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트로트를 찾아서 2
1980년대의 나는 역시 트로트와는 거리가 있었다. 1984년 나는 재수를 했다. 서울 중림동에 있는 종로학원 종합반을 다니면서 주말에는 북촌 쪽에 있는 정독도서관에 자주 갔다.
정확히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지만 도서관 열람실에서 공부를 하다 지친 머리를 쉴 겸 자리에서 일어나 도서관 이곳저곳을 다녔다. 그러다 눈에 띈 건 음악감상실. 별 생각 없이 그곳의 문을 밀고 들어갔는데! 들려온 한 소리에 난 얼어붙었다. ‘숨멎’이었다. 그것은 바이올린 선율이었다. 그 소리에 난 전율했고 그 순간의 음악 멜로디를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외우고 또 외웠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둘째 누나 앞에서 그 선율을 입으로 냈다. 당시 둘째 누나는 첼로를 하고 있었기에 첫째 셋째 누나는 몰라도 둘째 누나만은 알 거란 생각이었기에. 역시 난 음감이 뛰어났나 보다. 내가 더듬더듬 소리 낸 멜로디를 듣고 누나는 말했다. “그거 멘델스존이네. 바이올린 협주곡.”
그 날 이후로 나는 누나를 조르고 부모님을 설득하여 누나 친구 중 바이올린 전공 대학생 누나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재수생의 학습 효과에 도움이 될 거라는 명분으로. 두 달 정도 배운 후에 재수생의 현실에 놀라 그만 두긴 했지만 당시의 난 클래식을 더 좋아했으면 좋아했지 트로트는 아니었던 것이다.
1985년 대학생이 된 후 나의 음악 생활은 트로트는 고사하고 포크 음악도 아니었고 팝송도 아니었다. 민중가요가 내 삶을 지배했다. 정확하게 1985년부터 1988년 7월 군대에 가기까지 나에게 음악은 민중가요였다.
그런데 군대가 나를 변화하게 한 건지, 트로트를 잘은 몰랐지만 관객을 매료시키는 데는 나쁘지 않은 장르라는 걸 난 알고 있었나 보다. 군 생활을 하던 내가 상병 즈음에 포상휴가를 받은 적이 있었다. 부대 장기자랑대회에 나가 노래를 해서 입상했기 때문이다. 나의 선곡은 태진아의 ‘거울도 안 보는 여자’였다. 모자를 쓰고 손거울을 들고 춤을 추며 노래했고 휴가증을 받아 당당히 휴가를 나왔다. 1990년의 어느 날이다.
1. 사랑찾아 헤매도는 쓸쓸한 여자
오늘 밤은 그어디서 외로움을 달래나
2. 이거리를 지날때면 생각이 난다
향기없는 꽃이지만 난 널사랑 하나봐
입가에 머문미소는 내마음 흔들고
수수한 너의 옷차림 나는 좋아
거울도 안보는 여자 거울도 안보는 여자
외로운 여자 오늘밤 나하고 우---- 사랑할꺼나
‘거울도 안 보는 여자’는 1990년 발매한 태진아의 정규 3집 앨범의 타이틀곡이다. 군에 있으면서도 나에게 연결이 됐을 정도로 히트했다. 그렇지만, 당시 휴가증에 눈이 어두워 순전히 청중의 리액션을 위한 선곡이었지 나의 가슴 속에서 우러나온 장르는 아니었다는 건 명약관화하다. 그렇게 트로트는 군에 있던 나에게도 가깝지 않은 분야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