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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작가 Jan 10. 2021

여의도 MBC 예능국 풍경

응답하라, 1990대여!

내가 코미디 작가가 된 1993년 무렵의 MBC 예능국은 이랬다. 크게 3개의 부서였다. 1국, 2국, 3국. 1국은 <일밤>, <오늘은좋은날>, <웃으면복이와요> 등 코미디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이 주축이었다. 2국은 <토요일토요일은즐거워>, <우정의무대>, <특종TV연예> 등의 쇼 프로그램이, 3국은 <퀴즈가좋다>, <뽀뽀뽀> 등이었다.


나와 우리 동기들은 코미디 작가로 뽑혀서인지 주로 1국과 2국을 중심으로 배치되었고 프리랜서가 돼서도 주로 그 바닥에서 놀았다. 프로그램 회의실도 1국이 몇 계단 위에 있는 큰 공간에, 2국은 그 아래 옆 공간에 있었는데 그곳은 프로그램 별로 방이 있어서 나름 독립되어 있었다. 3국만 교양제작국이 있는 4층에 있어서 그곳 작가 피디들과는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드물었다. 또 퀴즈 프로그램이나 어린이 프로그램은 당시의 나에게는 크게 관심 가던 영역도 아니었다. 무척이나 건방졌다 당시의 나는.

한 공간에 있던 피디들은 대충 이랬다. <일밤>의 황금기를 대략 2명이 이끌었는 데 송창의 피디, 주철환 피디다. <웃으면복이와요>와 개그듀오로 콩트를 주로 한 <콤비콤비>는 ‘쌀집 아저씨’ 김영희 피디가 진두진휘했다. 쇼와 오락 분야는 김정욱 피디, 주창만 피디, 유근형, 고재형 피디 등이 있었고, 퀴즈 쪽은 사화경 피디 등이 담당했다. 그리고 jtbc로 스카우트되어 <썰전>, <아는형님> 등을 기획한 여운혁 피디는 당시 주로 1국에서 일하던 조연출이었다. 또 <뉴논스톱> 등 시트콤을 연출하다 드라마국으로 넘어가 <내조의 여왕>을 연출하고, 지난 MBC 노조의 파업 시절 ‘파업 요정’으로 이름을 날리고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라는 매우 건방진 제목으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지난 연말에 퇴사를 결심했다는 김민식 피디도 당시 갓 들어온 조연출이었다. 그리고 나를 늘 ‘저스티스’라고 부르며 귀여워했던 권석장 피디도 <일밤>에서 ‘시네마천국’과 ‘TV 인생극장’을 만들다 드라마국으로 넘어가 드라마 피디가 되었다.


피디와 함께 프로그램을 만드는 작가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와 함께 한 프로그램에서 작업을 <일밤>의 강제상 작가, <웃으면복이와요>와 <콤비콤비>의 이지훈 작가는 워낙 인상적이었기에 각각 독립된 에피소드로 글을 쓴 바 있다.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선배이자 형들이다.


여기서 강제상 작가에 대해 도저히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있다. 밀리터리 덕후였다. 내가 언젠가 쓴 글에서 예능국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개판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게 만든 당사자이다. <일밤>은 커다란 공간에서 탁자만 놓고 지냈다는 얘기는 이미 했다. 근데 그 공간 바닥 여기저기에 비비탄들이 수시로 널려 있었는데 강제상 작가가 쏘아댄 것들이었다. 툭하면 총을 가져와 회의를 하다가 아이디어가 막히면 총을 꺼내 사격을 했다. 나는 그런 총이 있는 걸 그때 처음 알았고 밀리터리 덕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하지만 그런 행동들에 대해 어느 누구 하나 이상하게 보거나 제지하는 이 하나도 없었다는 게 당시 MBC 예능국 사람들이었다. 조금이라도 친한 피디들은 다가와서 강 작가의 총에 관심을 표명하고 빌려 쏘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일을 하지 못해 오다가다 인사만 했던 황재환 작가가 있다. 1988년 <우정의무대>를 론칭한 선배다. 그 선배는 그때는 친분이 거의 없었지만, 오히려 2019년 들어와서 급 친해졌고 현재까지 자주 연락하고 만나고 있다. 나중에 따로 얘기하겠다. 물론 대 선배 임기홍 작가도 있었고.


또 하나 생각나는 풍경은 담배, 담배였다. 우리의 90년대는 담배에 관해 상당히 관대한 사회였다. 회의를 하는 사무실 탁자 위에는 재떨이가 있었고 흡연가들은 언제든지 담배를 피웠다.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하루에 2~3갑은 기본으로 피워댔다. 그러다 2001년 12월 어느 날 집으로 가던 심야버스 안에서 ‘아, 이러다 얼마 못가 죽겠구나!’ 하고 느껴서 2002년 1월 2일부터 끊었을 뿐, 당시에는 정말 남 부럽지 않게 담배를 피웠다.


무엇보다 방송작가라는 직업이 좋았던 건, 회의실이건 어디에서건 TV를 보고 책을 읽고 만화책을 탐독하는 게 몰래 해야 하는 짓이 아닌 당당하게 내놓고 하고, 아니, 해야 하는 ‘일’이었다는 점이다. 보기만 해서도 안 된다, 그것들에서 프로그램 제작을 위한 아이디어를 생각해야 하는 무척이나 고된 일이었다.


이렇게, 1990년대의 여의도 MBC 예능국은 그런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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