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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작가 Jan 02. 2021

<일밤>만 20년 넘게 한 작가가 있다.

강제상 작가와의 만남

신인 예능 작가는 6개월간 연수를 한다. 예능국의 프로그램들에 한 달씩 배치되어 참여한다. <일밤>, <토토즐>, <웃복>, <오늘은좋은날(오좋)> 등을 차례대로 돌았다. 뭐 복잡한 시스템은 아니다. 해당 프로그램에 들어온 막내 작가로서 일하면 된다. 아이디어 회의에 같이 참여하고,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얘기하고, 웃기면 웃고 안 웃기면 무표정하게 있으면 된다. 선배들이 무언가를 하라 하면 하고 그냥 보기나 하라 하면 보면 된다.


동기 5명이 각각 찢어져 배정됐던 거로 기억한다. 그날의 일이 끝나면 우리 동기들은 술집에 모여 각자의 프로그램들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며 웃고 울었다. 우리끼리만 모였던 적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 선배 피디 혹은 선배 작가들이 함께 하곤 했다. 특히 대 작가인 임기홍 선배는 우리를 많이 챙겨주셨다. 함께 할 때도 있었지만, 우리의 모임이 있는 날이면 어떻게 알았는지 늘 가까이에 계셨다.(지근거리에 계셨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음이 나중에 밝혀진다.)


연수를 했던 프로그램들은 조금씩은 다른 능력이 요구된다. <일밤>은 버라이어티이기에 코미디 구성력과 셀럽을 어떻게 요리하면 웃음을 뽑을 수 있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 <토토즐>은 기본은 쇼 구성을 할 줄 알아야 하고 버라이어티에 요구되는 능력들이 있었다. <오좋>은 콩트 코미디 프로다. 비공개로 녹화하는 콩트인 게 가장 코미디 작가적인 능력이 요구됐다. <웃복>도 기본은 코미디였고 MBC의 거의 모든 개그맨들이 출연했고, 그들의 장단점을 잘 알아야 했다.


<일밤>은 연수 때는 물론이고 프리랜서로서 꽤 긴 기간을 보낸 프로그램이라 그런지 가장 많은 애착이 가는 프로그램이다. 이른바 ‘사수’라고 할 수 있는 형을 만난 곳도 그곳이었다. 강제상 작가.


MBC 예능국의 역사에서 강제상 작가라는 존재를 빼면 말이 안 된다. <일밤>만 20년 넘게 했으니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일밤>의 산증인, 터줏대감, 지박령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하다. 그 형 자체가 <일밤>이었다. 연예인으로는 <일밤>을 상징하는 사람으로 이경규가 있다면, 작가로는 강제상이다.


외모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코미디 작가란 이래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게다가 패셔니스타다. 사계절을 한 가지 패션을 고수한다. 여름엔 벗고 겨울엔 외투가 있다는 정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왼쪽 팔이 ‘메멘토’였다. 목걸이 펜을 했는데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메모를 했다. 왼쪽 팔에. 팔뚝 여기저기에 하고 모자라면 손등에도 했다. 왜 종이를 놔두고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종이가 없어서 일단 팔에라도 적자 해서 그렇게 된 거 아닐까 추측한다.


성균관대학을 다니던 학생 때부터 알바로 아이디어맨을 하다 작가가 되었다. 주말 예능이 KBS에 꼼짝없이 밀리던 1980년대 후반의 <일요일 밤의 대행진> 시절부터 했고, 주병진 이경규 노사연 김흥국으로 <일밤>이 주말 예능을 지배하던 시절의 일등공신이다.


2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강제상 작가가 했던 말 중 아직도 생각나는 게 있다. 어느 날, 내가 물었다.


“형, 도대체 코미디가 뭐예요?”

“딱 두 개만 기억하면 돼. 비정상 그리고 공감”.


비정상과 공감이라는 키워드는 비단 코미디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모든 장르에 의미가 있는 키워드다. 어떤 프로그램을 하든 이 두 가지만 기억하면

흔들리지 않는다.


강제상 작가는 <일밤>을 20여 년 하고 tvN으로, MBN에서, TV조선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며, 여전히 현역에서 뛰고 있다. 그 선배가 있기에 나도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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