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맛의 세계가 있다.
머리 위에서 비가 내리듯 연신 땀을 흘려가면서 먹는 뜨거우면서도 얼큰한 국물 맛.
입 안으로 음식을 삼켰을 때 목구멍을 쭉 훑고 식도를 미끄러지듯 내려갈 때 느껴지는 자신만이 아는 맛.
멀리 여행이라도 떠나려는 듯 쌈을 입이 터지게 한 보따리 싸서 한 입 가득히 밀어 넣는 맛.
코로는 고소한 참기름의 냄새를 맡으며 손으로는 비빔밥을 쓱싹쓱싹 비비며, 또는 불판 위의 삼겹살이 탈 새라 고기를 뒤집어 가며 쉴 새 없이 온몸을 움직이면서 음식과 함께 할 때 느끼게 되는, 그야말로 온몸이 아는 맛이다.
네 번째는 분위기라는 이름의 맛이다.
음식의 맛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바깥의 요소들을 말한다.
어떤 식당으로 갈 것인가는 음식의 맛 말고도 교통이나 그곳의 서비스나 가격 등에도 많은 좌우를 하는 것이다.
또한 식당을 가게 될 때의 자신의 컨디션이나 몸 상태, 정신 상태도 맛에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다섯 번째 맛은 자신이 직접 요리하여 먹는 맛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본인이 직접 요리하는 맛이라 할 수 있다.
왜 요리가 중요한가?
요리는 창의적인 행사이다.
요리와 맛에 무감각한 인간은 결국 창의성이 없는 인간이라 할 수 있다.
그 어떤 값비싼 고급 요리보다 본인이 직접 요리하는 음식이 더 맛있다.
그래서 야외에 나가서 고기를 굽거나 또 소풍을 가서 잔디밭에 도시락을 풀거나... 그것보다 더 맛있는 경우는 없는 것이다.
자신이 잡은 물고기로 끓인 매운탕만큼 또 자신이 직접 딴 고추나 깻잎으로 싸 먹는 쌈만큼... 또 자신이 직접 펼쳐놓은 도시락 보자기에서 꺼낸 음식만큼... 맛있는 경우는 없는 것이다.
요리엔 창의가 있고 품격이 있고 결정적으로 미학이 있다.
이것들을 모른다면 아마도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갓의 돈가스는 과연 어떤 맛에 속하는가?
자신이 직접 요리를 해서 먹지는 않기 때문에 가장 맛있는 요리의 맛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외식은 다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나머지 맛의 요소에 얼마나 충실한가에 달려있을 텐데, 동갓은 어쩌면 요리해 먹는 최상의 맛을 다양한 요소로 인해 훌쩍 뛰어넘고 마는, 감히 궁극의 맛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 맛을 뽑아낸다는 것
각각의 돈가스와 어울리는 각기 다른 소스를 만들려면 각 재료들이 가지고 있는 본질을 알아 가슴으로 파고드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맛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혀만으로 맛을 지배할 수는 없기에 비밀스러운 향이 단서가 되기도 한다.
새로운 맛이란, 그것을 찾아내고, 창조해내기 위해 얼마나 집중력을 가지고 최대한 다양한 변주를 해내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간을 맞추려면 소금을 사용하면 된다.
그런데, 그냥 소금이 아니다.
소금에다 시금치를 말려 곱게 빻아 소금과 반반 비율로 섞어 소금과 시금치를 사용한 소금을 사용한 음식을 먹게 되면 시식자는 야릇한 맛에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좀 수상한데, 뭘까?
바로 이런 것들이 재료의 조합이자 또 다른 맛을 뽑아내는 과정이다.
여기서 맛을 창조해내는 기술이 한 단계 높아지게 되면 야생화의 꽃을 따서 소스를 만들게 된다.
계절마다 다르게 태어나는 야생화나 야생초의 종류는 어마어마하게 많다.
이 특유의 맛을 내기 위해 신동준에겐 수많은 야생화와 야생초를 먹어 보아야만 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 야생화나 야생초를 가지고 소스를 만든다.
소스는 음식의 걷잡을 수 없는 맛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보통의 시식자들이 음식을 먹고 나서 맛에 대한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맛이 있다 혹은 없다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베토벤의 ‘신의 영광’이라는 곡을 듣고도 좋다는 사람과 시끄럽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인 것이다.
# 춤을 추는 요리사
신동준이 새로운 무엇인가를 찾으려 할 때는 어느 정도 고민을 하다 도저히 풀리지 않게 되면 일단은 주방으로부터 벗어난다.
맛을 찾으러 나서는 여행은 낯익은 세계에서 벗어난다는 일종의 해방감을 안겨주는 동시에 이성의 힘보다 감성의 힘을 느끼게 하는 데 좋은 방법이다.
거기에 더해 신선한 자극을 위해서라도 떠난다는 행위는 좋은 것이다.
진정한 여행 가는 두 발로 움직이는 것 자체에서 희열에 가까운 자유로움을 맛본다고 한다.
그러한 즐거움은 순간으로 그치지 않는데, 거듭 반복되면서 결국엔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희열이 용솟음치게 되고 결국엔 육체와 마음에 평온함을 느끼는 경지까지 이르게 된다.
몇 해 전 겨울의 어느 날, 신동준은 춘천에서 강릉을 가는 막차에 탄다.
주방에서 부닥친 문제가 해결이 안 되어 여느 때처럼 가게 문을 닫고 미련 없이 시외버스에 몸을 던진 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다.
달리는 창문 밖으로는 모두가 얼어버려 경직된 듯 보이는 풍경이 이어지고 있었고, 차 안은 히터의 열기로 웃옷을 벗어야 할 정도로 훈훈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계속 꼬리를 문다.
지난 일주일 동안 생겼다간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가 싶다가도 이내 사라지는 생각의 편린들이 그 얼마나 많았던가.
일주일 동안의 여행에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주방을 벗어나 자연에 몸을 던지는 것 자체가 신동준에게는 이미 또 다른 맛을 찾아내기 위한 준비를 한 것에 다름 아니다.
다시 가게로 돌아왔다.
어두웠다.
스위치를 켜고 주방으로 들어와 도마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하면 도마 특유의 나무 향기가 올라온다.
여행 중에 숲에서 맡을 수 있었던 그런 냄새.
신동준은 잠시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을 느낀다.
도대체 지금 무엇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다시 선 것인가.
음식 재료들을 펼쳐놓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우선 접시에 담길 핑크빛 무드가 흠씬 풍기는 그런 아늑한 음식의 향기를 뽑을 준비를 한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칼을 붙잡는다.
이내 그의 머릿속에서는 몇 가지 레시피가 다양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잊어버릴 것 같은 생각들은 재빠르게 메모를 한다.
하나하나 만들어 본다.
이것은 괜찮고, 저것은 별로고... 이것은 계절이 바뀌면 나아지지 싶고...
그는 과연 무엇을 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