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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빵 Mar 24. 2019

너의 노래는

일요일의 에세이클럽

고등학교 1학년 때 중창단 서클에 가입했다. 담당 선생님이 학생주임이셨던지라 번듯한 서클실도 있었다. 선생님은 다정하셨지만 한 편으로는 일정한 거리감이 느껴졌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면 담당 과목과 학생주임을 맡은 상황에 서클까지 신경쓰기는 힘드셨을 것이다.

신도시라 학교의 설립연도가 내가 그 곳에 이사갔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서클에 역사랄 건 없었다.

미션스쿨이니 레퍼토리도 찬송가가 대부분이었는데 그래서인지 한 학년 위의 선배들도 연습에 열의는 없었다.

이름하여 릴리스콰이어라는 중창단은 적당히 무관심하고 적당히 권태로운 서클이었기에 나와 동기들은 마음껏 자유로울 수 있었다.


나와 친한 동기들은 넷이었고 모두 남자애들이었다.

우리가 친해진 이유는 음악 때문이었는데 좋아하는 가수나 장르가 비슷해서다. 아마...그래서였을 거라 믿고 있다. 기억나는 대화의 대부분은 음악으로 채워져있으니까. 토이, 윤종신, 015B, 이승환, 더클래식, 김동률 그리고 패닉.

한 친구는 그때 이미 음악을 하기로 방향을 정한 상태라 실용음악 학원을 다녔던 것 같다. 나만 빼고 모두 교회 오빠(?)들이라 악기 하나씩은 얼추 다룰 줄 알았고. 서클실에 방치된 우리는 우리 나름의 최신음악을 듣고 연주하며 시시덕거렸다.

방과 후에는 시내로 버스를 타고 나가 한 건물 지하의 작은 카페에 둘러앉았다. 키가 껑충하게 큰 친구는 구석에 앉아 통기타를 치고 나머지는 파이렉스 계량컵에 담겨져 나오는 바나나쉐이크를 마시며 사랑이 뭔지, 나중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카페 스피커에서 좋아하는 음악이 나와야 토론은 잠시 중단되었다. 카페 나무전봇대는 우리의 아지트였다.

이후 담당 선생님이 서클을 맡지 않게 되면서 중창단은 학교 성가대에 편입되었다. 한 학년 올라간 우리도 이전의 선배들처럼 열의는 없었기에 그 과정에서 하나둘씩 빠져나왔다. 그럼에도 아지트는 늘 그 곳에 있었고 우리는 계속 바나나쉐이크와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다.


패닉에 빠져들게 된 건 친구가 뜬금없이 패닉 1집 카세트테이프를 선물해주었기 때문이다. 음악방송 보는 걸 좋아해서 패닉의 데뷔무대를 봤기 때문에 그룹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다만 당연히 앨범 트랙 전체를 들어볼 일은 없었던 것. "진짜 좋다"며 건네기에 호기심으로 플레이어에 카세트테이프를 꽂은 그 날, 그 날이 몇 월 몇일인지 몰라서 원통하다. 패닉 그리고 이적의 팬이 된 날이니까.

다음 날 그 친구에게 패닉에 대한 팬심을 고백할 수 밖에 없었고 이후 내 음악 세계는 그 친구가 물어다 준 온갖 명반으로 명백히 넓어졌다.

패닉 앨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3집이다. 내 서랍 속의 바다라는 메타포도 그렇고 모든 트랙이 개성적이고 재미있다. 2집에서는 <강>을 꼽을 수 있겠다. 어쿠스틱 기타 소리도 그렇고 코드를 짚을 때 느껴지는 마찰음이 살아있어서 삐걱거리는 느낌이 좋다. 긱스로 낸 펑키한 앨범도 좋고 이적, 이라는 이름으로 낸 모든 음반들도 암, 소중하지. 한 곡, 한 곡 참 멋지다.

온통 회색빛이던 어린 날들은 이적의 음악으로 찬란했다. 또래들처럼 흰색이나 노란색 풍선을 흔드는 추억은 갖지 못했지만 학창시절부터 좋아한 가수가 여전히 현역이어서 기쁘고 꾸준히 앨범을 내주어 고맙다.

나에게 패닉 1집을 선물해준 친구는 이후 실용음악을 전공했고 지금은 외국에 나가 음악 감독을 하고 있다. 당신이 하고 있는 게임에 내 친구가 작곡한 음악이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난 그때 나무전봇대에서 꿈꾸던 어른은 되지 못했다. 그저 나이만 한 줌 먹어버린 지금, 어쨌든 계속해서 나로 살고 있으니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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