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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작가 Jun 10. 2022

75화. 단일화 충격

웹소설> 식당천재 박종원 대선 출마

3월 2일, 대선을 딱 일주일 남겨놓은 수요일 저녁 8시.


  KBC 방송사 스튜디오에서 5명의 대선후보가 모여 펼치는 공식적인 마지막 TV토론이 시작됐다.


  사회자의 시선에서 볼 때 왼쪽부터 심상순 후보, 윤정열 후보, 안철순 후보, 이정명 후보, 박종원 후보의 순으로 섰다.


  첫 번째 주제토론은 ‘복지정책과 재원조달 방안’이었다.


  심상순 후보는 의료 분야에 있어 본인 부담금에 상한액을 두어 1년에 100만 원을 넘지 않게 하자고 했다.


  안철순 후보는 ‘평등’과 ‘형평’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이정명 후보에게 던지며 자신의 식견을 과시했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으로 일해 본 경험을 내세웠다.


  윤정열 후보는 복지정책에 대해 지금까지 거의 모든 토론에서 그래 왔듯이 이번에도 원론적인 수준의 발언을 했고, 다른 후보들에 대해서는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를 따져 물었다.


  이정명 후보는 대한민국의 경제규모에 비해 복지 수준은 한참 떨어지는 30위라고 강조하며 자신의 지론인 기본소득과 구체적 정책의 예로 임플란트 비용 지원 등을 얘기했다.


  박종원 후보는 기본식당이라는 이름의 시스템 및 제도를 얘기하며 모든 국민이 먹는 것 하나만이라도 소외받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두 번째 주제토론은 ‘인구절벽에 대한 대응 방안’이었다.


  윤정열 후보는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진 않았으나 이스라엘의 제도를 도입하자고 했다.


  그밖에 대한민국의 저출생 원인과 대책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였지만 심각할 정도의 격론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사회 분야를 놓고 벌이는 주도권 토론 순서에 들어가서야 각 후보들 간의 공방이 벌어졌다.


  윤정열 후보에 대해 이정명 후보와 심상순 후보는 성인지 예산에 관해 비판을 했던 사안에 대해 강하게 공격했고, 특히 심상순 후보는 성인지 예산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윤정열 후보에게 마치 강의를 하듯 설명했다.


  윤정열 후보의 주장은 성인지 예산이라는 건 각 부처에 흩어 놓은 여성에게 도움이 되는 예산이라는 건데, 그러한 예산들은 지출에 대한 구조조정을 통해 북핵을 막을 수 있는 억제력을 강화하는 데 쓸 수도 있다고 했다.


  그에 대해 이정명 후보는 윤정열 후보에게 성인지 예산이라는 건 여성을 위해 특별히 있는 게 아니고 남녀 성평등을 위해 특별히 고려해야 하는 걸 모아놓은 거다, 예를 들어 범죄 피해 관련, 한부모 관련 예산 같은 게 다 성인지 예산이라고 했다.


  또한 이정명 후보는 윤정열 후보에게 페미니즘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는데, 윤 후보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윤정열 - 에,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의 일종으로 여성을 인간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사상을 말하는 거 아닙니까?


  일동 웃음.


  전반적으로 사회 분야에 대한 토론이라서 그런 건지 감정이 앞서는 불꽃 튀는 격론은 벌어지지 않고 이대로 마무리되나 하던 차에, 이어진 주도권 토론에서 윤정열 후보가 주도권을 잡았을 때 대정동 부동산 의혹을 소재로 이정명 후보를 공격하면서 마지막 공식 토론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연출됐다.


  이정명 후보가 윤 후보의 대장동 의혹 성토가 끝난 후 말했다.


  “윤 후보님, 제가 제안하겠습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라도 반드시 특검하자는 거 동의해 주시고, 두 번째, 거기에서 문제가 드러나면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책임지자, 동의하십니까?”


  윤 후보는 대답 대신 이렇게 응수했다.


  “이거 보세요!”


  이정명 후보도 물러서지 않았다.


  “동의하십니까?”


  윤정열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보세요!”


  이정명 후보가 연거푸 공격을 했다.


  “동의하십니까? 동의하십니까? 동의하십니까?” 라며 결국 동의하겠느냐는 물음을 5번 던졌다.


  “이거 보세요, 지금 대통령 선거가 초등학교 반장 선거입니까? 검찰이 대정동을 수사하지 않고 덮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특검 하자는 거예요. 왜 동의를 안 하십니까? 지금 동의해주세요.”


  “당연히 수사가 이루어져야죠!”


  “특검을 해서 결과가 나오면 대통령에 당선돼도 책임지죠?”


  “30초 드렸으니까 넘어가겠습니다.”


  “대답을 안 하시네요.”


  “당연히 수사는 이루어져야죠.”


  물론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졌다고 해서 모든 대답을 해야 한다는 의무는 없지만, 이정명 후보의 ‘특검’을 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수사’를 해야 한다는 대답으로, 문제가 드러나면 대통령이 되어도 책임지자는 제안에는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않았다.


  결국 유권자들의 판단에 맡기는 수밖에 없으리라.


  그 판단의 내용은 투표 결과로 나타나리라.


  이렇게 후반부의 반짝 격돌 외에는 이렇다 할 쟁점을 남기지 못하고 마지막 대선후보 TV토론은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다섯 명의 후보들은 저마다의 집 혹은 캠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다음 날을 위한 휴식에 들어갔으리라 짐작하려고 했는데...


  3월 3일 목요일 새벽 3시에 깜짝 놀랄 내용의 속보가 포탈을 장식했다.


  「윤정열 후보와 안철순 후보의 단일화 불씨 살아나나... 새벽 전격 합의」

  「새벽 전격 회동, 단일화 합의 유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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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에서 아침까지 5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오전 8시. 윤정열 후보와 안철순 후보는 기자들 앞에 나란히 섰다.


  약간의 미소와 어느 정도의 긴장된 표정을 가진 두 후보는 ‘공정과 상식, 통합과 미래로 가는 단일화 공동선언문’을 읽어 내려갔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저희 안철순, 윤정열 두 사람은 오늘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시작으로서의 정권교체, 즉 ‘더 좋은 정권교체’를 위해 뜻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새벽의 속보로 짐작은 했지만, 직접 앞에서 워딩을 들은 기자들은 일제히 놀라는 표정을 했다.


  두 후보는 계속 낭독을 했다.


  “오늘 단일화 선언으로 완벽한 정권교체가 실현될 것임을 추호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희 두 사람은 원팀입니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어 주며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고, 상호보완적으로 유능하고 준비된 행정부를 통해 반드시 성공한 정권을 만들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국민통합정부입니다.”


  두 사람은 잠시 호흡을 한 후 기자들을 찬찬히 둘러봤다.


  “국민 여러분, 저희가 만들어갈 국민통합정부가 나갈 길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국민통합정부는 ‘미래 정부’입니다. 둘째, 국민통합정부는 ‘개혁 정부’입니다. 셋째, 국민통합정부는 ‘실용 정부’입니다. 넷째, 국민통합정부는 ‘방역 정부’입니다. 다섯째, 국민통합정부는 ‘통합 정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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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7시에 시작하는 많은 채널들의 시사 전문 프로그램은 만들어 놓은 큐시트의 대부분을 갈아엎어야 했다.


  출연진들의 섭외 내용을 대폭 바꿔야 했고, 새로운 출연진들을 수배하고 섭외해야 했다.


  어쩌면 가장 허탈해했을 사람들은 여론조사 전문기관들이었다.


  5명의 후보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깜깜이 기간’으로 들어가기 직전까지 열심히 했던 모든 조사들이 의미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방송을 취소할 수는 없는 일, 라디오 프로그램들의 진행자와 패널들은 예상치 않게 발생한 단일화 이슈에 대해 나름의 분석들을 했다.


  보수 패널들은 되어야 할 게 되었다며 기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진보 패널들은 특히 안철순 후보의 표변에 대해 성토했다.


  민지당, 국민의심, 국민이당과 정이당을 대변하는 원외 정치인과 시사평론가들이 고정 출연하는 코너에서는 자당의 입장에서 논평을 했고 뜨겁게 격론을 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투표용지 인쇄가 끝났는데도 단일화에 목을 매는 겁니까? 예전에 국민의심 이준식 당대표가 단일화라는 건 2등과 3등의 언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걸 인정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민지당 패널의 논평에 대해 국민의심 패널은 이렇게 받았다.


  “이 무지막지한 내로남불 정권을 교체하고 싶어 하는 국민의 열망이 얼마나 높으면 이제라도 그렇게 했겠습니까? 늦기는 했지만 두 분이 단일화에 전격 합의했다는 건 압도적인 승리로 정권교체를 하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자신의 결정을 과연 어떻게 합리화를 할지가 가장 궁금할 국민이당 패널은 이렇게 논리를 펼쳐갔다.


  “사실 저도 오늘 새벽에 전격적으로 합의를 하고 오전에 단일화 선언을 공개적으로 하게 될지는 정말 몰랐습니다. 순간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당사자인 안철순 후보야말로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저는 옆에서 안철순 후보의 고뇌에 찬 결단을 봤습니다. 저도 받아들이기로 했고요, 이제는 정권교체로 우리의 결단이 맞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정이당 패널은 어떻게 말했나.


  “이건 아름다운 합의가 아니라 야합입니다. 특히 국민이당 안철순 후보는 윤정열 후보를 찍는다면 손가락을 잘라 버릴 거다,라고 했던 사람입니다. 이게 어떤 논리로 과연 정당화가 될지 이해가 안 갑니다.”


  기호 5번 박종원 후보는 캠프 1층에서 질문을 던지는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말 재미있습니다. 정치가 생물이라는 말을 오늘처럼 실감한 적이 있었는가 싶습니다. 이렇게 되면, 저도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십니다. 저, 박종원은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1위를 하기도 했고, 3위 아래로 내려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안철순 후보가 저를 이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요.”


  듣고 있던 기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많은 분들이 저한테 많이 물어보십니다. 단일화를 제안한 진영이 없냐고요. 있습니다. 민지당 이정명 후보는 공개적으로 바로 이곳에 오셔서 저와 함께 우삼겹과 쌈밥을 먹으면서 단일화를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이건 뭐 많이들 알고 계시지요.”


  기자들의 키보드 소리가 빨라졌다.


  “국민의심 윤정열 후보 쪽은 무슨 밀사를 보내오셨습니다. 그때 제가 퀴즈 참가 때문에 격리되는 바람에 황규익 작가를 만났습니다. 저에게 단일화를 제안했고요. 피드백은 못 드렸습니다. 그리고 안철순 후보는 저에게 단일화를 제안하거나 한 적은 없었고, 윤정열 후보에게 공개적으로 단일화를 제안한 그 전날 저를 찾아와 그 문제로 상의를 했습니다.”


  기자들이 놀란 표정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저는 뭐 잘 듣기만 했고 의견을 드렸을 뿐입니다. 최종 결정이야 안 후보님이 하신 거고요.”


  한 기자가 손을 들었다.


  “박종원 후보님은 단일화를 할 생각은 없습니까?”


  박 후보가 씨익 웃었다.


  “저는 단일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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