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부터 합시다!
아직 채택되지 않은 기획안(3)
데이팅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편이 아닌데, 최근 넷플릭스에서 6 화인가까지 본 게 있다. <솔로지옥>. 다음 화를 기다리고 있으니 재미있다는 거다. 초반부는 지루한 편이라 들락날락했는데, 회를 거듭하며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하는 나를 발견했다. 남들의 연애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솔로지옥>의 포맷은 간단하다. 지옥도라 명명된 실제의 작은 섬에 청춘 남녀들이 지내며 저마다의 사랑을 찾아간다. 커플이 되면 천국도라는 이름의 고급 호텔에서 1박을 할 수 있다. 대략 열흘 정도 지옥도에서 생활하며 최종적인 커플 탄생을 기대한다.
<솔로지옥>이 주는 재미는 비주얼이 주는 남녀들의 애정행각을 엿보는 데서 나온다. 그 옛날 <짝>과 매우 유사하지만 2021-2022라는 지금이 주는 핫함이 있다.
핫! 내가 솔로지옥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하려고 쓰는 건 아닌데...
오래전 기획했지만 빛을 보지 못한 데이팅 포맷이 있다. 처음 제목은 <결혼연습소>였고, 그 후에 업그레이드하면서 바꾼 제목은 <결혼부터 합시다>이다.
제목 그대로 이 데이팅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결혼으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배우자를 찾고 싶어 하는 열망으로 가득한 남녀를 공모해 결혼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매칭 위원회가 여러 쌍의 부부로 짝을 맺어준다. 예를 들어 5쌍의 커플이 결정되고, 이들이 처음으로 얼굴을 보는 건 결혼식장에서이다. 각각 신랑으로 신부로 첫 만남을 갖고, 바로 결혼식을 하여 부부가 된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이들은 제작진이 마련한 신접살림 주택에서 실제 부부가 되어 생활하게 된다. 실제 각자의 직업을 그대로 유지하며 이 집으로 귀가하는 것이다.
이들은 성생활만 제외한 모든 생활을 부부로서 지낸다. 그리고 약 한 달 후, 결정의 시간을 가진다. 이 사람과 진지하게 사귀겠습니까? 예스면 커플로 매칭, 노우면 안녕히 계세요,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이다.
몇 가지의 들은 것들, 생각한 것들이 조금씩 합쳐져 기획이 시작됐다.
강신주 철학자의 강연 중 꽂힌 말, 지금 당장 거리로 나가 보이는 이성들하고 사귀면 돼요! 뭘 그렇게 오래 고민하고 멀리서 찾아요!
가만, 그러고 보면 조선시대 때는 배우자의 얼굴을 혼인하는 날 비로소 봤을 거 아냐! 근데 부부들이 잘 먹고 잘 살지 않았나!
또 하나, 결혼을 하여 부부로서 살면서 드는 생각, 결혼생활은 하는 것보다 유지하는 게 더 힘들다!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다, 사랑의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모이고 모여 이런 한 줄이 나왔다.
결혼부터 하고 살아보고 결정하는 데이팅 프로그램!
기획안을 썼고 몇 개의 채널에 타진했다. 안 됐다, 아직은.
그런데! 1, 2년 전 어느 날, 유럽 어느 나라인가에 거의 흡사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있음을 알았다.
헐!!!!!!
그 프로그램의 이름은 <Merried at First Seight>였다. 거기에서도 시작은 결혼식이었다.
그 프로그램을 발견하곤, 두 가지 생각을 했다. 메이드가 되었으면 자칫 소송 갈 수도 있었겠네. 근데 내 생각이 꽤 글로벌하잖아?
그렇다, 아직 채택되지 않은 기획, 결혼부터 합시다,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