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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최 Nov 09. 2023

낭만적이었던 스웨덴 시절 6

일상이 산티아고 순례길이 되다

스페인 산티아고 340km 걷기를 마치고 마드리드에 왔다. 스웨덴으로 바로 가지 않았다. 실은 산티아고에서 만난 그 여성, 아프리카에서 지속가능한 발전 분야에서 연구와 프로젝트를 한다는 그 여성이 마드리드에 살고 있었다. 초대를 받은 것이다. 스웨덴으로 바로 가지 않고 그녀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녀의 부모님, 삼촌, 동생이 12월의 마지막 밤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새해 이브에 새끼 양고기를 먹는다고 했다. 내 눈에는 아주 크게 보이는 고기가 놓여 있었다. 맛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거슬리는 맛은 아니었던 듯하다. 12시가 되자 종소리가 열두 번 울렸다. 우린 그 종소리에 맞춰 포도알을 한알씩 열두 번을 먹었다. 그렇게 2012년 새해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맞았다.

내가 결혼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는 그녀는 실망했다. 내가 젊어 보여 결혼을 안 한 걸로 여겼단다. 나는 그녀의  초대가 산티아고를 함께 걷던 사람에 대한 우정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녀가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낸 걸 꿈에도 생각 못했다.

마드리드로 초대한 그녀(오른쪽 두번째 여성)

스웨덴으로 돌아온 나의 일상은 그때부터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하루에 20km쯤 보름 동안 걸어 다녔으니 한두 시간 걷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스웨덴 웁살라대학생들은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자전거 도로도 잘 되어 있고 차를 모는 사람들도 걷는 사람이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깊다. 나는 자전거 대신 걸어 다녔다. 마지막 학기에 바빠서 자전거를 하나 구했었는데, 도둑을 맞았다. 아주 단단하게 메어두지 않으면 도둑맞는 일이 잣다. 웁살라에서 자전거는 마치 현금처럼 유통된다. 그만큼 자전거 도둑도 많다는 얘기다.


스웨덴 웁살라대학의 '지속가능한 발전'과정에는 SLU(Sveriges lantbruksuniversitet : Swedish University of Agricultural Sciences) 대학과 연계하는 교육과정이 있었다. 웁살라대학교에서 SLU까지 걸어서는 50분, 자전거를 타면 13분쯤 걸린다. 자취방에서 SLU까지는 1시간 20분 정도. 늦잠을 자서 수업시간에 늦는 경우가 아니면 거의 다 걸어 다녔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얻은 게 있었다. '굳이 다시 산티아고에 오지는 않겠다. 오래 걷는다고 해서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매일의 일상에서 최대한 많이 걸으며 살아겠다. 일상이 산티아고 순례길이다'라는 나름의 해답이었다.


걸어 다닐 때 늘 두 권의 책을 들고 다녔다. 한 권은 마이클 샌들의 '저스티스', 다른 한 권은 켄 로빈슨 박사의 책이었다. 이 책들 속에 나오는 문장을 외우기도 하며, 스웨덴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늘 걸어 다녔다. 귀국 후에도 한국에서도 되도록 걸으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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