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트로트를 찾아서 5
이렇게 드문드문 기억나는 트로트에 대한 기억은 1992년 MBC에서 방송작가를 시작하면서 같은 해에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로 인해 흔적조차 사라지게 된다. 게다가 1993년부터 예능 프로그램을 주로 하게 되면서 댄스곡과 힙합에 열광했고 고등학생 시절부터 밑바닥에 흐르고 있던 포크 계열 정도에나 귀 기울였지 트로트는 아니올시다, 였다.
1990년대는 노래방 문화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때였다. 여의도 문화방송 앞 상가 2층에 있던 작은 가라오케는 나와 동료 선후배들의 활동 무대였다. 맥주를 들이키며 수다를 떨다가 다중의 손님들 앞에서 작은 무대에 올라 노래 솜씨를 뽐내곤 했다. 그때 나의 노래 목록에 트로트는 단 한 곡도 들어 있지 않았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문세, 이승철, 김종서, 이승환이 있었지 송대관, 설운도, 태진아, 현철은 꿈에라도 들어올 수 없었다. 간혹 조용필 정도만 ‘친구’나 ‘허공’은 돼줘야 빼꼼 고개를 들이미는 수준이었다.
그런 경향은 20년도 더 지난 2020년 초반까지의 내 노래 리스트만 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난 노래방이나 노래를 불러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당황하지 않기 위해 내가 잘 부를 수 있는 노래 목록을 휴대폰 메모장에 가지고 있다).
예술이야(싸이), 알 수 없는 인생(이문세), 제발(이승기), 봉숙이(장미여관), 매일 듣는 노래(황치열), 모든 날 모든 순간(폴킴), 고백(뜨거운감자), 소나기(김장훈), 비오니까(싸이), 라구요(강산에), 일상으로의 초대(신해철),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김동률), 그 남자(현빈), 헤어진 다음날(이현우), 사랑이 사랑으로 잊혀지네(하림), 가족사진(김진호), 달의 몰락(김현철), 취중진담(김동률), 아스피린(이브), 밤이 깊었네(크라잉넛), 여수 밤바다(장범준)… 유일하게 내가 좋아하고 애창했던 트로트 계열의 노래가 딱 하나 있는 게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다.
그런데 이 부동의 리스트에 최근 이런 노래들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영탁이 부른 나훈아의 ‘사내’, 임영웅이 부른 노사연의 ‘바램’ 그리고 나훈아의 ‘공’이다. 여기에 유산슬이 부른 ‘합정역 5번 출구’와 ‘사랑의 재개발’도 추가됐고 진성의 ‘안동역에서’도 넣기는 했는데 막상 불러보며 어려운 곡임을 실감했다.
이렇게 뒤늦게나마 나의 삶에 트로트가 진입을 한 것인데 그 전까지의 트로트가 들어왔던 기억들을 좀 더 떠올려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