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슬로건은 어려워
웹소설> 식당천재 박종원 대선출마
11월 29일 오전 7시.
대선이 딱 100일 남은 날 아침을 밤샘 토론으로 맞이한 박종원 후보 캠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슬로건이 영 나오지 않았다.
박종원 후보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메모를 하며 머리를 쥐어짰지만, 한 방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식당을 이름을 지었고, 메뉴를 고안했고, 레시피를 개발했지만, 정치 슬로건은 만만하지 않았다.
그가 지은 많은 식당 이름 중에 쉽게 나온 건 하나도 없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나온 이름은 적지 않았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전했지만, 논현동 영동시장의 작은 점포의 지하에는 주방시설을 차려놓은 공간이 있었다.
이름 하여 ‘맛 대 맛 스튜디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식당들이 그 작은 공간에서 개업하고 폐업하고 리뉴얼되고 업종을 바꾸었다.
말하자면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음식과 식당들을 실험해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회사의 누구라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자리 예약을 하고 누구나 실험할 수 있었다.
실험에 들어가는 식재료는 정확하게 예약만 한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지원되었다.
그곳의 구조는 이랬다.
공간의 약 2/3를 주방이 차지했고, 디귿자 형태의 바가 있었다.
일본 만화 <심야식당>에 나오는 식당의 구조와 비슷하다 할 수 있는데 훨씬 더 깨끗하고 깔끔했다.
가장 큰 특징은 한식, 일식, 중식, 서양식에서 베이킹까지, 거의 모든 장르의 요리를 할 수 있는 도구들이 마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신청자는 실험을 해서 만들어낸 음식을 먹어볼 수 있는 동반자가 3인까지 할 수 있었다.
음식은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먹는 사람을 통해 완성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혹시 치기 어린 직원들이 되지도 않는 요리를 하고 지인들을 불러 공짜로 먹게 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그 공간의 이름에 스튜디오가 붙은 데는 이유가 있다.
스튜디오 곳곳에는 카메라가 세팅되어 모든 요리 과정은 고스란히 녹화가 되었다.
요리를 하는 사람은 모니터에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마치 TV 요리 프로그램에 나오는 셰프라도 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물론 단순히 기분 좋으라고 그런 투자를 해놓은 건 아니다.
박종원 셰프의 뒤를 이어 계속 스타 셰프가 나오게 하기 위한 큰 그림이었던 것이다.
식당 이름에 관한 얘기를 꺼냈는데 산으로 갔다.
하루는 박종원 대표가 번쩍 하고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어 방을 예약하고 스튜디오에서 요리를 했다.
그날 생일을 맞은 직원 3명이 시식을 했고 반응이 좋아 결국은 새로운 브랜드 식당을 론칭하는 데까지 발전을 했다.
그런데, 식당 브랜드를 정해야 하는 날, 박종원 대표는 급하게 미국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려는 순간 직원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대표님, 식당 이름을 정해주시고 가셔야죠. 좋은 거 있다고 하셨잖아요.”
“어떡하지? 그거 그냥 뻥이었는데.”
“네? 오늘 발주 넣어야 하는데 어떡하죠?”
“나 비행기 놓치겠다. 다녀와서 하면 안 될까?”
“안 돼요 대표님, 제발요~~~”
“그래? 그럼, 미, 미정식당이라고 해. 아직 미정이니까. 그럼 나, 간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브랜드가 ‘미정식당’이었다.
박종원 대표는 식당 이름을 짓지 못했으니까 일단 ‘미정’이라고 한 것이었는데, 출장을 다녀와서 간판으로 부착된 ‘미정식당’이 웬걸, 그럴듯해 보였다.
“그래, 미정식당! 좋네!!!”
이렇게, 좋은 건 나오게 하려고 누르고 눌러도 삐지고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놈의 정치 슬로건이란 건 밤을 꼬박 새워도 나올 줄을 몰랐다.
이럴 때 좋은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딴짓 하기 그리고 다른 놈들은 어떻게 하나 보기다.
“민지당 이정명 후보는 슬로건이 어떻게 되죠? 경선할 때 보니까 ‘이정명은 합니다’던데, 좋더라고요. 최종 후보가 되고 나서 변화가 좀 있던가요?”
선대위에 참여해달라고 간곡히 말했지만 가타부타 반응 없었던 황규익 작가는 밤새우며 수다 떠는 건 좋아한다며 같이 밤을 새웠는데, 경쟁 후보 쪽의 슬로건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
“무서운 사람이 이정명 캠프에 합류했더라고요. 카피라이터 정찰이라고요.”
“정찰 카피라이터요?”
“네. 문대인 대통령 선거 때도 메인 카피라이터로 활약했죠. ‘사람이 진짜 먼저다’라는 카피로 히트 쳤잖아요.”
“아, 그게 그분이 한 거군요. 그때 저도 촛불 들고 광화문 광장 구석에 있었거든요. 사람이 진짜 먼저다. 참 좋았어요. 근데 그분 들어와서 뭐가 좀 나왔나요?”
“3실을 들고 나왔더라고요.”
“3실?”
“실력, 실천, 실적.”
“이정명 후보의 강점을 제대로 드러냈네요. 굉장히 함축적이고. 듣고 보니 그 정찰 카피라이터라는 분, 정말 존경스러울 지경인데요?”
황규익 작가는 계속 얘기했다.
“이정명 작가는 몇 주 전부터 매타버스를 타고 있습니다.”
함께 밤을 새운 길중화 매니저가 말했다.
“매타버스요? 그 웹 3.0인가 뭔가 하는, 아바타 같은.”
황규익 작가가 씨익 웃었다.
“그렇게 어려운 매타버스가 아니고요, 매주 타는 버스예요. 그 버스를 타고 매주 지역을 가서 그곳의 시민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박종원 후보는 연신 감탄했다.
“아이디어 좋네요. 매타버스.”
“근데 정찰 카피가 지난주 매타버스 홍보 글을 썼는데 죽이더라고요. 제 휴대폰에 저장했잖아요. 이정명과 나 사이에 있는 언론을 치우고 실물 이정명을 가까이에서 만나세요. 이번 주말 매타버스는 광주, 전남으로 갑니다. 여기에 한 방 더 때리는 게, 왜 사이드 밀러 보면 이런 글씨 있잖아요. 실물은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그 문구 위에 이정명 후보의 얼굴을 딱 넣어놨더라고요.”
박종원 후보는 벌떡 일어났다.
“캬아~~ 진짜 죽이네요. 우리 그 정찰 카피라이터 영입할 수 없을까요?”
박종원 후보는 황규익 작가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는 걸 놓치지 않았다.
“영입해서 황규익 작가랑 함께 하면… 메시가 있는 팀에 음바페를 데려오는 거니까 여기 있는 분들 아무도 그런 생각 하시면 안 됩니다! 크흠. 길 팀장, 다른 후보 쪽은 좀 어때요?”
길중화 매니저가 황규익 작가 쪽을 보며 말했다.
“이 분야는 아무래도 여기 황규익 작가님이 워낙 빠삭하셔서…”
“황 작가님, 다른 후보 쪽은 어떻죠?”
“무서운 분은 민지당 쪽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정이당 심상순 후보 쪽도 만만치 않은 분이 있습니다. 유병천 대표라고요. 정치광고 쪽에서 인정받는 회사죠.”
“유병천 대표요?”
“대선 주자 급들 많이 했습니다. 안철순, 정몽진에 고 박원선 시장 광고하고 슬로건을 도맡아 했죠. 심상순 후보도 절대 만만한 분이 아닙니다. 다만, 맡은 지 얼마 안 돼서 지금 한창 머리를 맞대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국민의심 윤정열 후보 쪽은 어떻습니까?”
“윤정열 후보 쪽은 선대위 꾸리는데 아직도 힘을 빼고 있어서 그런지 아직 이렇다 할 슬로건이나 카피 같은 게 보이지 않네요.”
박종원 후보는 생각에 잠겼다.
“윤정열 후보는 공정이나 법치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시더라고요. 아무래도 그분 이력이 있어서 그런 것 같은데, 솔직히 와닿지는 않더라고요.”
막상 쉬자고 다른 후보 쪽의 슬로건 동향을 살펴봤지만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사무실에 있는 모든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물론 같은 생각이었다.
과연 박종원 후보는 어떤 슬로건을 만들어야 할까.
박종원 후보는 어떤 삶을 살아온 사람일까.
일생을 먹는장사를 해온 사람, 우연한 기회로 출연하게 된 방송에서 눈에 띄어 어느덧 스타 방송인이 된 사람이 그의 주된 이미지이자 정체성이다.
그런 그를 대통령으로 생각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슬로건은 어떠해야 할까.
아이디어가 안 나올 땐 딴짓도 좋지만, 더 좋은 방법이 있다는 걸 박종원 대표는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끝냅시다!”
황규익 작가가 맞장구를 쳤다.
“제일 좋은 생각입니다.”
“슬로건 아이디어 생각나면 누구든 단체방에 올리면 됩니다. 그럼 전, 오늘 약속한 곳들로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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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지로’라고 불리는 을지로 3가에 갑자기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박종원 후보가 한 식당 앞에 나타난 것.
문제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아닌 화재로 전소된 식당이라는 것이었다.
양고기 전문점 ‘양미당’.
지난 11월 23일 저녁에 발생한 화재로 결국 무너지기 시작했고, 167명의 소방인력과 소방차 42대가 투입되고서야 밤 10시 34분에 불길이 잡혔다.
그렇지만, 고 김대정 대통령이 180번이나 찾았다는 을지로의 노포는 자취를 감춘 후였다.
“아이고 후보님. 여기까지 찾아오시고...”
양미당을 지켜온 팔순의 사장이 박종원 후보를 부여잡고 울기 시작했다.
“사장님, 저 기억하세요?”
“그럼요. 후보님을 왜 모르겠어요.”
“고맙습니다. 미천한 저를 잊지 않고 계셔서요. 저야 맛있는 음식 늘 잘 먹어서 감사했죠. 좀 더 빨리 왔어야 하는데 이제야 와서 죄송합니다.”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박 후보님, 양미당 사장님하고 어떤 관계인 겁니까?”
“어떤 관계긴요. 식당 사장님하고 손님 관계죠. 제가 어려울 때 이 집 자주 왔거든요.”
“화재로 전소가 됐는데요, 대통령 후보로서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오늘은 위로 차원으로 온 거고요, 노포에 대한 정책은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당이 식당이니까 식당들에 대해서는 넓고 깊은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늘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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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대통령 선거가 100일 카운트가 시작된 날이라서 인가.
여론조사가 꽤 많이 발표됐다.
박종원 후보가 첫 여론조사에서 당당히 3위를 했던 지난 화요일에 비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대통령 후보들 중에 호감도와 비호감도를 묻는 조사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호감도 항목에서 박종원 후보가 1위를 했다.
2위는 민지당 이정명 후보, 3위는 국민의심 윤정열 후보였다.
비호감도에서는 국민의심 윤정열 후보가 1위, 민지당 이정명 후보가 2위를 했고 박종원 후보는 안철순, 심상순의 뒤를 이어 5위를 했다.
하지만 정치 신인 박종원 후보가 경계를 해야 함을 알려주는 조사 결과도 있었는데, 대통령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박종원 후보는 4위를 했다.
역시 많은 수의 국민은 박종원 후보가 식당 사업가나 방송인으로서는 최고의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통령의 직위를 수행하는 사람으로서는 선뜻 납득하지 못한다는 걸 의미했다.
‘현재까지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선언한 후보들 중에서 도대체 왜 나온 걸까, 라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후보를 골라주세요.’라는 질문을 던진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했다는 점도 의미심장했다.
대선 디데이 100일.
역시 박종원의 대선 가도는 순탄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