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핵심가치

일이 되게하는 우리만의 방법

by 주홍은하수

어느 정도 사이즈가 되는 조직치고 핵심가치가 없는 조직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어느 정도냐면 제가 다니는 자그마한 교회도 핵심가치를 이것저것 표방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또한 앞으로는 이런 핵심가치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될 예정입니다. 2030년부터 모든 코스피 상장기업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필수적으로 공시해야하는데, 제가 찾아본 여러 보고서들의 첫 부분에는 항상 기업의 핵심가치와 그 설명이 들어있었습니다. 지속가능할 ’가치‘에 대한 내용을 작성해야 할 보고서의 흐름상 맨 처음 부분에 핵심가치가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일겁니다.


이렇게 중요한 핵심가치이건만, 현장에서 아마도 가장 미움받는 개념을 뽑으라면 아마 이 핵심가치가 첫 손에 꼽힐겁니다. 조직의 어떤 사람들이 정말 수많은 고민과 노력 끝에 수많은 툴을 활용해가며 힘써 핵심가치를 만들어내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핵심가치가 그 외의 인원들에게 존중받으며 조직풍토 속으로 성공적으로 스며들었다는 이야기를 저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의미없는 장식물처럼 취급되거나, 나아가 어떤 곳에는 핵심가치와 이를 만드는 부서들을 싸잡아 세상에 둘도 없는 비용 낭비적 행위라며 비난하고는 하지요.


왜일까요? 왜 열심히 만들어낸 단어들이 이렇게나 조직 내에서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못하고 공허해져버렸을까요? 저는 핵심가치가 무엇이고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해 잘못 이해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실제 많은 조직의 핵심가치들을 읽고 있노라면 ’이게 도대체 왜 핵심가치야?‘ 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순간이 많습니다. 소구력도 생명력도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는 그야말로 듣기 좋은 그럴듯한 말 대잔치에 불과하거나, 가치도 아닌 것을 가치로 적어놓은 것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다니는 교회의 핵심가치 중에는 ’해외선교‘가 있습니다. 이걸 ’가치‘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핵심가치의 가치에 대해서 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보겠습니다.


핵심가치는 how를 표현한다.


지난 번까지의 설명한 개념들이 있습니다. 간단히 종합해보자면, Vision은 Where(우리는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Mission은 What(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Motivation은 Why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핵심가치는 How에 해당합니다. 일을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표현이죠.


예를 들어 여기 하나의 일이 있다고 합시다. 간단하고 쉬운 일일지라도, 이 일을 처리하는 데 여러 접근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침착하고 냉정하게 접근할 수도 있고 열정적이고 과감하게 부딪칠수도 있죠. 흔한 MBTI 식으로 표현하면 P냐 J냐, N이냐 S냐의 같은 것이죠. 만약에 일을 하는 사람이 개인이라면 타고난 성격대로 처리하면 됩니다.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잘 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되죠. 하지만 복잡한 프로젝트를 조직의 사이즈에서 풀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문제는 좀 달라집니다. 업무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업무 분담은 어떻게 할지, 리더는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 두 재료 중에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등등요.


이런 모든 상황에 대해 사전에 정의된 매뉴얼이 있으면 참 좋겠지만 대부분은 그런게 없습니다. 세상은 계속 변화하고 과거와 똑같은 상황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지요. 선택에 있어서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이 딱 무 자르듯이 나뉘어서 명료하게 제공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관점으로 봤을 때는 1안이 좋아보이고 저런 관점에서 봤을 때는 2안이 좋아보이죠. 다양한 방안 중에 대체 뭐가 옳은지, 옳은 방향이 정말 있기는 한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하고는 합니다. 최악은 구성원끼리 다투는 것이죠. 뭐가 낫다 아니다 다른 것이 더 낫다. 그것도 아니다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등등등


“논쟁들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사실과 진실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무슨 가치를 우선시하느냐이다" 이 말은 제가 고등학교 때 배운 내용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내용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이 말의 힘을 점점 더 느낍니다. 대부분의 논쟁하는 사람은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있는게 아닙니다. 바라보는 위치가 다르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 다를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가치가 더 우월하느냐고 논쟁하면 되는게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요, 우리는 어떤 가치가 다른 가치보다 모든 경우에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주관, 취향 혹은 개인적인 경험이나 전수내려온 역사성에 근거하는 것이지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조직이라면, 매우 높은 확률로 일에 접근하는 나름의 개성있는 철학이나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긴 시간 동안의 생존을 통해 검증받은 것이기에 팬시한 최신 방법보다도 더 조직 내에서 더 존중받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조직의 선배들은 이를 몸으로 체득하고 있을거구요. 실제 업무를 통해 암묵지의 형태로 후배들에게 조금씩 조금씩 전파할 겁니다. 전파의 대부분은 의사결정의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조직에서 어떤 선택이 이루어졌을 때 구성원들은 그 선택에 있어서 어떤 것이 우선시되는지, 어떤 것이 고려되지 않는지, 어떤 것이 무시되는지 절반쯤은 직관적으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 후배들이 성장하면 똑같이 그 다음 세대에게 전파하겠지요. 그리고 그 다음 세대도 유사한 의사결정을 하게 되는 순간이 왔을 때, 아마도 은연중에 선배들과 같은 시야에서 의사결정을 내릴 겁니다. 이렇게 반복되면서 조직은 조직만의 어떤 개성이 더욱 공고해져 가게됩니다.


이렇게 조직이 업무를 대하는 방법에 대한 개성이자, 조직이 그동안 생존해온 이유. 다시 말해 조직의 성능을 남들보다 탁월하게 만드는 어떤 방식 또는 스타일. 아리스토텔레스 식으로 표현하면 이 조직의 아레테(Arete)를 이루기 위한 어떤 수단이나 마음가짐 또는 방향성을 명료하게 문서화한 것이 바로 핵심가치입니다. 그래서 핵심가치는 그다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돌이켜 보았을 때 찾을 수 있는 어쩌면 아주 당연한 무엇인가가 바로 핵심가치이죠. 하지만 핵심가치를 만들 때에 대부분 그렇게 만들지 않습니다. 학창시절 가훈과 교훈을 만드는 것과 똑같은 오류를 범합니다. 아주 멀리서 멋들어진 파랑새를 굳이 가져와 어울리지 않게 치장하는 오류를요. 우리와 다른 것을 가져와 우리를 수식하는데 사용하는 것이니 그것이 우리가 핵심가치에 거부감을 보이는 첫번째 원인입니다.


핵심가치에 거부감을 보이는 두 번째 원인은 뻔한 표현 때문입니다. 누가 봐도 당연해 보이는 것은 핵심가치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런 방향성을 제공해주지 않아서 어떤 의미값도 제공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사소통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기업의 핵심가치 중에서 해당하는 예시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인간존중’ 같은 게 있습니다. 느낌상 기업 3개 중에 하나는 이걸 핵심가치로 넣는 것 같습니다. 저는 볼 때마다 의아합니다.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 기업이란게 있을 수 있나요? 기업은 선택적으로 인간을 존중하는 기관이었던 것입니까? ‘윤리경영’ 도 다빈출 핵심가치입니다. 저는 황당합니다. 윤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물건을 파는 방법이란게 있습니까? 윤리적이지 않으면 감옥에 가야죠.


박정희 시절의 “착하게 살자” 라는 표어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착하게 살지 않은 사람에게 제시되었던 말입니다. 그런 점을 참작해보면 알쏭달쏭해집니다. 제시하는 핵심가치들이 진정 스스로의 탁월성의 근거가 되는 개성을 보여주려한건지 아니면 그 동안의 잘못을 고백하는 내용인지요. 아니면 그 기업이 태어났을 때는 이런 내용을 핵심가치로 정해야할 만큼 암흑의 시대였던 걸까요?


이외에도 많습니다. ‘합리성’, ‘성실함’, ‘존중’ 등의 단어가 핵심가치에 들어가 있을 때마다 좀 기운빠집니다. 이들은 핵심가치가 아니라 최소한의 기본 사항이라고 봐야 하고,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죠. 물론 ‘기본을 지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라는 식으로 그러한 핵심가치들을 변호해볼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찝찝함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뭔가 위화감이 들지요. 최소한 서구권 기업의 핵심가치들은 이런 억지를 부리지 않거든요.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요?


고려대학교 심리학부에 허태균 교수님이 있으십니다. “어쩌다 한국인"이라는 저서로 유명하시죠. 책의 내용은 다름 아닌 한국인의 특성에 대한 것입니다. 외국인과 다른 한국인만이 가진 특성에 대해 분석한 책이죠. 그 책에 보면 ‘복합유연성'이라고 하는 개념이 나옵니다. 개념을 쉽게 풀 자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을, 보다 정확하게는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하나를 잃는다는 개념, 특히 하나의 장점을 얻기 위해 다른 단점을 감수하는 것을 대단히 싫어한다는 개념이죠. 이에 따라 한국인은 팔방미인을 선호하고 단점 없이 둥근 사람을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허태균 교수 강연 링크 : https://youtu.be/VQeI9CgFRao?si=aI7KXkVjQyhabWcG


이 개념을 알고나자, 왜 그런 술에 물 탄 것 같은 애매하고 밍밍한 단어들이 핵심가치로. 자주 쓰이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핵심가치라는 것은 언제나 동전의 양면같은 특성이 있어서, 핵심가치의 단어를 뾰족하고 뚜렷하게 쓸수록 장점과 동시에 단점 또한 잘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용기 있게 하자고 하면 좀 무모해보이고, 침착하자고 하면 좀 소심해보이니까요. 특히나 남이 샅샅이 읽게될 문서에 그런 트집 잡힐 단어를 쓰는 것은 정말이지 ‘체면’이 깎이는 리스크가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핵심가치로는 비교적 안전한 단어, 모두가 100% 동의하는 단어, 아무리 열심히 추구한다 해도 흠잡힐 일이 없을 것 같은 단어를 늘어놓게 되는 것이죠.


또 하나 추가해보자면, 우리나라는 가치 체계에 대해 일신교적인 마인드로 접근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합니다. 다신교는 다양한 신이 있어서 하나의 신이 하나의 미덕을 상징합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 신화나 힌두교 신화를 떠올려보아도, 지혜의 신이 따로 있고, 용기의 신도 따로 있지요. 그래서 본인이 가진 직업이나 처한 상황, 환경에 따라 그에 맞는 신에게 찾아가 기도드립니다. 어부, 농부, 사냥꾼, 대장장이는 각각 기도드릴 신이 분명히 다를테지요. 일신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일신교는 신이 오직 하나라 모든 가치의 최상급을 오롯이 하나의 존재가 독차지합니다. 여러 신전을 돌아다닐 필요가 없으니 편리하기는 한데, 몰개성한 느낌도 듭니다. 모든 가치가 하나의 차원으로 축소된 셈이니까요.


인터넷을 보면 티어표가 그렇게나 많습니다. 종류가 무엇이든 1티어와 2티어, 3티어를 나누고자 하고 어디가 경계인가에 대해 의견을 나누죠. 이 단계에서 충돌이 종종 발생하곤 하지만, 저는 거기까지는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내 평가와 남의 평가는 당연히 다를 수 있죠. 살아온 경험이 다르고 선호하는 바가 다를테니까요. 너는 그것이 좋은가? 나는 이것이 좋다. 이 정도 선에서 의견교환을 나누고 끝내면 참 아름다울 겁니다. 그게 아니라 티어의 기준을 굳이 일치시켜야하고, 이미 정해진 기준을 맹목적으로 따라야하며 이것을 따르지 않는 경우 비유적인 의미로 이단이나 사문난적이라고 찍어내릴 때 비극이 시작됩니다. 이게 안좋은 의미에서 일신교적인 마인드이죠. 요즘 젊은 사람들을 보면 제가 젊을 때와는 또 다르게 각자의 취향에 따라 타인의 시선에 연연해 하지 않고 옷을 입고, 음악 등의 컨텐츠를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쏠림현상이 적고, 상대의 취향을 존중하지요. 조직의 핵심가치 또한 그렇게 접근하면 안되는 걸까요?


그래서 저는 우리가 속하고 있는 작은 조직에서부터 핵심가치를 다음과 같이 바꾸어보기를 조심스레 제안드려봅니다.


핵심가치 만들기


1) Triangle Constraint

여러분이 어떤 작은 조직의 리더라면 우선 Triangle Constraint 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마주하게 되는 세 가지 제약조건에 대한 것으로서 품질 / 속도 / 비용을 말합니다.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고품질의 결과물을 빠른 속도로 달성할 수 없습니다. 둘은 트레이드 오프 관계입니다. 품질이 높아지면 시간이 많이 들고, 소요시간을 줄이려면 품질은 반드시 떨어지게 되어있지요. 이 둘을 동시에 개선하려면 비용을 높여야 합니다. 높은 비용으로 더 뛰어난 사람을 데려오거나 더 많은 기계, 더 빠른 기계를 사거나 해야합니다. 혹은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하던지요.


작은 조직의 리더에게 있어서 많은 경우, 비용은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의 바깥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결정할 수 있는 것은 품질과 시간의 수평선 상에서 어느 지점을 목표로 해야하는가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당연히 최대한 빠르고 가장 높은 수준으로 정확하게 해내야지!” 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만, 그렇기에 위에서 지적했듯 아무런 의미값을 지니지 못하는 공허한 말입니다. 리더가 해야할 일은 본인 팀의 수준을 파악하고 팀의 미션을 고려하였을 때, 둘 중 어느 지점을 더 우선시해야하는 지를 결정하고 그에 대해 구성원에게 주문하는 것입니다. 신속하게 목업을 만들어 다음 단계로 보내는게 중요한 지, 조각 하나하나의 섬세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챙겨야 하는지를 미리 정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팀은 특성상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게 제일 중요해. 빠른 의사결정을 얻을 수 있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우리 팀은 조금 느리더라도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검토를 마친다음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우리 팀은 최고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어. 속도와 품질 모두 무조건 최상급이어야만 해"


핵심가치를 정하고 실천할 때,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핵심가치가 0 또는 1, All or Nothing의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품질을 중시한다고 속도를 내다버리는 것이 아니요, 속도를 우선한다고 엉망진창인 채로 진행해도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속도와 품질의 모든 조합이 있는 하나의 커다란 스펙트럼 상에서 우선시 해야할 것이 둘 중 어디인지를 정하자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핵심가치를 정할 때 자주 오해가 생기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2) 후보 단어 Pool 만들기 그리고 선택하기

속도와 품질 그리고 비용에 대한 함수를 고려하는 것으로 핵심가치의 뼈대는 얼추 세운 셈입니다. 이 다음 단계는 정말 핵심가치로 내세울만한 후보 단어들을 뽑아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주로 다음의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1. 단어 Pool을 구성하고 2. 그 중에 중요한 단어들을 뽑습니다. 이 때 단어 pool과 단어 선정시 인터뷰나 설문조사 방법을 주로 쓰는데, 피상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고민해야 할 지점을 나누고자 합니다.


[독특성 고려하기]

핵심가치는 특성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각 문명들이 처한 자연적 환경의 한계에서 그 문명의 특성과 방향성이 나타나듯, 핵심가치 또한 환경과 특성적 조건과 유관한 내용이어야 합니다. 스타트업과 은행, 고등학교 동아리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다르기 때문에, 내세워야 할 핵심가치가 다릅니다. 중공업, 중화학 등 중후장대한 사업을 하고 있는 조직과 모바일 게임 서비스를 하는 조직은 환경이 다르고 또 문화도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또 동일한 회사 내의 조직이라 할 지라도 영업, R&D와 재무 조직은 직무의 특성상 추구해야 할 방향이 각각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몸담은 회사의 R&D 조직은 크게 세 연구소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신제품을 개발하는 연구소, 기존 공정을 개선하는 연구소 그리고 실험 결과물의 데이터를 중점적으로 분석하는 연구소였지요. 그 세 연구소는 겉으로 보기에는 ‘연구소'라는 동일한 카테고리 안에 있었지만, 그 속에 속하는 사람들의 특성, 일하는 방식, 문화가 모두 달랐습니다. 신제품을 개발하는 연구소는 시장 진출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행동하는 스타트업의 분위기가 있어 팀 전체가 한 주제에 몰입하는 집중력이 탁월했지만 외곬수적인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공정 개선 연구소는 문제해결도 중요하나 다양한 케이스 확보를 통한 실력의 축적도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프로젝트에도 다양한 접근을 시도해보는 것을 좋아했고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가지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죠. 데이터를 분석하는 연구소는 속도가 첫번째로 중요했습니다. 결과물을 분석하지 않으면 프로젝트의 결론이 늦어지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곳에 분석을 의뢰하는 내용에는 기존에 해보지 않은 물질, 해보지 않은 물성도 많았습니다. 이것을 어떻게든 제한 시간 내에 분석해내야 하는 것이 이 조직의 특징이었지요. 그래서 이 조직은 시니어 선배들의 다양한 분석 시도들에 대한 경험을 전수받는 것이 늘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저는 이 세 조직을 같은 R&D조직으로 간주해버리고, 동일한 핵심가치를 가지는 것에 늘 불만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세 연구소가 같은 특성을 공유하고 있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정체성을 가진 소규모 단위의 조직에서 스스로의 핵심가치를 확보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핵심가치는 흔히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표상이 아닌, 그 조직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역사를 탐색하여 나오는 경로의존적인 단어여야만 합니다.


[성공사례 리뷰하기]

환경과 그에 따른 조직의 특성도 중요하지만 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특성이 성공에 기여했느냐 아니냐 입니다. 강렬한 성공경험은 이후 그 조직의 의사결정 순간마다 반드시 반복적으로 떠올려지게 되어있습니다. 그 때 우리가 무엇을 했지? 어떻게 아이디어를 떠올렸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갔지? 되풀이하여 곱씹어보게 되지요. 혹시 조직의 역사가 길다면 분명히 조직 내에 전설처럼 전해내려 오는 누군가가 있을 겁니다. 성공과 영광의 순간을 가져다 준 누군가요. 중요한 결정의 순간마다 그의 말, 그의 행동, 그의 선택들이 다양하게 반추되고 또 분석되지요. 그는 초대 리더나 개국공신일수 있고, 우리를 떠나 다른 조직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둔 누군가일수도 있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의 성공은 조직 내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에 분명히 영향을 끼쳤습니다. 왜냐면 모두가 성공하고 싶은 세상에서 누군가의 성공은 모범답안지처럼 기능하니까요.


이런 영향을 그 조직만의 성공DNA라고 흔히 부릅니다. 저는 조직의 풍(風)또는 스타일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성공경험이 있는 조직은 모두 저마다의 풍을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그 성공이 너무 과거의 일이라 잠깐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졌다면 그것을 다시 되살려야 하는 것이고, 그 스타일이 지금은 떠난 리더의 강렬한 개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없이 구현할 수 있도록 복원해나가야 합니다.


핵심가치를 선정하고 이를 조직 내에서 전파하는 시점에서 부딪치는 가장 큰 장벽은 바로 무관심이죠. 그 핵심가치의 단어가 pool에 있는 수많은 단어 대비 굳이 더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겁니다. 성공사례는 이 지점에서 가장 큰 근거가 되어줄겁니다. 이 핵심가치는 과거에 성공했던 것이고 우리가 가장 잘했던 것이기도 하다. 혹은 이 핵심가치는 과거 가장 성공했던 그 사람이 늘 강조하던 핵심가치다. 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죠.


[예시 Pool 자료]

실무적인 도움을 드리기 위해 제가 개인적으로 정리했던 단어 Pool 자료를 아래와 같이 공유해봅니다. 이 단어 자료는 역량 사전 등에서 주로 쓰이는 단어들을 최대한 중복을 줄여서 간추려 본 것입니다. 과거에 회사에서 활용할 목적으로 작성한 것이라 모든 경우에는 잘 맞지 않는 단어가 있을 수 있는 것에는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총 00개의 단어와 정의입니다. 조직의 특징과 성공사례에 맞는 핵심가치를 뽑아내는데 이 Pool을 처음의 참고자료로 두고 조금씩 수정해 나가는 용도로 활용해주시면 좋겠습니다.



3) 의문 : 굳이 단어형태여야 할까?

제가 공유해드린 예시 자료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핵심가치로 쓰이는 단어와 같이 그 단어가 실제 업무 환경에서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같이 붙여놓은 것이죠. 제시된 핵심가치 단어의 일반적인 뜻과 아주 엄밀한 의미에서 맞지 않는 경우도 일부 있습니다. 그런 불일치의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굳이 설명을 달아놓은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설명이 없으면 사람들은 해석을 본인이 하고 싶은대로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핵심가치 중 하나를 “깔끔함"이라고 정했다고 합시다. 그럼 이것을 본 구성원들은 어떻게 행동할까요? 어떤 사람은 더욱 용모와 패션을 꾸미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은 책상 주변을 정리하겠지요. 어떤 사람은 메일로 전달한 업무 지시사항을 더 명확히 하기 위해 단어와 표현을 평소보다 더 고민합니다. 세 사람은 모두 틀리지 않았습니다. 핵심가치 대로 행동하려고 했지요. 그렇다면 의도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일부였나요 전부 다 였나요? 더욱 비극은 이 해석을 두고 구성원이 부딪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핵심가치를 굳이 평가와 승진의 잣대로 쓰려고 시도할 때 이런 사고가 주로 발생합니다.


어떤 사람은 핵심가치마다 원하는 취지와 권장하는 가이드를 정교하게 달아놓으면, 다시 말해 긴 주석을 달아놓으면 이런 문제가 없어질 것이라는 의견을 내기도 합니다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너무 순진한 접근입니다. 제가 회사 생활을 통해 배운 것 중 정말 확실한 진리 중 하나는 바로 ‘길면 안 읽는다' 입니다. 수많은 매뉴얼이 이 진리 앞에 스러져갔지요.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가능한 솔루션은 문장이 아니라 단어를 쓰는 것입니다. 배달의민족이나 톰 삭스 10 bullets를 예시로 들 수 있겠습니다.


(배달의 민족 : 송파구에서 일을 더 잘하는 11가지 방법)

https://story.baemin.com/3359/


(톰 삭스 : 10 bullets)

공식 : https://youtu.be/49p1JVLHUos?si=cZDSL6-RHA7m_jh9

해설편 : https://youtu.be/kNezTt32WEI?si=Dls-CHHF8PAssc9G


사실 문장형태가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아주 멀리는 십계명에서 가깝게는 파이트클럽의 예시로 볼 수 있듯이 오히려 문장이 명료함과 개성을 확보하는데에는 더 도움이 됩니다. 다만 문장 형태가 잘 쓰이지 않는 이유는 문장을 핵심'가치'로 생각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핵심'원칙'이었으면 아마 다들 안심하고 문장을 사용하지 않을까 싶네요.


------

어렵게 만들어낸 비전과 핵심가치를 조직 내에 단단하게 심어놓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자칫하면 그 내용들은 그저 벽에 걸린 박제처럼 숨을 잃고 죽어갈 수 있으니까요. 지속적으로 강조하여 스스로의 삶과 관련된 것으로 체화되게 하려면 말이 아닌 행동 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작업을 리추얼이라 부르고자 합니다. 리추얼은 아침의 회의일수도 있고, 주고받는 메일의 형식일수도 있으며, 회식일 수도 있습니다. 시무식일 수도 있고 워크샵일 수도 있지요. 다음 리추얼 편에서는 해당 내용을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사랑을 잃은 조직, 사랑을 잊은 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