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다른 이름은 불안 없는 슬픔.

by 빵곰

강아지를 좋아하다 못해 키운 사람들, 키웠던 강아지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매우 슬픈 사람들이다. 내가 그렇다. 상태가 좋지 않다고 연락받았던 밤엔 눈물이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다롱이가 죽어가는 병실 밖에서 한 시간 운 것이 그날의 전부였다. 그러나 눈물에 할부라도 있는 것처럼 종종 울음이 왈칵 올라올 때가 있다. 밖에서 저녁을 먹다가, 지하철 계단을 오르다가 문득. 지난번엔 지하철에서 포메라니안을 보다가 울었다. 포메라니안 한 마리가 딱 내 맞은편에 앉았다. 다롱이와 닮지 않은 아이였다. 다롱이는 꼬불꼬불한 갈색 털의 푸들이었고, 포메라니안은 털이 길쭉하고 하얗다. 그래도 단추처럼 까만 눈과 새침한 표정이 닮긴 했다. ‘귀엽다’는 생각이 어느새 눈물이 되어 흘렀다. 왜 눈물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귀여움에 감동한 게 아니라는 것만 분명했다. 꼭 모든 걸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그립다는 마음으로 끝나도 된다. 그리운 건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니까. 분명한 건 그것뿐이니까.

다롱이가 그리운 순간들은 사람에게 체념할 때이다. 여러 번 다시 본 사람에게 ‘그럼 그렇지’로 끝나버리고 말 때. 그러다 내 문제로 의심하게 될 때. 그 모든 시시비비에 지쳐서 피하고만 싶을 때. 그럼에도 사랑이 필요해서 놓아지지 않을 때이다. 나는 왜 누군가에게 온전히 마음을 주지 못할까. 작은 흠집에 쉽게 관계를 팔아버리고 마는 걸까. 어릴 때부터 내가 가졌던 질문들이다. 어릴 적 잠결에 내 뒷담화를 들었던 기억, 나를 떠나갈 것만 같은 사람들과 내가 떠나보낸 사람들, 도저히 떠나보낼 수 없는 사람들. 그 두서없는 기억들 속에서 나는 언제나 사랑을 거부하면서도 갈구했다. 답을 찾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다롱이를 안고 있으면 질문이 사라졌다. 다롱이는 언제나 거기 있었다. 내가 놓아도, 내가 안아도, 내가 찾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 가끔은 귀찮다는 듯이 내 손을 내치긴 해도, 내가 필요할 때면 잠자코 안겨 있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다롱이도 나와 비슷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통을 마구 긁으며 사랑을 갈구하다가 막상 그 품 안에 들어가니 상처 받을까 두려웠던 거다. 그래서 그 부드러운 털을 고슴도치처럼 곤두세웠던 거다.

이제는 다롱이가 없어서 나는 온갖 갈색 털의 것들을 모으고 있다. 내 방 침대에는 크고 작은 곰 인형 두 개가 있다. 잘 때마다 어린애처럼 꼭 끌어안고 잔다. 그래도 가슴께에 심장박동이나 따뜻한 온기가 없어서 가끔 울게 되나보다. 이제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조건 없는 따뜻함을 느끼게 해줘서 고마웠다고, 너의 존재로 조건 없는 사랑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불안이 없는 온전한 슬픔을 느낄 수 있어 다행이라고, 그렇게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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