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혁명의 맹아
# 식당을 때려치우다
1999년, 21세기를 목전에 둔 어느 봄날, 신촌 먹자골목 안에 있는 식당 <호호>의 사장 신동준은 기로의 갈림길에 선다.
90년 7월부터 무작정 달려들어 해온 식당이니, 벌써 10년이 되어가는데,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했던 것이다.
‘더 이상 이런 식당은 할 수 없다!’
‘뭔가 새로운 식당을 하고 싶다!’
‘손님들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요리를 만들고 싶다!’
물론 때만 되면 찾아오는 구청이나 경찰의 쓸데없는 트집에 지친 것도 부인할 순 없다.
하지만 당시의 신동준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강렬하게 갈구했던 건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 식당을 유지한다는 것은 거리에 널리고 널린 식당들 중의 한 곳으로 만족하고 만다는 결론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누구나 맘만 먹으면, 아무 때나 배가 고프면 들어가서 먹을 수 있는 어디에나 있는 식당이 아닌, 그야말로 ‘작정하고 가 볼 가치가 있는’ 식당,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맛을 지닌 요리가 있는’ 식당, ‘안 가보면 왠지 평생 후회할 것만 같은 기운을 팍팍 풍기는’ 식당, 나아가 이 땅의 척박한 음식문화에 뭔가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그런 맛집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10년 동안 식당을 하면서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지만 어느덧 자리가 잡히고 있던 식당이긴 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걸 내려놓기로 결심한다.
마음을 비우기 시작한다.
1999년 5월 어느 날, 식당의 문을 닫는다.
그리고 길을 나선다.
# 스승을 찾아가는 길
신동준은 배낭 하나 달랑 매고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서 눈에 들어오는 행선지의 차표를 끊고 버스에 올라탄다.
도시가 아닌 자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느 날엔 인제 방향으로 가 보기도 하고, 다른 날엔 춘천을 향해 갈 수 있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산이 싫증이 나기라도 하면 속초로 가 대포 항에서 회를 먹으며 바다를 바라보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목적지도 없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발 길 닿는 대로 가는 것만은 아니었다.
도시에서 찌든 모든 때를 벗겨내고, 자연의 기운을 최대한 가득 채우기 위한 과정이었다.
바로 그분을 만나러 가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던 것이다.
요리에 대한 의욕만 넘치며 갈팡질팡하고 있던 신동일에게 비로소 요리에 눈을 뜨게 해 준 사람, 요리의 길이 무엇인지 알려준 사람, 진정한 요리사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알려준 그분을 만나러 가는 여정이었던 것이다.
그분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면 1990년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 샐러리맨에서 막일까지
70년대 후반 학번인 신동준은 한 지방대의 공대를 다닌다.
지금도 그렇지만 지방대 출신으로 단박에 취직을 하기란 쉽지 않았는데, 자기소개서를 튀게 쓴 것이 주효했는지 대기업 K건설에 입사를 하게 되고, 이는 두고두고 학교의 전설로 남는다.
영업부에 배치된 신동준은 특유의 추진력과 아이디어로 서울 명문대 출신들을 제치며 업무 실적을 쌓아간다.
하지만 식사 시간 때만 되면 자신은 쏙 빼놓고 끼리끼리 몰려 밖으로 나가는 것이 반복되면서 샐러리맨 생활에 점차 회의를 느끼게 된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처럼 발에 땀나듯 뛰어봤자 잘해야 과장이라는 판단이 섰다. 매일 부장에게 깨지고 부하들에게 스트레스 풀며 매일 똑같이 반복하는 삶.
신동준은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고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샐러리맨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다.
퇴사 후 신동준이 간 곳은 절이다.
2년 정도를 절에서 책을 읽고 수양을 하고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보내게 된다.
책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는다. 경영, 철학, 경제학, 광고학 등.
화두는 앞으로 나는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인데, 하산을 할 때 결심한 것은 단 하나, 앞으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샐러리맨은 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샐러리맨을 하지 않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신동준은 일단 세상을 좀 더 밑바닥에서 바라볼 필요를 느끼게 되는데, 그래서 찾아간 곳이 지금의 이화여대 부근에 있는 허름한 빌딩 지하의 한 인력사무실이다.
소위 노가다에 도전해 보기로 한 것이다.
신동준이 태어나서 처음 가보게 된 공사 현장은 합정동 구석에서 진행 중이던 한 빌라의 공사 현장이다.
처음 배당을 받은 일은 벽돌을 나르는 일.
공사 현장을 지나가다 보게 되는 공사장 인부들이 벽돌을 나르는 모습은 그다지 힘들어 보이지 않았는데, 직접 해보려니 벽돌 나르는 것에도 요령과 경험이 없으면 너무도 힘든 일이라는 걸 몸소 깨닫게 된다.
신동준은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귀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
땀을 흘리고 나면 머리가 그렇게 맑을 수 없다는 것과 마음도 맑아지고 온 몸이 뿌듯해지는 현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적어도 공사 현장에서만은 대졸, 고졸 이런 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함께 더치페이로 치킨에 맥주 한 잔 할 때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지금 그 사람들과 연락이 안 되는 게 무척 안타까운데, 혹시 연락이 된다면 그 사람들만은 예약 없이 자신의 식당으로 초대하고 싶단다.
자신이 만든 돈가스를 대접하고 싶단다.
# 결론은, 요리다
이렇게 공사 현장을 전전하는 생활을 한 10개월 정도 했을까, 신동준은 물론 지금의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자신의 머리, 자신의 열정으로 이것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일은 계속 하지만 비가 와서 공치는 날을 이용해 다른 무엇인가를 찾아 나서게 된다.
화엄경 중에 ‘한 가지만 해도 이 세상 모두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자신에게 그 한 가지란 과연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부여잡고 모색에 모색을 해 나간다.
물론 다른 무엇인가를 찾는 데 있어 원칙은 있었는데, 노가다 일을 해보면서 느낀 것으로 하이클래스가 건드리지 않는 것을 하자, 3D를 하자, 왜? 그래야 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원칙을 세울 수 있었던 데는 1년 정도의 막노동 생활을 하면서 느낀 ‘난 이제는 아무거나 다 할 수 있다!, 내가 하지 못할 것이란 이 세상에 없다!’는 자신감이었다.
이렇게 해서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신동준이 내린 결론은, 요리다.
이렇게 해서 그의 혁명의 맹아가 바로 이때 싹이 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