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의 트로트 이야기

내 인생의 트로트를 찾아서 1

by 김영주 작가

나이 50대 중반에 트로트에 훅 꽂힌 나. 나의 삶을 반추해보기로 한다. 도대체 나는 왜 그동안 트로트에 관심이 없었는지. 혹은 아주 드문드문 있었을 수도 있는 트로트에 관한 기억들을 쥐어짜보고자 한다.

트로트에 관한 내 인생 최초의 기억은 명절날 외가에서 남진의 ‘님과 함께’를 춤을 추며 부르던 나의 모습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백년 살고 싶어
봄이면 씨앗뿌려
여름이면 꽃이피네
가을이면 풍년되어
겨울이면 행복하네
멋쟁이 높은 빌딩 으시되지만
유행따라 사는것도 제멋이지만
반딧불 초가집도 님과함께면
나는좋아 나는좋아
님과 함께면
님과함께 같이산다면

어르신들이 깔깔 대며 박수 치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그 노래가 나왔던 해는 1972년.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다. 그해 최고의 히트 곡을 바로 커버했던 8살 꼬마가 어르신들에겐 얼마나 귀여웠을까. 난 지금도 노래 좀 한다는 얘기 듣는 편이니 당시에도 아마 꽤 했으리라. <미스터트롯>에 나온 홍잠언 보다도 어린 나이였다.

8살 나이에 사랑하는 님과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한백년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을 리 없겠지만, 당시의 나는 어쩌면 트로트가 내 몸 안에 싹이 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으로 떠오르는 장면은 시간을 훌쩍 뛰어 넘어 고등학교 1학년 즈음이다. 나는 학생회 활동을 열정적으로 했고 신심이 두터운 신자였다. 정말 성당을 열심히 다녔다. 나의 이팔청춘의 9할은 응암동 성당에 지분이 있다. 동시에 꽤 괜찮은 성당 오빠였다.

당시 응암동 성당 지하에는 회합 장소로 쓰이는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크리스마스이브 파티를 했다. 1980년대 초반의 대한민국 파티에서 빠지지 않았던 프로그램 중 하나는 돌아가며 노래 부르기. 그것도 무반주로. 그때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노래를 했다. 거의 모든 학생들은 노래를 했는데 당연히 당시 유행하던 노래를 했다. 대학가요제에 나왔던 노래 혹은 팝송들이었다. 그런데 한 학년 위 선배 형은 무표정한 얼굴로 나와 조신하게 이런 노래를 시작했다.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한들
다시 못 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노래를 들은 많은 이들이 까르르 웃었다는 거다. 당시 우리들에게는 무척이나 생경한 노래였다. 하지만 그 형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노래를 마쳤다. 그 노래가 트로트 명곡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걸 안 건 한참이 지난 후였다. 그 선배 형은 그 후 신부님이 되어 지금 현재도 신앙의 길을 따르고 있다. 요즘도 여전히 그 노래를 열창하시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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