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박 후보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다
웹소설> 식당천재 박종원 대선출
강 아주머니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려면 1990년대로 잠시 돌아가야 한다.
박종원이 식당을 시작했던 건 1993년. 군대에서 장교로 지냈던 때도 간부식당을 담당했을 정도로 음식에 남다른 애착을 가졌던 그였지만, 자신의 인생행로를 식당 사장으로 잡지는 않았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사람이고 싶었지 그 음식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오히려 인테리어 분야에서 크게 돈을 벌고 싶었다.
그랬던 그가 식당을 하게 된 건 우연이 작동한 결과다.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부동산 사장님에게 농담 반 인사치레 반으로 던진 말,
“어디 식당이나 할 만한 자리 없어요?”
아저씨는 마침 좋은 자리가 났다며 당장 그의 손을 끌고 간 곳은 ‘대전쌈밥서울분점’이라는 식당.
사정상 가게를 처분해야 한다며, 인수하겠다는 작자가 나타났으니 당장이라도 넘길 기세였다.
그가 빠져나갈 길은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
"어쩌죠? 지금 제가 있는 게 50만 원밖에 없는데 이걸로는 택도 없을 거 아니에요"
근데, 택도 있었다. 상가 주인이 무슨 사정이 있어서인지 그 돈도 일단 괜찮다며 오케이 한 것. 그렇게 박종원은 식당 사장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그의 눈에 식당 사장이라는 직업은 영 눈에 차지 않았고, 식당은 지인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목조주택을 지어주는 폼 나는 건축사무소 대표가 되었다.
당시 우리나라에 목조주택 붐이 일기 시작했는데, 박종원은 욕심을 부려 고급 해외 건축자재를 대거 수입하여 경쟁력을 높였고 꽤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한 잡지에서 성공한 30대 CEO로 선정되어 자신이 건축 중엔 목조주택 타운 현장을 배경으로 폼 나게 찍은 사진도 실렸다.
그러니 어찌 신나지 않을 수 없었을까.
문제는 신경을 거의 쓰지 못하던 쌈밥집. 가끔 들리는 얘기는 주방을 맡아하는 강 아주머니가 너무 식재료를 아끼는 바람에 손님이 점점 떨어지게 하고 직원들과의 소통마저 원활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식당은 적자였다.
그런데!
세상은 박종원을 건축사무소 대표로 승승장구하게 놔두지 않았다.
1997년 닥쳐온 IMF! 많은 자재들이 수입한 제품이었으니 박종원 대표는 직격탄을 맞았다.
이미 계약한 수 십여 채를 약속대로 지어주고 나니 그에게 남은 건 30억 원의 부채와 적자투성이 쌈밥집 하나였다.
마치 탕자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고나 할까. 그는 쌈밥집으로 갔고 그곳에서 모든 채권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정말 죄송하지만 이 식당마저 처분해서 여러분들에게 쥐꼬리만큼 상환해봤자 여러분도 죽고 저도 죽습니다. 그러니, 저 한 번 믿고 좀 더 기다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 식당, 어떻게든 살려보겠습니다!"
그렇게 그의 인생 제2막이 시작된 것이다.
그때 자신을 믿고 끝까지 남아 쌈밥집을 일으켜 세웠던 일등공신이 바로 강 아주머니였다.
당시 적자가 나는 걸 빤히 알고 있었는데 다른 데 가지도 않으시고 8, 9개월이나 월급도 드리지 못했는데 묵묵히 감내했던 분인데…
"아냐, 그분이 그럴 리가 없어요. 아마 누군가의 농단에 당하신 걸 거야."
직원들은 일단 강 아주머니를 수소문했다.
문제의 기사를 쓴 기자는 연락처를 왜 주냐며 반문했다.
기자들은 마치 한 공간에 모여 매일 기획회의라도 하는 양 글자의 수만 다를 뿐 대동소이한 기사를 쏟아냈다.
당시 쌈밥집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기억해내 연락을 했고 결국 강 아주머니는 수년 전에 딸이 있는 미국으로 이민 가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박종원 후보가 일궈낸 프랜차이즈 파워가 작동했다.
즉각 ‘반가’의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점에 연락이 갔고, 마침내 다음 날, 강 아주머니와 박종원 후보와 화상 통화가 연결됐다.
“아주머니!”
“아이고 박 사장!”
“아주머니, 잘 지내셨어요?”
“그럼, 내가 미국 갈 거라고 얘기했잖아. 쯧쯧쯧, 박 사장도 많이 늙었구먼.”
10여 년 만에 성사된 사장과 주방장과의 통화는 10분이 넘게 이어졌고, 고스란히 촬영됐다.
강 아주머니에게 서울에서 연락을 한 기자는 1997년 당시 박종원 사장이 월급을 8, 9개월간 받지 못했다는 코멘트만 취하고, 그 후에 이어진 내용은 편집한 것이다.
“그거야 하도 어려웠고, 자기가 나한테 많이 죄송해했잖아. 그다음엔 장사 잘 되면서 월급도 많이 주고 해외여행도 얼마나 많이 보내줬는지 아냐고 했지. 왜, 뭐가 잘못됐어?”
박종원 후보는 울먹울먹 했다.
“아니에요, 아주머니. 잘하셨어요.”
문제는 편집이었던 것이다.
정치에 관심이 없었을 때, 기사에 난 내용을 두고 왜곡을 했네, 안 했네 공방들을 벌일 때 박종원 대표는 약간 의아해했었다.
팩트라는 건 엄연히 한 개만 있을 텐데 왜들 싸우지? 생각하곤 했는데, 막상 자신이 당해보니 생각이 짧았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박 후보님, 이제 좀 실감 나시나요?’
‘그러게요. 달달한데요.’
박종원 후보와 강 아주머니의 영상 통화는 풀 버전으로 박튜브 채널에 올렸다.
최초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서는 언론중재위원회에 반론 요청 신청을 했다.
문제는, 이것으로 박종원 후보에 대한 공격이 끝난 게 아니라는 거였다.
"공격은 계속 들어올 겁니다."
황규익 작가의 진단이었다.
하긴, 황규익 작가도 온갖 공격을 받아온 사람이다.
"아니 제가 뭐가 있다고 그렇게 공격을 해댄대요?"
"김동인 후보 어떤 매체에서 까는 거 보셨습니까? 안철순 후보는요? 심상순 후보는요?"
"하긴, 안철순 후보는 예능 프로 촬영 전 날 취소됐다고 말한 게 포털 메인이 엄청 떴더라고요."
'하루 전 날 촬영 취소? 난 부지기수였다. 기획하고 녹화 준비하다 엎어졌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방송이 죽었을 때는 또 얼마나 잦았던가. 프리랜서 작가는 예정된 방송이 안 나가면 작가료도 받지 못한다. 뭘 출연 한 번 무산될 걸 가지고…"
"근데 기분 나빠하실 거 전혀 없습니다. 이게 다 박 후보가 무서운 상대가 됐다는 거니까요. 그냥 해오시던 대로 가시면 됩니다. 그럼 전 이만."
"황 작가님. 그래서 선대위원장 하시겠다는 거예요 아니라는 거예요?"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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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8일 오전 11시, MBS 라디오국 8스튜디오. 온에어 불이 들어왔다.
"정치의 아웃사이더가 되고 싶은 네 남자의 한판 수다 정치아싸! 저는 진행을 맡은 허이루 아나운서입니다."
요즘은 보이는 라디오와 유튜브 연동이 많아 라디오라 해서 대충 입고 나올 수 없었다.
<정치아싸>는 시사토론을 하는 생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인데 국민의심 경선 주자였던 원희륭 후보가 출연하여 변호사 현간택 패널과 고성을 지르며 다투는 바람에 오히려 인지도가 올라갔다.
그 후로 대선 후보들이 심심치 않게 문을 두드리는 프로그램이 되었는데, 어제 섭외 연락이 왔고 박종원 후보가 나온 것이다.
다섯 명의 정치아싸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박종원 후보를 어떻게 하면 물어뜯을 수 있을까 보고 있었다.
동시에 그동안 물고 물리며 양 강 구도를 견지해오던 구도를 크게 뒤흔들어버린 의외의 인물의 등장이었기에, 도대체 자신들의 스탠스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그들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우선 가벼운 잽을 통해 박종원 후보는 도대체 누구의 편인지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먼저 진행자인 제가 궁금한 거 여쭤보겠습니다. 박종원 후보님은 대선에 왜 출마하신 겁니까?"
"오오오~~~"
모두가 겉으로는 처음부터 그렇게 훅 들어가느냐는 반응이었지만 속으로는 즐거워했다.
"여기 다른 후보님들도 좀 나오셨죠. 혹시 그분들에게는 같은 질문 던졌습니까?"
박종원 후보의 반문에 허이루 아나운서가 살짝 당황했다.
"아니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여쭤본 건 아닌데요… 에이 다른 후보들은 정치를 오래 하셨거나 검찰에 오래 몸담았거나 하신 것처럼 뭔가 나올 수도 있겠다 싶은 분들인데, 박종원 후보님은 의외였다는 거죠. 아마도 많은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실까요?"
"솔직하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냥 무언가가 저를 이쪽으로 확! 당겼습니다."
"네?"
"확."
현간택 변호사가 물었다.
"그게 혹시 뭐였을까요. 후보님을 화악. 잡아당긴 게요."
"화악, 이 아니라 확.이고요. 그냥 제가 살아오면서 제 안에 무언가가 차고 차고 차서 결국 터진 게 아닌가… 정도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다섯 명의 정치아싸들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곤혹스러워하기까지 했다.
"전남 순천의 천보람입니다. 출마 선언을 하시자마자 단박에 3위를 하셨는데요, 저도 방송인이자 사업가로서 후보님 예전부터 참 좋아했거든요. 근데 정치인으로서도 그런 결과가 나오니까 아 저도… 요리를 배워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면서…"
"그래서 질문이 뭔가요?"
답답해하던 허이루 아나운서가 물었다.
"완주를 하실 건지, 아니면 이정명 후보나 윤정열 후보 중 한쪽을 밀어주실 수도 있는 건지가 궁금합니다."
"당연히 완주를 해야겠죠. 이제 내일이면 딱 대선 100일 전인데요, 대선 후보가 되니까 이거 하나는 좋더라고요."
박 후보를 쳐다보는 네 남자의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해보고 싶었던 것들, 꽤 할 수 있다는 거에 주목까지 해준다는 거요. 치킨을 놓고 진지하게 토론한 것도 제가 대선 후보가 아니었다면 성사됐을까요?"
"그렇네요. 저도 토론 진행으로 먹고 삽니다만 치킨 토론 보면서 참 부러웠습니다. 자, 식당의 대선후보 박종원에게 궁금한 질문 마구 던지시죠. 오늘은 영 갈피들 못 잡으시네."
"근데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오래가는 식당이 드문 겁니까?"
보수 패널인 장성찰 교수가 물었다.
"일본만 해도 백 년 점포는 수두룩하고 이백 년, 삼백 년 된 점포들도 꽤 있는데요,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죠. 얼마 전에 안타깝게도 화재가 난 을지로 <양미옥>도 생활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노포잖아요. 몇 년 된 집인 줄 혹시 아세요?"
"노포니까 50년?"
"을지로 노포 정도면 최소 1960년대에는 생긴 집 아닐까요?"
"1992년에 문 연 집입니다."
"예? 그럼... 02, 12, 22... 30년도 안 된 거네요."
"그렇죠.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노포가 적은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
다섯 남자가 일거에 집중했다.
"공약으로 발표하겠습니다."
"뭐예요~~~~!"
그렇게 <정치아싸>는 시사토론에서 음식 강의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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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원 캠프 빌딩 3층. 선대위 회의실.
열띤 토론이 진행 중이었다.
안건은 슬로건 정하기.
많은 의견과 주장이 오고 간 지 두어 시간.
이렇다 싶은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민지당 이정명 후보 쪽에 카피라이터 정찰 씨가 이번에도 합류했는데 역시나 카피가 좋더라고요. 보셨어요? 3실. 실력 실천 실적."
‘실력, 실천, 실적?’
이제 내일이면, 대선이 딱 100일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