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국이란?
여의도 MBC 사옥(매각이 됐다는데 좀 슬프다. 예쁜 건물이었다.)에서 4층과 3층은 달라도 너무 다른 공간이었다. 내가 첫 발을 내딛고 1년 정도의 시간을 보낸 곳이 4층 교양제작국이었고 나름 동화가 되어서 그랬는지 불과 한 층 아래인 3층 예능국은 별천지였다.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건강을 위해 계단으로 올라와도 좋다.) 3층에서 내리면 오른쪽은 예능국 사무실이다. 피디들의 탁자와 행정실, 국장 방 등이 있다. 작가인 나는 별로 갈 일이 없는 공간이다. 나는 주로 왼쪽으로 간다. 몇 걸음 가서 우측 화장실 지나면 맞은편으로 원형의 작은 광장 같은 공간이 나온다. 전에 언급했던 바로 그 ‘중정’이다.
중정 왼편으로는 작은 매점이 있다. 종종 간식을 먹곤 했는데 꼬마김밥이 맛있었다. 간이 테이블에 앉아 김밥을 먹으며 유리창 아래를 보면 D스튜디오가 있었다. 중정 오른쪽으로는 두 개의 공간이 있는데, 예능 프로그램의 회의실이 있고, 희극인실이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해 엘리베이터 나와 좌회전, 화장실 지나 직진하다 중정을 앞에 두고 4시 방향에 예능국 회의실, 1시 방향이 희극인실이다.
내가 주로 보낸 공간은 예능국 회의실이다. 회의실은 프로그램별 방이 있는 곳으로 계단 4~5개 정도 올라가면 나오는 뻥 뚫린 꽤 큰 회의실과 아래쪽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나는 주로 위쪽 회의실에 있었다. 각 프로그램별로 기다란 회의 탁자 하나를 놓고 ‘여기가 <일밤>, 저기는 <웃으면 복이 와요(웃복)>’ 하는 식이었다. 직사각형의 방 안에 양 쪽 끝은 <일밤>과 <웃복>이, 가운데 탁자는 <우정의무대>가 썼다. 지금 생각하면 다소 코믹한 광경이긴 하지만 당시에는 누구 하나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해 코미디 작가 공개모집으로 들어온 우리들은 5명이었다. 남자 둘 여자 셋. 지금까지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다. 다른 남자 한 명은 현재 KBS에서 피디로 일한다. 이승면 피디. 코미디 작가로 들어왔는데 어쩐 일인지 몇 개월 하지 않고 KBS 피디 공채 시험을 봤고 합격했다. 참 특이한 친구다. 그럴 거면 왜 굳이 코미디 작가 공모에 응시한 걸까. 혹시 안 될 거에 대비한 건가. 여하튼, 이승면 피디는 지금도 피디로서 잘 지내고 있다. 이 범상치 않은 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또 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매우 안타까운 얘기지만, 동기 중 한 친구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리고 또 한 친구는 선배 예능작가의 아내가 되어 형수님으로 부른다.
6개월 동안 MBC 예능국에서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돌며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는 게 연수과정이었다. <일밤>, <토토즐>, <오늘은좋은날> 등의 프로그램을 돌며 회의 탁자 맨 끝에 앉아 선배들이 회의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크게 기억나는 건 없다. 다만, 1993년은 예능작가들만 공개적으로 선발한 게 아니었다는 것, 개그맨들도 공채를 했다. 나와 예능 동기의 연예인들이 들어온 건데, 그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