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남는 자리 구해요
하다하다 이제 친구 사귀기도 매니페스토를 하고 있다.
나이 때문인지 사는 곳을 옮겨서인지 친구 사귀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고보니 헛소리 빵빵 하면서 눈치 안 보고 재밌게 놀 수 있는 친구는 대학교 이후로 전무하다.
볼 꼴 못 볼 꼴 봐가면서 지내다보면 허물없는 친구가 될 수 있는데, 아마도 사회에서는 내내 허물을 입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나 싶다.
거기다가 유난히 내성적인 내가 해외에 나와버리면서 문화차이 언어장벽 비자문제(자꾸 떠나는 친구들) 등등의 이슈로 더더욱 맘 맞는 친구 만나기가 쉽지 않다. 징징.
여기까지 친구 사귀기의 구조적인 어려움을 토로하는 짧은 푸념이었고, 내년에는 좋은 만남들을 만들어보고자 구체적인 친구상을 그려보고 매니페스토 해보기로 한다.
우선, 내 의도된 개그에 잘 웃어주거나
혹은 아예 면박을 줄줄 아는 강단
내 시니컬한 관점에 놀라지 않고 그러려니 하는 건조함
조잘조잘 말이 좀 많은 편이면 플러스
평소 약속이 많지 않아서 번개치면 두번에 한번은 나올 줄 아는 헐렁한 스케쥴
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깔깔대다가도
가끔씩 책이나 사회 문제, 또는 개똥철학에 관한 지적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그것에 오그라들어하지 않는 항마력
지적 수준이 나와 비슷하거나 +- 10% 범위 내에 들어서 서로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함
이것저것 새로운 거 시도해보자 했을 때 높은 확률로 오케이 하는 높은 개방성
술과 남자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은 피곤하고
소수자 혐오 하면 안 됨
가장 중요한 건 나를 잘 로스팅할 줄 알아야 함
한국에 있는 좋은 친구들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어 작성한 리스트이다.
쓰다보니 엽기적인 그녀에서 차태현이 전지현 맞선남한테 써준 편지가 떠올라서 좀 창피하긴 한데 무튼 다 중요한 것들이다.
이 정도를 다 맞추려면 이것은 운의 영역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 운도 노력하는 자에게 주어지리니
어디서 찾아야 이 모든 덕목을 갖춘 친구를 높은 적중률로 찾을 수 있을까?
챗지피티에게 물어보고 싶은데 여기는 베이징의 공항이므로 그럴 수가 없다. 딥씩에게 물어보기는 귀찮으니 내가 직접 생각해봐야겠다.
베를린에서 은둔 개그캐를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
스탠드업 코미디쇼? 쓰레드? 브런치? 네이버 블로그?
그리고 은둔한 그들을 수면으로 떠오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내가 먼저 신호를 던져야쓰겄다. 되도 않는 개그를 툭툭 던져보아야겠다.
한국어로는 그래도 좀 치겠는데 영어로 하는 건 솔직히 아직 너무 부담스럽다. 또 다시 돌고돌아 영어 공부를 해야한다는 결론에 도착했다.
이제 한국행 비행기 보딩 20분 남았는데 고민이다. 맥주 다 비우고 바로 탈까? 아니면 국수 한 그릇 더 하고 좀 느지막히 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