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고 귀여운 틱

by 이나

나의 틱이 나의 삶에 처음 등장한 건 2021년, 어느 초여름 주말 오후였다.


침대에서 낮잠을 푸지게 자고 일어났는데 별안간 왼쪽 다리가 움찔- 하고 발작을 했다.

‘발작’이라고 하니 굉장히 극적으로 들리긴 하는데 실제로는 바닥에 발을 콩 구르는 느낌으로 다리를 한번 터는 모양새였다.


이 낯선 감각은 뭐지? 난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이상하다 흠냐흠냐.. 하다가 이내 다시 잠들었긴 했지만 내 의지와 몸이 따로 노는 감각이 꽤 충격적이었는지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이날을 시작으로 나의 왼다리는 종종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이 외에도 여러 형태의 움직임이 있었는데, 앉아 있는 상태에서 다리를 '쿵' 하고 구르는 게 가장 흔했고 가끔 서있다가도 앞으로 발차기를 해서 테이블을 차버리기도 했다.


몇 달 동안은 혼자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양재에 있는 신경외과에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은 나의 증상을 듣더니 조심스러우면서도 신중한 말투로,


틱장애를 실제로 진단하려면 대학병원에서 MRI를 받아야 하는데 굳이 그걸 알아내고 싶냐? 고 물었다.

병리학적 문제가 없다면 그냥 받아들이고 사는 쪽으로 나를 잘 타이르셨다. 그래서 그 뒤로는 이 틱을 애써 무시하면서 지내오고 있다.


그게 벌써 4년 전이고, 나의 이 틱은 아주 천천히 경로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왼발을 움찔거리는 것에서 시작해, 바닥에 발을 구르다가, 그 뒤에는 조금 더 올라와서 허벅지까지 들게 되었다. 작년부터는 상체로 증상이 올라와서, 목을 왼쪽으로 돌렸다가 점점 베리에이션을 거쳐 지금은 목을 앞/옆/위로 거북이처럼 쭉 내빼는 동작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세트로 입술을 약간 뽀뽀하듯이 쭉 내미는 흉측한 동작도 종종 곁들이게 되었다. 가끔 입술만 왼쪽으로 쭉 내빼기도 한다.

또 요가할 때는 여전히 발을 가끔 구를 때가 있고, 사바사나 할 때는 왼발을 꽤 자주 움찔한다.


이렇게 적어두고 전반적인 흐름을 분석해 보니 하체에서 상체로, 그리고 얼굴로 점점 올라오고 있으며 초반의 틱도 잊지 않고 종종 발현이 되는 초심을 잃지 않는 모습이 보인다.


한동안은 틱장애에 대해 열심히 찾아봤었는데, 인터넷의 의사들은 틱이 꼭 원인이 있는 건 아니니 왜 때문에 틱이 생겼는지에 집착하지 말라고들 했었다.


그렇지만 내 틱이 발현된 시기*를 더듬어보면 대에충 이유는 알 것 같다.

(: 당시 내가 개발자로 전향하고 스타트업에서 1년 정도 일했던 때로, 구부정한 자세로 오래 앉아서 코딩만 하고 억눌린 화를 몸속에 차곡차곡 쌓아두던 시절)


고로 나의 틱은 당시 화병의 신체화 증상이었던 것 같다고 내 맘대로 진단을 내려버렸다. 맞지 않는 일을 함으로써 생긴 일종의 직업병이 아닐는지.


주변인들은 대부분 내가 틱이 있는 걸 모른다. 내 틱은 엄청 자주 나타나지는 않고 피곤할 때나 일할 때, 또는 불편할 때 집중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내 틱 동작들 자체가 대부분 티가 많이 안 나는 것들이라 다들 그냥 내가 어색하게 굴면서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는구나; 하고 넘어가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도 내가 일일이 붙잡고 ‘나 틱 있는 거 알았어?’라고 물어본 게 아니라서 주변인들이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걸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내 틱은 나와 오랜 시간을 보내는 주변인들 일부만 알고 있고 아직 우리 부모님도 모른다.

이제 4년 정도 이 작고 귀여운 틱과 함께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될는지. 하체에서 상체까지 쭉 올라왔으니까 다시 하체로 내려가려나? 아님 왼쪽 쭉 훑었으니 오른쪽으로 옮겨가려나?


아님 이 직업을 때려치우면 틱이 마법같이 사라질 수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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