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말
블로그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유튜브와 영상매체로 가득한 이 시대에 블로그를 시작한다는 것이 다분히 시대착오처럼 보이지만, 떠오르는 생각과 모아놓은 자료를 차분히 한 공간에 펼쳐놓고 정리하기엔 텍스트와 그래프만 한 것이 없다는 믿음으로 첫 발자국을 떼고자 합니다.
이 블로그의 운영 목적은 '어떻게 일 잘하는 조직을 만들까?'라는 질문의 답을 고민하는 것입니다. '조직 성능 향상 방법 탐색'이라고 10글자 한자로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사실 진부한 주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접근법으로 내놓은 독창적인 솔루션들로 이미 시장은 가득합니다. 서점에도 인터넷에도 팟캐스트에도 유튜브에도, 그리고 그렇게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당장 여기 브런치에도 관련 콘텐츠가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압니다.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분야에 대한 블로그를 새롭게 연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자칫하면 이 블로그는 이미 수많은 위대한 선배들이 써놓은 내용의 열화한 동어반복이 되거나, 혹은 그들을 조잡하게 모아서 만든 3류 Insight만을 게시하는 곳이 될 위험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가 이 블로그를 여는 데 고민스러운 지점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방대한 데이터가 있는 곳에 쓸모없는 글뭉치를 얹는 것은 소음을 늘리는 데 불과하니까요.
고민 끝에 저는 이 블로그가 저 자신에게 갖는 의미 그리고 독자들에게 갖는 가치를 각각 두 가지 정도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 정도면 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 비로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각 의미는 아래와 같습니다.
■ 독자에게 줄 수 있는 가치
1) 현직자의 시선
저는 200명 남짓한 소규모 조직에서 인사 관련한 일을 하면서 조직 성능을 향상하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취미 삼아서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조직처럼 저희도 가진 자원은 유한한데 해내야 할 일은 점점 많아지고 있는 상황에 맞닥드렸고, 제가 모시는 임원님께서도 이 부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십니다. 그래서 제가 고민하며 모으고 정리한 자료들이 적어도 뜬구름 잡는 지점에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또한 큰 대기업의 CHO 산하에서 또는 인사컨설팅 기업에서 소개하는 거대한 담론들과는 다른 미시적인 시야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디에나 있는 작은 공동체에서 일어날 법한 소소하고 친근한 재미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2) Connecting the Dot
유감스럽지만 저는 저만의 독창적이고 새로운 개념이나 솔루션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 깜냥을 볼 때, 앞으로도 그런 것을 만들어 낼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어떡하죠? 저는 저만의 것이 없으니 꾸준히 입과 손을 가지런히 둔 채 침묵을 지켜야만 하는 것일까요?
아니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Youtube를 보며 느꼈거든요. 유튜버들 중에서도 어떤 분들은 정말로 개인의 경험과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분들도 있지만, 기존에 존재하는 콘텐츠들을 잇고 해석하고 편집해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분들도 아주 많습니다. 기존의 개념과 개념을 잇는 새로운 연결선을 그려내는 것도 신개념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인 것 같습니다.
연결을 위해 억지로 쥐어짜며 고민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은 전부 자신만의 개별적인 경험을 겪으면서 살아갑니다. 그 결과 각자가 가진 개념의 연결선은 모두가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어요. 저도 저만의 삶을 살아오면서 연결해놓은 선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이들을 그냥 담담하게 보여주고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저의 글을 내놓는 작은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치
1) 인출로서의 학습
제 분야에 관련하여 자료를 많이 찾아봅니다. 가볍게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관련 블로그들의 글을 훑기도 하고, 인터넷 문고의 장바구니 속 사고 싶은 도서의 목록을 하루 종일 업데이트하기도 하고, 쉽게 구할 수 없었던 책을 전자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빌려보기도 합니다. 인상적인 구절에 밑줄도 쳐보고, 코멘트를 달아보기도 합니다. 필요한 경우, 따로 노트를 만들어서 정리하기도 하지요.
문제는 이렇게 해도 이 쌓아온 지식들이 필요한 순간 - 한 달 전에 읽은 책에 나온 개념에 대해 오늘 누가 물어본다든지 -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리고 꼭 그럴 때면 집에 돌아가서는 관련 설명이 머릿속에서 줄줄줄 흘러나와 속상함을 배가시키곤 합니다.
열심히 배웠는데 생각이 안 난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https://brunch.co.kr/@englishspeaking/40
<학습에 관한 두 방식 : Encoding과 Retrieval에 대한 이보다 자세한 설명은 위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아마 학습 방법이 잘못된 것이겠죠. 그냥 열심히 읽는 방법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는 겁니다. 출력의 한계와 적용의 한계 두 가지가 말이죠.
부족한 지식을 메꾸기 위해 열심히 '읽기'만 하면서, '읽기' skill을 향상한다면, 언젠가 저는 많은 지식과 함께 '읽기' skill의 마스터가 될 겁니다. 그런데 어쩌죠. 제가 알고 있는 많은 지식을 남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말하기'와 '글쓰기'로 밖에 할 수가 없는데 이건 연습해 본 적이 없었네요. 결국 저는 어눌하고 불완전하게 밖에 표현을 못할 것이고, 남들은 저를 지식을 어눌하고 불완전하게 아는 사람으로 평가할 겁니다.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이것이 출력의 한계입니다.
적용의 한계란 이렇습니다. 제가 읽어 습득한 지식이란 저자가 경험한 상황 속 문맥에서 도출되고 책 내용 흐름의 문맥 안에서 표현된 지식입니다. 단순히 읽기만 할 때는 내용을 잘 알 것도 같아요. 그런데 그 지식을 제가 겪고 있는 상황 속에서 적용하려 하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명 좋은 조각 같은데 저의 빈자리에는 맞지 않는 느낌, 분명 좋은 PPT 템플릿인데 내가 발표하는 내용하고는 이상하게 잘 안 맞는 답답한 느낌이 드는 거죠.
위와 같은 의미에서 이 블로그는 저의 지식을 제련하는 장소로 쓰고자 합니다. 제가 지식을 어느 정도까지 이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지식이 어떤 맥락에서 어디까지 의미를 갖는지 글쓰기와 표현을 통해 확인하고 또 다듬어가고자 합니다.
2) 아이디어 저장하기
일하다 보면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은 폐기됩니다. 회사의 긴급한 사업적 상황에 맞지 않았을 수 있고,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은 설익고 이상적이기만 한 아이디어여서 그랬을 수 있고, 단순히 팀장의 취향에 맞지 않는 아이디어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버리고 잊히기에는 조금 아깝기도 하고, 지금 당장 우리 회사에 맞지 않는다고 향후 다른 회사에도 안 맞을 거라는 보장도 없기에 관련한 내용을 조금씩 보존해두고자 합니다. 과거의 서툰 아이디어가 어느 순간 시대를 타고 성숙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험을 회사생활을 하면서 몇 번씩 했습니다. 제 아이디어가 다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서도 몇 가지는 남겨놓고자 합니다.
이제 첫 글인데, 다시 읽으니 너무 거창하네요. 처음부터 너무 힘을 뺀 게 아닐까, 또다시 '시작만 거창했던 것' 리스트의 한 줄을 늘리는 게 아닐까 걱정도 되네요.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멋있는 말을 늘어놓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으니까 말이죠.
그래서 일주일에 최소 하나의 글 정도는 작성해보고자 합니다.
작으나마 그들이 가치가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