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jiWnAd-ggUU?si=P-MrkX0uNoN88Upf
MBC 주말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는 '인사모(인기없는 사람들의 모임)' 특집이 진행 중입니다. 최근 에피소드에서는 모의 면접을 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마치 실제 입사 면접인 것처럼, 대기업의 면접관을 모셔놓고 질문과 대답을 주고 받는 스케치였죠. 평소 자주 보는 예능은 아닙니다만, 업이 업인지라 유심히 내용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제 관심을 끄는 질문이 하나 나왔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회사에서 시킨 일이 사회적으로는 피해를 주지만 회사 이익에는 도움이 된다.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이 질문은 일견 회사와 사회의 이해득실을 따져보라는 질문 같아보이지만, 사실은 너는 회사를 위해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는 무서운 질문입니다. 사회는 회사보다 더 크고 더 중요하지만, 가까이에서 나에게 하루 양식을 주는 곳은 회사이니까요. 요즘 면접에서는 주고받기 불가능한 질문입니다. 후진적인 기업문화를 가진 블랙기업으로 찍히기 딱 좋은 질문이지요. 특히나 최근 같이 회사가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에 물의를 끼치는 소식이 뉴스에 종종 나오는 세상에서는 더더욱이요. 이 질문의 질문자가 대기업 면접관이 아니라 50대 예능인인 유재석이라는 것도 생각해 볼만 합니다. 만약에라도 이 질문을 면접관이 하셨다면 그 파장이 어땠을지.. 그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네요.
제가 마치 면접장에 있는 면접자라고 상상하고, 여러 가지로 머리를 굴려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영상 속 배우 허성태의 답변이 모범답안이라고 생각합니다. "No, 하지 않겠다." 개인의 입장에서도 맞고, 기업의 입장에서도 이게 맞습니다. 눈 앞의 단기적인 이득이 더 크고 장기적인 손실로 이어지리라 생각한다는 말 정도 덧붙여주면 좋겠네요.
그런데 질문을 다음과 같이 다소 미시적으로 바꾸어 본다면, 그건 좀 더 당혹스러운 질문이 될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 시킨 일이 너의 개인적인 신념과 다르나, 회사에는 도움이 된다. 너는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이 질문은 좀더 복잡합니다. 앞서의 질문이 회사를 위해서 사회와 사회라는 단어가 대표하는 이름 모를 수많은 타인들을 희생시키겠냐고 물어본다면, 이 질문은 회사를 위해 신념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어디까지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인가 물어보는 것이기 때문이죠. 내 이익 때문에 남을 희생자로 만드는 것은 싸이코패스이거나 그 이하이죠. 그걸 시키는 회사도 당연히 정상이 아니라고 봐야 할겁니다. 하지만 타겟이 본인의 신념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미묘해집니다. 나의 신념을 지키겠다는 것이 어쩌면 나의 유치한 이기심의 발로가 아닌지 갑자기 의심하게 되어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장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잡아먹기 시작하더군요.
- 나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나는 어떤 것을 내놓을 수 있을까?
- 내 사랑하는 가족의 안녕을 위해서 나는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을까?
- 우리 팀이 다들 열심히 하는데, 나는 너무 나 자신만을 챙기는 것은 아닐까?
- 신념이 밥먹여주냐??
그리고 제 머리는 곧바로 부랴부랴 나의 신념의 목록을 나열하고,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과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 그리고 그 사이사이의 스펙트럼을 채워나가는 작업을 진행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퍼뜩, 이런 접근으로는 면접장에서 절대로 제한된 시간 내에 정리된 답변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러지 말고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원답게 거래의 관점으로 접근하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하자면 작은 신념들은 회사와 주위 사람을 위해 기꺼이 접어 보겠으나, 큰 신념은 특정한 조건이 필요하다 라는 식으로요.
그리고 그 조건들의 예시로 아래의 것들을 제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충분한 대의명분이 있다.
걸맞는 보상이 주어진다. 보상은 거대하면서 동시에 안전하면서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나에게 지시한 사람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다. 또는 그에게 갚아야 할 심리적 빚이 있다.
지시한 내용이 신념에 반하더라도, 꽤 흥미롭다.
이 정도면 적절한 대답이 되지 않을까요.
PS. 참고로 저는 그렇게 엄청 거대한 신념을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은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