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땅"을 읽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자서전인 “약속의 땅”을 읽고 있습니다.
(보관하기는 너무 두꺼운 책인지라 전자책으로 읽고 있네요)
책을 읽으면서 미국의 대통령과 그 보좌진들의 업무 하나하나가 모두 지구적인 차원의 거대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고, 동시에 거대한 영향력을 지닌 업무지만, 수행 프로세스 그 자체에 있어서는 그다지 특별치 않음에 놀랐습니다. 프로세스를 순서대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겠네요.
1. 정보를 모아 문제를 파악하고,
2. 해결 방안 여러 개를 찾아 최선을 선택하고,
3. 방안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선정하고,
4. 꾸준히 지켜보면서, 추가로 필요한 자원을 한도 내에서 지원한다.
물론 1~4 순서 각각에 대하여 백악관과 미 행정부가 보유한 역량(수집하여 분석한 정보의 품질,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해결책 고안 역량, 인재 확보 및 검증 프로세스, 가용한 자원의 양 등)은 세계 최고 수준일 겁니다. 제가 속한 조직과는 비교할 수도 없겠죠.
다만 이렇게 역량의 차이가 이렇게 분명해도, 프로세스에는 형태유사성이 존재하기에 저는 벤치마킹할 수 있는 제도나 도구의 힌트를 책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예를 들어 최신 회의 기법이나 의사 결정 도구 같은 것 말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내용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재미있게도 제가 모시는 조직장님과 유사한 고민을 미국 대통령도 하고 있다는 것을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이 공통적인 고민의 원인은 우리 모두가 리더라는 존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상과 현실과의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리더를 높은 곳에 앉아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며 체스판 위의 체스 말을 옮기듯 목표를 향해 원하는 바대로 행동하는 사람으로 간주하곤 합니다. 그런 리더가 실제 존재할까요? 또 그렇게 되지 못한 리더는 나쁜 리더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는 오바마의 자서전과 경험을 토대로 이 체스플레이어의 비유와 현실과의 차이를 드러내 보고자 합니다.
1. 체스판의 체스판의 체스판
일반적인 국가의 대통령만 되더라도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텐데, 미국의 대통령은 어떨까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책을 보건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아주 까다롭습니다. 우선 현직 대통령에게 초당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도움되지 않는다는 것을 야당 의원들이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었고, 어떤 종류의 법안에 대해서는 여당의 의원이라도 그 의원이 속한 지역구의 이해관계 및 의원 본인의 신념에 따라 반대하기도 합니다. 결국 법안 통과를 위해 여당과 야당의 국회의원들과 테이블에 앉아 법안의 상세를 수정하거나, 다른 법안의 통과를 제안하거나, (윽박지르거나) 등등 갖은 방법을 통해 표를 약속받아야 합니다. 또한 미국은 양원제라 두 번에 걸쳐서 이 일을 반복해야 하지요.
오바마의 자서전은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의 정교한 설계와 돌발이슈의 대응책 마련에 관한 내용뿐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국회에서 통과시켜 내었는가의 내용을 다루고 있고, 어쩌면 후자를 더 많은 비중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체스판의 비유로 돌아오면, 우리는 상대 킹을 잡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의 폰과 나이트를 설득해야 합니다. 표현하자면 우리의 폰과 나이트를 앞에다 두고 협상의 체스판을 다시 두어야 한다는 것이죠. 현실에서 목표 달성을 이루게 해주는 폰과 나이트는 다양한 층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의회의 통과를 위한 과반 득표를 확보하기 위한 체스의 승리를 위해 각각의 국회의원과 체스를 두어야 하며, 이 국회의원들의 성공적인 설득을 위해 백악관 보좌관, 비서, 운전기사, 수행원 등등 내부 스탭에 대한 협상을 수행해야 합니다. 마치 그 모습은 체스판 안의 체스판 안의 체스판을 놓인 모습이겠지요. 눈송이 끝에 눈송이 모양이 달려있는 프랙털 도형처럼 말이죠.
가장 작은 단위의 체스 게임을 성공적으로 해내지 못하면 가장 큰 단위의 게임은 반드시 불리해지고 맙니다. 물론 작은 단위 게임을 다 이긴다고 큰 게임을 반드시 이기는 것도 아니고, 작은 단위의 게임에만 열중한 나머지 큰 게임 감각을 잃어버리는 일도 일어날 겁니다.
제가 경험한 회사 조직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슈에 대한 해결책 구상 못지않게 그것을 어떻게 전달하고 설득해내느냐도 중요합니다. 물론 삼권분립의 국가 권력과 다르게 회사는 Top-down으로 업무를 하달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지요. 인사 권한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이의 없는 복종을 요구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제가 가까이서 본 회사 조직은 그 내부의 다이내믹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어서 언제까지나 그런 일방적인 복종만으로 운영되는 조직은 한계를 맞이합니다.
복종하면 승리를 또는 그에 맞는 보상을 약속해준다기에 따랐지만 그것이 따라오지 않는 경우, 그리고 이러한 일이 반복되는 경우, 그 조직과 리더는 어떤 결과를 맞이할까요?
2. 리더가 마주하는 다양한 게임
대통령은 무엇의 전문가일까요? 무엇을 잘하는 사람을 대통령 후보 물망에 올려야 하는 것일까요? 그냥 각 당의 가장 힘센 계파의 수장 혹은 그가 지목한 자가 자연스레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대선 시점에서 가장 말 잘하고 흠 없고 인기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대통령일까요?
대선 출마 전, 스스로가 자서전에서 밝힌 오바마의 정치 행적은 볼수록 신기합니다. 2002년에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도전을 마음먹는 순간까지도 지역 외 전국구 단위에서의 유명세를 가지지는 못했으며, 이에 다른 많은 정치인처럼 상원 선거에 필요한 정치자금을 모으는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을 뿐 아니라, 후에 영부인이 되는 미셸에게 본인의 출마를 허락받고자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야 했지요.
2004년에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로 그는 일대 스타가 됩니다. 이후 상원의원에 당선되고, 2008년 대선에서 승리합니다. 당선식에서 성경에 손에 올리는 오바마를 떠올려봅니다. 대선에 승리한 그를 무엇의 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었을까요?
<아, 물론 그는 하버드 로스쿨 출신입니다>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자서전의 내용에서 크게 다루어진 이슈 중 하나로 멕시코만 기름 유출 사고가 있습니다. 기름을 채취하던 중 문제가 발생해서 멕시코만에 실시간으로 원유가 퍼져나가는 사고였습니다. 이 사고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대통령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직접 잠수복을 입고 바다에 뛰어들어가 몸으로 기름 구멍을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기계를 직접 설계하기엔 문과라서 지질학적 물리학적 지식이 부족합니다.
비유하자면 체스를 두느라 정신없는데, 갑자기 옆 테이블에 누군가 와서 화투를 섞더니 빨리 기리를 하라며 손을 내미는 격입니다. 심지어 이게 맞고인지 섯다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인 겁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한 판 플레이하시겠어요?
오바마 대통령은 신속하게 테이블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전문가에게 ‘지층의 구멍을 막는 밸브의 고안 및 설치’라는 화투 게임을 전적으로 맡겼죠. 그리고 그 사이에 그는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게임판으로 갔습니다. 유출지 근처에 방문하여 주민들을 위로하고, 사고를 일으킨 회사에게서부터 최대한 벌금 부과하는 등 이후 사고 수습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며, 향후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관련 조직과 제도를 강화하기 같은 것 말이죠.
리더는 결코 모든 일의 전문가일 수 없습니다. 필요한 전문가를 찾아서 믿고 지원하는 것이 전부이지요. 그리고 여기에 필요한 역량이란 문제와 해결책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지적 능력, 해결책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해내는 협상력, 불확실한 상황에서 추후 책임질지 모를 결정을 늦지 않게 결단하는 배짱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에서는 대부분 최고의 실무 전문가에게 리더 역할을 부여합니다. 더 업무를 잘 아는 사람이 조직 목표를 더 잘 설정할 수 있으며, 요령 피우는 인원을 더 잘 잡아낼 수 있어서 조직의 업무 퍼포먼스를 더 잘 개선시킬 것이라는 생각이지요. 또 리더가 되는 것은 승진한다는 의미이기에, 어떤 이를 승진시키기 위해서는 경쟁자보다 뛰어난 실적을 보유해야 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리더로서 마주하고 해결해야 하는 상황들의 대부분은 바로 그 실무능력 바깥에 있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목적한 바와는 다르게, 오히려 조직 내 최고의 실무 전문가를 최악의 관리자로 전직시키는 결과를 마주하게 되곤 합니다. 망치를 들고 있는 사람은 모든 걸 못으로 본다는 말이 있지요. 부여된 본인의 업무만 열심히 하던 사람이 전략을 세우고 사람들 간의 협력을 조정하는 작업까지 유능하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지도 모릅니다. 스포츠계에서 최고의 선수가 최악의 감독이 돼버렸다는 이야기는 이제 흔한 클리셰이지요.
그럼 누구를 리더로 세워야 할까요? 우리는 리더에게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요? 저도 답을 모릅니다.
다만, 저는 아래의 사진이 이 문제에 대한 오바마 나름의 대답이라고 생각합니다.
<Situation Room>
3. 타임 어택!
리더는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조직의 관리자이며, 의사결정자이자, 정보가 이동하는 공식 루트(참석해야 할 미팅이 많단 소립니다)이면서, 조직의 상징적인 얼굴 역할까지 해야 하니까요.(오바마 자서전에도 오바마가 본인의 상징적인 위상을 깨닫고는 군대식 경례를 거울을 보며 연습했다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가 곁에서 지켜본 리더 분들도 하루하루 바쁘게 시간을 보내십니다. 1년 목표 달성을 위해 계획한 적힌 정기적인 루틴을 수행하면서,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이슈에 관하여 한정된 정보를 가지고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내립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상위부서와 하위부서의 필요한 사람에게 쉴 새 없이 전달하지요. 나아가 조직원의 마음과 관심사를 파악하고 육성하기 위해 개인적인 면담 또한 꾸준히 진행해야 합니다. 하루에 쌓이는 수백 통의 이메일과 수십 개의 결재서류는 덤입니다. 이 모든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됩니다.
흔히 생각하기로 리더는 고요한 방 한가운데서 주도면밀하게 조직의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의 가야 할 방향을 깊게 고민하고 결론을 내릴 것으로 여겨지는데, 유감스럽게도 현실의 리더들은 당장의 일처리에 급급합니다. 자연스레 이런 의문이 듭니다.
조직의 앞날과 관계된 중요한 이슈들은 리더에 의해 충분히 심사숙고되고 검토되고 있는가? 리더는 의사결정에 필요한 충분한 고민의 시간을 확보하는가?
헨리 민츠버그라고 하는 경영학자도 비슷한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리더십에 대한 기존 가설을 검증해보기 위해 최고경영자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실제 리더들이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직접 초시계를 들고 관찰했지요. 결과는 놀랍게도 하나의 이슈에 대해 고민하고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 10분도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황스러운 결론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10분의 시간은 너무 짧아 보입니다. 특히나 리더의 그 결정으로 인해 벌어질 수많은 파급효과를 고려한다면요.
하지만 실제가 그렇습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10분도 긴 편에 속합니다. 자세히 논문의 데이터를 확인해보지 않았습니다만, 제 경험으로 비추어 보건대 대부분은 2~3분, 아주 소수의 문제에 대해 1시간 가까이 고민하여 도합 평균이 10분 정도 나왔을 걸로 추측합니다. 아마 다른 부서도 비슷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많은 일을 처리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럼 어떻게 그 시간으로 중요한 일을 결정해내는 걸까요?
답은 “시스템”입니다.
현실에서 업무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 이슈에 실제로 직접 대응하는 것은 Staff부서입니다. Staff은 다양한 정보를 찾아 모으고, 의견을 수렴하여 방안을 만들고 각 방안에 대한 장점과 단점을 정리한 내용을 보고 하죠. 리더는 보고받은 내용을 읽은 뒤, 본인이 생각하기에 우려되는 것, 누락된 것,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을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리더 만의 루트로 Double Check도 하면서) 고민합니다. 그리고 결정을 내리죠. 그래서 겉으로 보이는 시간이 짧은 겁니다.
다시 말해 의사결정의 퍼포먼스는 리더의 개인 기량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리더와 Staff인원으로 구성된 분업 시스템에서 나오는 결과인 것이지요. 그렇기에 자신의 주변에 어떤 배경과 어떤 전문성을 갖춘 사람을 두며, 또 육성하는 지를 결정하는 것이 리더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나아가 내부 관계 구축도 잘해놓야죠. 어떤 이유에서든 상호 신뢰성이 무너진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니까요.
<감독에게 기대하는 퍼포먼스란 결국 “감독 개인 + 보좌진"의 역량에서 나오는 것이죠>
오바마 또한 자신의 팀원을 세심하게 골랐고 관리도 잘한 것 같습니다. 그가 자신의 팀원들을 묘사하고 설명하는 부분들은 디테일로 가득한 이 책에서도 특히나 생생하다는 점. 그리고 바쁜 와중에도 팀원들과 농구, 카드 게임, 당구 등을 같이 했다는 내용이 잊을만하면 책에 반복적으로 나온다는 점이 그 근거가 되겠지요. 특히나 저한테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첫 대통령 비서실장이 시카고 시장 출마를 위해 사임했을 때, 비공개 송별회에서 오바마가 대통령 취임 첫 주에 그에게 전달했던 To-do List를 액자에 담아 선물로 준비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모든 To-do List에 체크표시가 되어있다는 것이 그의 성실함을 증명하는 것이었다는 감동적인 연설과 함께 말이죠. 책에서는 그냥 이야기 한토막처럼 가볍게 넘어갔지만, 저는 오바마가 취임 첫 주부터 준비한 게 아닐까 합리적 의심(?)을 해봅니다. To-do List라는 건 대개 며칠 후면 어디 있는지 모르게 돼버리는 종류의 물건이잖아요?
정리하면,
리더는 자신이 원하고 꿈꾸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 끝없이 사람을 만나서 설득을 해야 합니다. 그 와중에 평소에 관심이 적었던 이슈들을 해결하고 수행하기를 요구받으며, 수많은 루틴 한 업무들을 마주해야 하지요. 충분한 시간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문가와 Staff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요.
얼핏 봐도 어린 시절에 즐겨 읽던 영웅 신화라든지, 드라마나 만화책 주인공을 보며 그리던 모습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들은 한 손으로 비바람을 일으키는 신통력을 보이거나, 미래를 미리 본 것 마냥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지요. 말솜씨도 대단해서 대화 한마디 한마디에 적들도 감명받고 눈물을 흘리며 설득되곤 합니다.
아쉽게도 그런 리더를 저는 현실에서 아직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예전 백악관에 있었던 사람도 그런 리더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보다 나은 결정을 위해 끝없이 공부하고, 쉼 없이 고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스템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조직을 개선하며 본인 주변 사람들을 북돋아줄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끝으로 본 글을 작성하는데 영감을 준 자서전 내의 몇 문단을 발췌하면서 글을 마칠까 합니다.
"대통령으로서 나는 이 나라를 위해 비전을 제시하고 방향을 정하고 건강한 조직문화를 진흥하고 명확한 책임 체계와 책무 기준을 확립해야 했다. 나의 눈높이까지 올라온 사안들에 대해 최종 결정을 내리고 국민에게 설명해야 했다. 이 모든 일을 해내려면 눈과 귀, 손과 발이 되어줄 소수의 사람들에 의지해야 했다. 그들이 나의 매니저이자 관리자이자 조력자이자 분석가이자 조직가이자 팀장이자 확성기이자 조정자이자 문제 해결자이자 고충 처리 담당자이자 정직한 브로커이자 조언자이자 건설적 비판자이자 충성스러운 군인이 되어주어야 했다."
"또한 우리가 과정을 제대로 진행했다는 확신을 느낀 사실도 중요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각도에서 문제를 들여다보았고, 어떤 잠재적 해결책도 배제하지 않았으며, 최고위급 관료에서 최신참 보좌관까지 모든 관련자에게 발언권을 부여했다.
내가 과정을 강조한 이유는 필요때문이었다. 내가 금세 발견한 대통령직의 특징은 내 책상에 놓이는 국내외 문제 중에서 깔끔한 100퍼센트짜리 해법이 있는 문제는 없다는 점이다. 그런게 있다면 지휘 체계 아래쪽에서 이미 해결했을테니까. (중략)
이런 상황에서 완벽한 해결책을 쫓으면 도리어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된다. 반면에 직감에 너무 자주 의존하면 선입관이나 정치적 저항이 가장 적은 경로를 판단의 지침으로 삼고는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실을 취사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자아를 비우고 진심으로 귀 기울여 사실과 논리를 최대한 숙지하고 그것들을 목표와 원칙에 비추어 고려하는 건전한 과정을 거쳤다면 골치 아픈 결정을 내리고도 단잠을 잘 수 있음을 깨달았다. 적어도, 내 위치에서 나와 같은 정보를 가진 사람이 그보다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