다. 집 꾸미기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통째로 만드는지 상상도 못했다. 이런 건 방학숙제로만 하는 줄 알았지 재밌어 하는 사람도 있네. 새삼스레 친구를 다시 보았다. 디테일이며 만듦새가 보통이 아니었던 기억이 난다. 가구나 물건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신나게 설명하던 친구의 모습도 선명하다. J는 놀랍지 않게 대학에서 조경을 전공, 대학원까지 오래도 공부했다.
예나 지금이나 만드는 걸 좋아하는 친구.
지금은 흘러흘러 발효빵 만드는 것에 미쳐 공방을 준비하고 있다. 그저 취미삼아 베이킹을 배우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던 모양이다.
우리밀과 발효, 생효모와 이스트의 차이, 가마솥에 갓 구운 빵 얘기를 하는 친구의 목소리가 들떠있었다. 실제로 발효빵 만드는 것이 정말 재미있어서 정신없이 빠져들었노라 고백하는 J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발효빵 만들기의 한 갈래로 수제 맥주까지 배우는 친구가 페일에일, 스타우트 한 병씩 선물해줬다. 와인의 경우 음식과의 페어링이 중요한 것처럼 발효빵과 수제맥주도 그러한 조합이 가능하겠지. 실제로 그 부분도 염두에 두고 고민 중이라고 한다.
술을 즐기지 않는 곰남편도 친구의 페일에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눈을 번쩍 떴다. 스타우트도 맛이 좋았지만 페일에일의 경우 유명한 브루어리보다 훨씬 나았다. 시큼털털함 없이 깔끔하고 상쾌한 맛. 친구의 위대함이 알콜처럼 스며든 날이었다.
J의 눈동자에, 건배.
나는 무엇에도 깊이 빠져들지 못한다. 대체로 한 발을 빼고 관망하는 쪽인데 예를 들어 병원 치료를 할 때도 남일처럼 내 고통을 바라본달까. 아, 아프구나. 아, 채혈 중이구나 하고 자신에 대한 부분마저 객관화 하는 게 습관인 거 같다.
그러니 좋아하는 일에 푹 빠진 사람들을 보는 게 좋다. 그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내 결핍을 채우는 것 같다.
페이스북에서 한때 유행하던 플러그인 중에 '나의 묘비명 알아보기'라는 게 있었다. 내 묘비명은 이랬다. <훌륭한 친구를 많이 둔 사람이 여기 잠들다>. 당시에는 내가 훌륭한 사람이고 싶다 징징댔는데,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친구를 둔 나라는 사람도 제법 괜찮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