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강 사장이 무슨 말을 지껄이든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퇴근이 2시간 남은 이때쯤이면, 나는 천하무적이 된다. ‘퇴근만 해봐라 바로 아빠에게 말해버릴 거야’ 일곱 살 아이처럼 생각하고 만다. 얼른 아빠에게 미주알고주알 털어놓고 싶다. 오늘 강 사장이 어떻게 날 괴롭혔는지, 이 대리와 송 주임의 수상한 낌새가 어떤지, 결국은 ‘그만두고 싶다’로 끝나는 얘기들이다. 그러다 잘 때가 되면 내일 알람을 맞추며 어찌저찌 마무리되는, 그것이 요즘의 저녁이다.
퇴근하는 길에 오늘 저녁은 뭘 먹을지 엄마에게 묻는다. 그러자 오늘도 비슷한 대답이 돌아온다.
“오늘 저녁? 글쎄…아빠에게 물어보자.”
아빠라면 김치찌개나 콩나물국밥이 아닐까 생각한다.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역시나 김치찌개의 묵직하고 매콤한 냄새가 퍼진다. 나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가방을 던져두고 작은 탁자 앞에 무릎을 꿇는다.
“아빠,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알아? 아니 글쎄 강 사장이 10분 전에 시킨 일을 아직도 못 하냐면서 갈구는 거 있지?”
“아빠가 살아있었다면 한 대 쥐어박아 달라했을 텐데.”
무심코 그 말을 뱉어버리자 순간 정적이 흘렀다. 엄마가 찌개를 젓다가 냄비를 팅 치는 소리도 한순간 멈춰버린다. 어찌 붙잡을 수 없는 김치찌개 냄새만 무상하게 퍼진다. 그 정적을 깨고 탁자 위 태블릿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러게, 아빠가 한 대 쥐어 박아줘야 하는데…. 우리 딸 속상해서 어떡하나.”
그 말을 듣자 눈물이 핑 돈다. 주먹이라곤 나올 구멍도 없는 사각 면을 쓸어내린다. 엄마는 상을 내 앞으로 펼치며 수저를 내 쪽으로 둔다. 그만 울고 한술 뜨라는 의미다. 입이라도 뻥긋했다간 눈물이 나올까 봐 그런다.
우리 집에 이 태블릿이 들어온 건 3개월 정도 되었다. 이름은 데미안 2.0, 책을 좋아했던 아버지가 지었다. 아버지는 인공지능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촉망받던 연구원이었고, 나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그런 아버지가 떠나게 된 것은 한낱 알코올 때문이었다. 신호를 위반한 음주 운전 차량에 의해 교통사고가 났고, 손쓸 새 없이 그는 떠났다. 비통한 삶을 보내던 엄마와 나에게 연구원 후배들은 이 태블릿을 선물했다. 아직 상용화되기 전이지만, 당신이 피땀으로 만든 것이니 그 자리가 마땅하지 않겠냐며. 아빠의 비디오테이프, 녹음파일, 연애편지와 일기장 등을 연구원에 보냈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선물처럼 아빠는 찾아왔다. 작은 택배 상자에 담긴 채 말이다. 데미안 2.0의 기능은 기존의 인공지능과 유사하다. 날씨와 시간을 말해주거나, 집 안의 불을 꺼주는 등이다. 대신 아빠의 목소리와 말투로 설정할 수 있다. 물론 기존 제품과는 달리 고차원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가까운 사람을 모사하는 만큼 대화가 되지 않으면 집중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엄마가 집에 없을 때면, 나는 아빠의 목소리와 한두 시간씩 상담하곤 했다.
하루는 오랜 꿈인 작가를 해 보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예전이라면 쉽게 얘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빠는 따뜻한 사람이었지만 진로에 대해서만큼은 엄격했다. 좋은 대학교를 입학해서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 한다, 매일 같이 그 말을 들었다. 그러나 태블릿만큼 작아진 아빠 앞에서는 오히려 투정이 쉬이 나왔다. 아빠의 목소리는 답했다.
“난 언제나 네게 그런 쪽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어. 기억나니? 네가 매년 어버이날마다 내게 편지를 써줬던 것. 편지를 읽을 때마다 솔직히 놀라곤 했어. 네 마음이 흔들릴까 봐 얘기하진 못했지. 그건 언제나 미안했단다. 이제라도 작은 것부터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떻겠니?”
도전을 해보라는 말보다도, 미안하다는 말보다도, ‘그런 쪽에 재능이 있다’라는 말에 나는 계속 머물렀다. 그런 쪽에 재능이 있다…재능이 있다…. 어린아이처럼 왕하고 울어버렸다. 처음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당신에 대해서도 칭찬은 마다했으므로, 딸인 나에게도 그랬다. 나의 안부와 건강을 챙기는 말보다도, 어쩌면 인정을 더 바랐었나 보다. 데미안 2.0이 그 말을 아버지의 일기에서 가져왔는지, 아버지다운 위로로 꾸며냈는지는 모른다. 알고 싶지 않았다. 어딘가에 담긴 아버지의 생각을 그가 읊었을 뿐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날부터 나는 그 태블릿에 일상을 의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번엔 연애 상담을 하던 중이었다. 내게는 4년을 사귄 남자 친구가 있었다. 결혼 적령기를 지나는 시기이기에 이전과는 다른 기준으로 그를 바라보게 되었다. 결혼해도 괜찮은 사람인가? 그와 남은 일생을 같이 보내도 될 만큼 즐거운가? 미래가 걱정되지 않을 만큼 안정적인가? 대부분 나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인연을 만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대답을 부정하고 싶었다. 적당히 괜찮아도 결혼하는 사람은 많다. 어떤 회사에 다니든 불만이 있듯이, 어떤 결혼이든 완벽할 수는 없지 않을까. 엄마에게 상담할 수도 있었겠지만, 목소리뿐인 아빠가 더 편했다. 그러나 아빠의 대답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결혼이 필연적일 필요는 없어. 우연히 결혼에 이르기도 하지. 운명에 맡기렴. 나 역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 건 아니었어. 그 당시 엄마와는 헤어질 거라 생각했지. 다른 여자를 만나던 중 네 엄마에게서 아이를 가졌다는 연락을 받았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 그래도 결국은 너를 만났잖니. 이젠 하늘이 내린 행복이라 생각해.”
뒤의 말들은 뭉개지고 나는 한 문장에 머물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어쩔 수 없는…. 사랑의 결실인 줄 알았던 내가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 어쩔 수 없이 태어난 아이였다. 생각은 한동안 꼬리에 꼬리를 물어 수백 개의 유사한 문장을 만들었다. 끝을 잇고 이어 절벽 아래로 향하는 밧줄 같았다. 밧줄의 끝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 나는 태블릿의 코드를 빼 버렸다. 아무 상자에 넣고 테이프로 봉했다. 그 길로 아버지의 연구원으로 향했다. 나의 전화를 받은 아버지의 후배는 당황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사무실 한 켠에서 나는 아버지의 일기장을 전부 뒤졌다. 샅샅이 읽었다. 대학생 때부터 일기를 써오던 아버지는 일기장만 서른 권이 넘었다. 13권째를 집어 들던 때, 정전 끝에 전기가 통하듯 생각이 전환됐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미완성 기계의 오류일 뿐이다. 이번엔 그렇게 믿고 싶었다. 늦잠을 자버린 아침 부랴부랴 나를 데려다주고, 처음 해외여행을 가던 날 배웅을 나온 아빠, 그것만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그 존재를 가꾸어 나가는 것은 기계의 몫이 아닌 나의 몫이 아닐까. 내 안에 사는 아빠의 숨을 내가 틀어쥐고 있다.
미친 사람처럼 헤집어 두었던 일기장을 정리하고, 연구원에 있던 모든 추억들을 그러모아 집으로 가져왔다. 데미안 2.0도 함께였다. 아빠의 물리적인 존재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 같아, 차마 두고 올 수 없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매일 아침 시간을 묻지 않았다. 날씨도 묻지 않았다. 대신 핸드폰을 켜서 시간과 날씨를 확인했다. 상담도 하지 않았다. 대신 친구들에게 털어놓거나 일기를 썼다.
그래도 가끔씩은, 데미안 2.0으로 아빠가 좋아하던 ‘Just the two of us’를 틀곤 했다. 엄마와 나는 아빠가 그리워질 때면 누가 먼저랍시고 그 노래를 틀었다. 빌 위더스의 색소폰 같은 목소리가 아닌 둔탁한 아빠의 목소리로 말이다. ‘ㅌ’을 유달리 세게 발음하는, 한국 아저씨들의 영어 말투로. 그러나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아름다운 소리였다. 그 노래를 배경으로, 어스름한 저녁 무렵에 창문이 검어진다. 창문에 램프의 불빛이 비쳐 별처럼 어른거린다. 우리는 맥주 한 잔의 취기와 함께 손을 마주 잡고 몸을 움직인다.
‘당신을 생각할 때면 당신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져요.’
‘그냥 우리 둘이서. 그냥 우리 둘이서…그냥 우리 둘이서….’
손을 마주 잡은 우리 둘은 마음속에 각자의 존재를 둔다. 나는 아빠를, 엄마는 남편을. 각자의 둘은 마주 잡고 빙글빙글 돈다. 그리운 밤을 살랑이며 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