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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최 Nov 09. 2023

낭만적이었던 스웨덴 시절 5

낭만적으로 산티아고를 걷다 2

대한민국 대통령의 서명이 들어간 시계를 빅도르 장인에게 선물한 이후, 나와 빅토르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빅토르는 스페인 노래는 물론 이태리 칸소네도 잘 불렀다. 둘은 노래를 하나씩 주고받으며 산타이고 대성당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다. 나는 김현식의 '추억 만들기', 남진의 '님과 함께', 패티김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뽕짝을 불렀다.

쉴 새 없이 얘기하며, 노래하며 걷는 빅토르


산티아고 대성당을 100km 정도 남겨두고 발 상태가 안 좋아졌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크리스마스 연휴라 문을 닫은 알베르게가 많았기 때문에 어떤 날은 20km 넘게 걸어야 했다. 그게 원인이었다. 빅토르가 맨소래담 비스무리한 약으로 내 발을 마사지해 주었다. 그날의 터치는 강렬했다. 소위 말하는 인류애! 인종과 국적을 넘어선 진한 우정의 느낌을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친구의 발에 약을 바르고 마사지해주는 빅토르


중간에 스페인 친구 다니가 합류했다. 다니엘의 준말이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니는 동물과 식물을 좋아하는 게 너무 티가 났다. 꽃과 나무와 소를 보면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로 뭐라고 계속 설명을 하며 표정이 그렇게 해맑을 수가 없었다.

꽃과 나무와 동물을 사랑하는 다니(왼쪽)

지금은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한 여성도 며칠 같이 걸었다. 아프리카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연구와 프로젝트를 한다고 했다.


제일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나는 스페인어를 못하고, 그들은 영어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게 우리의 동행을 더욱 낭만적으로 만들었다.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눈빛과 동작을 보태어 소통했고, 그런 식의 소통은 우리를 더 끈끈하게 이어주었다. 아침에 일어나 걷기 전에 모여서 다 함께 기도를 했다. 스페인어로 추정되는 말로 빅토르가 기도를 이끌었다. 부엔 카미노(Buen Camino)를 함께 외치며 걷기 시작했고, 걷기를 마치면 서로 허그를 하며 마무리했다.


저녁 식사는 늘 기대되는 시간이었다. 포도주와 맛난 그 지역의 스테이크를 비싸지 않은 가격에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정확히는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 속에서도 웃음꽃은 늘 활짝 피어났다. 특히 빅토르는 정말 말을 많이 하는 친구였는데, 걸으면서 쉼 없이 말하고, 저녁 먹으면서도 말하고, 자기 전에도 말을 계속했다. 정말 그 넘치는 에너지란!  


산티아고 대성당에 가까이 갈수록 우리의 발걸음은 더욱 무거워졌지만, 우리의 우정은 더욱 깊어졌다. 마지막날 동행이 제일 힘들었다. 어중간하게 쉬기도 그렇고 해서 거의 30km에 달하는 거리를 걸어야만 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뜨겁고 강렬하고 맘껏 서로를 껴안았다.

완주 인증샷(산티아고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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