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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민 Sep 07. 2020

PSY네 집 방문기

그날 싸이네 집에서 처음 맛 본 초록색 음료수

대화의 화자를 구분하기 위하여 빨강과 초록으로
글 색깔을 달리 하였습니다.


"너 이거 봤니? 이 언니 기억나? 박재*이라고. 왜 우리 동네 살았었잖아. 이 언니 지금 요리연구가래.

잡지에도 나고 대단하다야. 대~박."

오랜만에 친구랑 파마를 하러 미용실에 왔는데

옆자리에 앉아있던 친구가 호들갑스럽게 나를 불렀다.

"누구라고?"

"아니 왜 박재* 언니. 너도 기억할 텐데, 이 언니 인기 많았잖아. 근데 더 대박인 건 뭔 줄 알아?"

친구는 잡지를 내 얼굴 앞까지 들이밀고 흔들었다.

"이 언니가 싸이 누나래. 너  알고 있었어?"

내가 알고 있었냐고? 아니 그럴 리가.

"이 언니 알 것 같아. 근데 싸이 누나라니 그건 몰랐다야.

얼굴은 하나도 안 닮은 것 같네."

"여하튼 세상 좁다더니 진짜네. 너 혹시 이 언니랑 친했어?"

"아니 그냥 얼굴만 아는 정도? 근데 그 언니 집에 한번 놀러 간  적은 있어."

"뭐? 집에까지 갔었으면 친한 거 아냐?

"아니 혼자 갔던 건 아니고 여럿이서 놀다가 어쩌다 보니 가게 됐던 거라서."

"집에 갔을 때 어땠어? 기억나?"


기억이 나냐고? 당연히 기억나고 말고.

벌써 오래된 일이지만 그날 그 집에 갔던 일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때는 바야흐로 35년 전 내가 국민학교(내가 다닐 때까진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였다) 4학년이었던 1985년 느 날이었다.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서 놀다가 우연히 이웃에 사는 언니들도 함께 놀게 되었다. 한참을 놀다가 그중 한 언니가 잠깐 집에 갔다 오겠다고 했고 마침 목이 말랐던 나와 몇 명이 그 언니를 따라 언니네 집으로 가게 되었다.

집에 들어서자 화려한 인테리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우리 아파트에서 가장 넓은 평수였다.

언니는 뭘좀 가져온다고 방으로 들어갔다.

들여다본 그 언니의 방은 마치 공주님 방처럼 화려했다.

핑크빛 벽지에 침대 위에는 미국 영화에서나 보던

캐노피가 늘어져 있었다.

언니는 잠시 음료수를 마시고 가자며 우리를 식탁에 앉혔다.

언니의 엄마는 예쁜 크리스털 잔에 무언지 모를 초록색 음료수를 내어주셨다. 음료수가 초록색이라니.

그 시절에 내가 아는 음료수라고는 오렌지 주스, 기껏해야 사이다, 콜라가 전부였다. 나와 친구들은 서로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셔보았다. 치약을 먹은 듯 화한 맛이 입안에 가득 찼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민트맛이었던 듯 도 하다.  

여하튼 이국적인 맛과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그 집에서 나오려고 할 때 그 언니의 동생 인듯한  꼬마가

"누나 어디가?"라고 물었는데 이 세상의 모든 쿨한 누나들이 그렇듯 우린 그 질문을 가볍게 무시하고는 그 집을 나왔다.

그런데 그 동생이 바로 싸이였다니.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 언니네 집의 이국적인 분위기와 신기했던 초록색의 음료수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잊히지 않았다.

"여하튼 가문의 영광이다. 싸이를 다 만나고.

그나저나 나 머리 어때? 잘 나온 거 같아?"

"그래,  이번에 예쁘게 잘 나온 거 같다."

나와 친구는 그렇게 머리를 하고 미용실을 나왔다.


사람이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그 만남을 다 기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도 그 신기했던 초록색 음료수가 아니었다면 내가 어린 시절의 싸이를 만났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35년 전의 잠깐 스친 기억이 모래 속의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로 싸이가 왠지 친근하게 느껴져 기사라도 나면 찾아보고 예능에라도 나오면 꼭꼭 챙겨보는 건 안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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