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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작가 Dec 31. 2020

MBC 공채 개그맨 동기들

보고 싶은 친구들

내가 MBC 예능국 작가가 된 1993년에 개그맨도 공채가 있었다. 27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연락을 하곤 하는 동기는 딱 한 명밖에는 없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예능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들이기에 TV에서 볼 때마다 반가운 마음이 드는 친구들이다.


그해 봄, 공채로 선발된 작가들과 개그맨들이 한 자리에 모여 환영파티를 했다. 예능국장과 피디들과의 제대로 된 인사 자리다. 여의도 MBC 뒤에 있는 수정아파트 상가 지하에 있는 한 식당이었다. 그때 그 자리에서 앞으로 스타가 될 동기 개그맨들을 처음 봤고 정식으로 인사한 걸로 기억한다. MBC 공채 개그맨 4기다.


특별한 건 기억나지 않고, 다만 적지 않은 동기 개그맨들이 나를 보고 깜짝 놀라 했던 희미한 장면들이 떠오른다.


어이쿠, 얼마 전에 들어온 코미디 작가세요? 전 배우가 들어왔나 했어요.

(나이를 듣고 화들짝 놀라며) 엄청 형이네요. 뭐 드신 거예요?


그때 그 자리에서는 전혀 몰랐지만, MBC 공채 4기의 멤버들은 1991년 KBS 제1회 대학개그제로 들어온 친구들에 전혀 밀리지 않는다.(김국진, 김용만, 박수홍. 김수용, 남희석, 최승경 그리고 유재석 등)


육사 다니다 그만두고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한 화살코 서경석, 연세대 나온 약골 이윤석. 이 두 사람은 얼마 후에 듀오 ‘투석스’를 결성, “아니 그렇게 깊은 뜻이!”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우쒸~~”로 단박에 주목받은 박명수, 권투 선수 출신 덩달이 홍기훈, 착한 썰렁이 나경훈이 있었다. 여기에 성대모사로 금세 인기인이 된 김학도가 있었고 여성으로 서춘화가 있었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미안한데 이쁘장했던 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재주가 많았던 오승환이 생각나고 나하고 2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쉽게 친해지고 지금도 가끔 연락하는 표영호가 있다.


신인 개그맨들은 김영희 피디가 연출하는 <웃으면복이와요>에 주로 투입이 되었다. 한국 코미디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1970년대를 풍미했던 바로 그 <웃으면복이와요>를 90년대 버전으로 다시 만들었다. 구봉서 배삼룡 배일집 등의 ‘구’ 코미디언들과 서경석 이윤석 박명수 등의 ‘신’ 코미디언들을 콜라보한 것이다. ‘이경실의 도루묵 여사’도 여기에서 나왔다. 이런저런 역할을 맡겨 주목을 받으면 스타 개그맨으로 향하는 길에 접어드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무명 개그맨이라는 시련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1993년 당시에는 이들의 삶의 궤적이 어떻게 될지 전혀  수가 없었다. 대략 27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은 어떤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친구는 박명수다. 내가 보는 눈이 없었겠지만, 솔직히 당시에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다. 서경석 이윤석도 이런저런 방송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사업도 하면서 자신들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동기들은 저마다의 길을 걸어갔다. 누군가는 롤러코스터 인생을 살았고 어떤 이는 한발 한발 꾸준히 걸어갔다. 혹자는 직업을 바꾸었다(표영호는 현재 소통전문가로 잘 나가는 강사다.) 또 누군가는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 이가 되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TV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실패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들은 단 한 명도 없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그들은 꽤 잘 살고 있다. 온 국민의 배꼽을 잡아보겠다고 나선 이들이기에 그들의 생활력은 그 어느 누구보다 강하다.


문제는, 작가인 나였다.

예능이라는 험난한 바닥에서 가진 거라고는 알량한 글빨과 한 줌의 비주얼 말고는 없는 내가 그곳에서 버티고 살아남아야 했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곳이었다. 예능 작가로 살아간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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