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7월 14일 금요일 맑음
아빠의 술주정
일기장에는 언제나 기쁘고 행복한 일들만 적혔으면 좋겠는데 사람일이란 뜻대로 되지 않나 보다. 우리 아빠는 술을 꽤 많이 드신다. 난 평소의 아빠는 좋지만 술을 드셨을 때의 아빠는 싫다. 요새는 좀 나아지셨지만 아빠가 연락
없이 늦게까지 집에 안 오시면 얼마나 걱정이 되는지 모른다. 그런 때는 공부도 안된다. 또 부엌에서 아빠가
엄마한테 술주정을 하실 때도 얼마나 불안한지 모른다.
아빠에게 그런 얘기를 하면 다 핑계라고 하신다.
오늘도 그랬다. 아빠는 오늘도 술을 드시고 늦게 오셨는데
엄마는 오늘 꼭 금요 철야 예배에 가시겠다고 하셨다.
물론 교회에 가시는 건 나쁜 일이 아니지만 아빠가 취하셨는데 그 주정을 내가 다 받으란 말인가. 게다가 아빠는 엄마가 교회에 가시고 나면 '집안 살림은 안 하고 교회만 간다'라고 화를 내신다. 내가 엄마한테 그렇게 말했더니 엄마는 어찌 됐든 교회에 꼭 가셔야 한다고만 말하셨다.
야속한 마음도 들었지만 엄마도 얼마나 속 상하시면 이러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빠는 방문을 꼭 잠그고 나오지도 않는다. 세상에 우리 집 같은 곳도 있을까.
아빠에게 말하고 싶다. 아빠가 술을 끊으시는 게 내 소원이라고. 집안이 이러니 엄마도 오빠도 나도 제대로 살 수가 없다고. 그러면서도 아빠가 우리를 사랑하신다니 이상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