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에게 보내는, 보지 않는 문자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고,

by 빵곰

고양이를 안는다는 건, 내가 안기고 싶다는 뜻이다. 작년 이맘때쯤, 키우던 강아지를 떠나보냈다. 매번 그를 안는 건 나였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매번 위로가 필요할 때였다. 매번 안기며 따뜻한 곳을 찾았던 거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다섯 명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작은 그들이 학생일 때를 비춘다. 반짝이는 윤슬 앞에서 비말 같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리고 다음 장면, 아파트 창문이 쨍그랑 깨진다. 꿈 깨라는 듯이. 혜주는 경멸하며 째려보고는 지하철을 탄다. 현실로의 출근이다. 학교 다닐 땐 ‘공부할 때가 제일 행복한 거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근데 졸업하고 보니, 알겠다. 누군가 나를 잡아 앉히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앉을 곳을 구걸하고, 내가 앉아야 할 이유를 설득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앉을 수 있어야 고양이를 안을 수도 있다. 서서 가게를 보는 태희와 서 있을 집도 없는 지영은 고양이를 돌볼 수 없었다. 그렇게 고양이는 다섯 명 사이를 오가며, 가엾은 청춘들을 하나씩 안아준다.

출처: 네이버 영화

어른이 되고 나니 친구들 사이에도 ‘급’이 생긴다. 혜주가 4만원짜리 재킷을 살 때, 태희는 작은 칼을 사고, 지영은 아무것도 사지 않는다. 아니, 사지 못한다. 상위 0.9%의 부자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은 전체의 43.9%이라고 한다. 반면에 하위 56.6% 사람들은 1.8%만을 가지고 있다. 피라미드는 아래로 넓어지지만 돈의 경우 정확히 반대 모양이 된다. 1.8%의 좁은 모서리로 모든 피라미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켜켜이 쌓인 돈의 무게는 가장 아래인 지영의 집을 누르고 누르다, 결국 가라앉히고 만다. 혜주와 태희가 집을 가라앉힌 건 아니다. 우리가 그저 태어나고, 그저 열심히 살아가기만 해도 누군가는 먹고 자는 것의 문제로 죽는다. 영화에서는 지영의 이야기를 보기 때문에, 혜주를 볼 때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혜주가 친구들 사이에서 우월감을 갖거나 직원들 사이에서 열등감을 가질 때, 그녀의 감정이 작아 보인다. 그러나 지영의 이야기가 없었다면, 혜주의 이야기는 우리가 절절해서 죽을 것만 같은 우리 자신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당신이 아픈 청춘이 아니라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리가 보지 않으면 모르는 이야기들이 있다는 거다. 지하철 잡상인들이 왜 7색 칫솔 세트를 팔게 되었는지, 왜 그 북새통에서도 전단지를 손에 쥐여주려 하는지, 외국인 노동자들은 왜 크루즈 같은 건 탈 수 없는지.

출처: 네이버 영화

좋아해도 떠날 수 있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남은 이는 그 온기를 마음으로 느낄 수 없다. 가난은 병과 같다. 지영은 말이 없지만,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주상이 시로 표현한다. “누군가가 널 떠난다고 해서 널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야.” 태희는 뇌성마비에 걸린 시인, 주상에게 그렇게 말한다. 주상은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의 시에서처럼 그는 껌처럼 바닥에 달라붙어 있다. 마치 꺼져버린 지영의 집처럼 말이다. 태희는 떠난 그에게 편지를 쓰다가 깨닫는다. 좋아하는 마음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좋아하는 마음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좋아해도 옆에 없다면, 병처럼 퍼지는 비극을 막을 수 없다. 지영이 없는 사이, 무너지는 집을 피하지 못한 할머니와 할아버지처럼. 그래서 지영의 곁으로 향한다. 손에 대단한 걸 쥐여줄 순 없어도 손을 맞잡으면 온기는 줄 수 있으니까. 그들 위로 쏟아지는 돈의 무게를 피해, 지영과 태희는 떠나버린다. 그들의 유일한 생존법이다. 청량한 음악이 깔리고 지영의 문제도 일단락된 것 같지만, 마음이 찜찜한 이유다. 태희가 가진 돈이 얼마나 될까, 그들이 미얀마 남자들처럼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하는 것은 아닐까, 언젠가는 돌아오면 그땐 어떻게 살아갈까. 그런 찜찜한 마음까지가 이 영화의 엔딩이라는 생각이 든다.

출처: 네이버 영화

가끔 이 세상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때면, 어릴 적 꼭 안고 있었던 온기가 그립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래서 매일 밤 커다란 곰인형을 안고 잠든다. 폭신하고 따뜻한 무언가가 필요해서 말이다. 각자의 이야기를 살아가는 모두는, 매일 마음이 밟히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아파하기만 한다. 아프고, 아파서 짜증 난다. 그러나 각자의 이야기를 모아보면 나 역시도 누군가를 밟으면서 살아간다. 밟고 밟히는 난투극이 따로 없다. 그냥 서로를 안아줄 수는 없을까. 피부를 맞닿자는 게 아니라, 서로를 조명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으니, 그저 온기를 나누자는 것이다. 길고양이를 지나칠 수 없어 꼭 한번은 기웃거리게 되는 것처럼. 그냥 살기만 해도, 이 세상은 한여름조차 너무 춥다. 냉기를 뿜을 이유는 없지 않을까. 이 영화는 그렇게 우리에게 문자를 보낸다. 고양이를 부탁해, 나를 부탁해, 온기를 부탁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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