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트로트를 찾아서 4
이제 나의 기억은 군대에 있었던 1991년 겨울 즈음으로 간다.
아버지의 환갑잔치 현장. 난 휴가를 받아 그곳에 있을 수 있었다. 시대는 8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갔지만 역시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앞으로 나와 마이크 앞에서 저마다의 노래를 부르는 의식은 그대로 이어졌다. 이윽고 그날의 하이라이트 아버지의 순서가 됐다.
이유가 뭘까. 그때까지 난 아버지가 노래하시는 걸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엄마는 곧잘 흥얼거리시는 분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앉으나 서나 흥얼거리는 난 엄마의 아들이다) 노래하는 아버지를 본 적이 없었으니 아버지도 노래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당연히 입이 있고 성대가 멀쩡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래를 할 수 있는 거잖아, 라는 생각을 못했다.
친척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아버지가 스탠드마이크 앞에 섰다. 두둥. 마치 <미스터트롯>의 장민호가 전주가 나오기 전 침을 꿀꺽 하는 것 같은 찰나의 시간이 흘렀고, 아버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베사메 베사메무쵸
고요한 그날 밤 리라꽃 지던 밤에
베사메 베사메무쵸
리라꽃 향기를 나에게 전해다오
‘베사메무쵸’는 1945년 만들어진 라틴 노래다. ‘베사메무쵸’는 ‘뜨겁게 키스해 주세요’라는 뜻으로 어느 멕시코 여가수가 리라꽃(라일락)에 비유해 불렀다. 우리나라에서 이 노래가 번역이 되었는데 가수 현인이 1948년에 불렀고 그걸 아버지가 부르신 거다. 중저음으로 리듬을 타시며 밝은 미소 지으며 노래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내가 후회하는 건 단 한 가지.
묻지 못했다. 그때 난 아버지가 왜 그 노래를 선택하신 건지 여쭤보지 못했다. 수많은 노래 중에서 왜 유독 그 노래였는지, 그 노래가 아버지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묻지 못하고 부대로 들어갔다. 전역을 한 뒤에도 묻지 못했고, 그로부터 8년 후에 돌아가셨기에 영원히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