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의 트로트 이야기

내 인생의 트로트를 찾아서3

by 김영주 작가

나는 도대체 어떤 고등학생이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

학력고사를 보고 대학교 합격 여부를 기다리던 때였으니 1983년 12월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근데 합격 여부를 어떻게 기다리느냐고? 내가 지원을 한 대학교에 전화를 해서 합격여부를 알게 되는 시스템이었다.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지원했었다. 온 가족이 나를 주시하던 안방에서 나는 수화기를 들어 조심스럽게 서강대에 전화를 했다. 몇 번의 번호를 누른 후에 내가 들은 문장은 이 한마디였다. “안타깝게도 불학격하셨습니다.”

모두가 나를 바라봤다.
꿀꺽.
저… 떨어졌대요.

엄마, 큰 누나, 둘째 누나, 셋째 누나의 표정이 어땠는지 내게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는 게 없다. 아버지가 눈물을 보이셨다.

네가… 떨어지다니… 울컥

경희대, 숙명여대, 이대. 누나들이 모두가 단번에 대학을 합격해서였던가. 아버지는 4번 타자는 홈런을 쳐주기 바라셨는지 눈물을 보이셨다. 난 별 말 없이 일어나 내 방으로 갔다. 기타를 잡았다. 노래를 불렀다. 눈물을 흘리면서.

트로트를 불렀느냐고? 아니다. 이런 노래였다. <영산강>이라는 노래.

차라리 울어 볼꺼나
이 칙칙한 어둠 몰고
소리없이 숨죽여 울어 볼꺼나
차라리 돌아 설꺼나
무너져 내린 설움 안고
여윈 허리 보듬어 돌아 설꺼나
밤마다 산마루 넘어와서
시커멓케 다가와
두 손 내미는 못다한 세월

이 노래는 민중가요를 부르던 가수 안치환이 불렀다. 고등학교 3학년이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1983년은 전두환 대학가에서는 서서히 반독재투쟁이 고조되기 시작하던 때였다. 세 명의 누나 중에 두 명이 이른바 운동권 학생이었고, 누나들의 책꽂이에는 이런 책들이 꽂혀 있었다. <전태일 평전>, <러시아혁명사>, <드레퓌스와 그 적들>. 나는 자연스럽게 그러한 책들을 보게 됐고 집에서는 김민기, 안치환 같은 민중가요들이 수시로 흘렀다. 그런 집안 환경 탓에, 고등학생이었던 나를 지배했던 노래는 적어도 트로트는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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