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에세이클럽
첫 티백의 기억은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질랜드에서 이모가 보내주신 립톤 홍차 티백 한 상자. 홍차도 처음, 립톤도 처음.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찻상자 뒤쪽을 보고 보리차처럼 마시는 거라고 대충 추측. 이걸 주전자에 한 개 넣는 건지, 여러 개 넣는 건지 하다 에라 모르겠다 냄비에 서너 개 탈탈 털어 넣어 홍차 한 솥 끓였다.
진하게 우려낸 사골 홍차 한 솥을 경험한 뒤 이제 홍차 맛 만큼은 , 그 홍차가 립톤이라면 눈 감고도 알아맞힌다.
직장생활의 맛은 커피(차)의 맛, 점심의 맛 그리고 술의 맛으로 나뉜다.
차를 좋아하게 된 건 친한 개발자 형이 탕비실에서 타이머로 초까지 재가며 우려준 사쿠람보 한 잔을 마신 뒤부터다. 차 맛과 향이 좋아서 깜짝 놀랐고 블렌딩 티라는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다. 블로그를 검색해보며 루피시아라는 브랜드 외 세계의 많은 차 브랜드가 있다는 사실도 배웠지.
이후에는 차를 좋아하는 분들이 맛 보라며 소분도 해주시고 여행 다녀오시며 차를 선물해주셔서 찻장이 제법 든든해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 밀크티에 빠져서 밀크티용 홍차만 파고 들었고 점차 스펙트럼이 넓어진 건 아이허브 때문이다. 망고녹차 참 맛있지, 세레셜시즈닝스, 리쉬티, 하니앤손스, 타조티 등등 온갖 브랜드와 다양한 차에 빠져 맛보는 재미. 아이허브가 괜히 개미지옥이 아니다.
돌고 돌아 지금은 티캔을 구입해서 잎차를 주로 마시고 있다. 왜 잎차를 마시게되었나 생각해보면 차의 신선도나 맛도 맛이지만 과정 때문인 듯 하다.
차를 마신다는 건, 단순히 '마신다'는 행위로 끝나는 게 아니니까. 차를 고르고 물을 끓이고 다구를 준비하며 기다리는 순간, 그것이 모두 '차의 시간'이다.
하지만 세계의 티백은 여전히 찻장에 쌓여만가고. 바쁜 하루, 차의 시간은 자주 오지 않기에 요약이라도 느껴보고자 '티백의 시간'을 갖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도통 차 한 잔 차분하게 마실 여유가 없다. 한 두 모금 먹은 뒤 회의를 쫓아다니느라 식은 차를 마시는 일이 태반이다. 티백이 오래 담가져있어서 떫은 차를 벌컥벌컥 마시는데 아 입안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