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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최 Nov 09. 2023

낭만적이었던 스웨덴 시절 4

산티아고를 낭만적으로 걷다 1

2011년 겨울이었다.

스웨덴 웁살라대학은 겨울방학이 없었다. 스웨덴의 다른 대학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방학이 없긴 해도 크리스마스 연휴가 2주 있어서 이것저것 합치면 한달 정도는 공부라는 일종의 스트레스와 또 일종의 재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중국에서 온 제인(Jane)은 크리스마스 연휴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거라고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말로만 들었던 그 순례길! 나도 걸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스웨덴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에서 스페인 마드리드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마드리드에는 아주 이른 새벽에 떨어 지하철이 다닐 때까지 마드리드 공항 근처를 배회했다. 지하철을 타면 스페인 레온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단다. 스페인에는 영어가 잘 안통했다. 레온에서 산티아고 대성당에 이르는 순례길은 340km다. 레온에 도착해 어느 알베르게(Albergue : 일종의 유스호스텔)에서 1박을 했다. 숙소에는 순례자들로 가득했다. 2층 침대가 여러 개 있는 방에서 외국인들과 함께 잤다. 숙박비는 만원이 좀 안되었다.

다음 날 아침 출발을 하는데 스페인 친구들과 동행하게 되었다. 스웨덴에서 출발할 땐 혼자 걷기로 마음 먹었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마흔 중반이 가까워오는 나이에도 끊이없이 괴롭히는 물음이었다.

맨 오른쪽이 필자, 맨 왼쪽이 스페인 친구 빅토르(Victor)

중간중간 친구들이 만났다 헤어지며 좀 바뀌긴 했지만, 빅토르(Victor)와 몇 명의 친구들은 340km을 순례길에 끝까지 함께 했다.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연휴 때문에 다른 계절에는 열던 알베르게들이 문을 닫는 곳도 많기 때문에 미리 잘 알아보고 순례를 시작하는 게 좋다. 하루 평균 20km쯤 걸었다. 20km를 좀 넘게 걸은 적도 있었지만 아킬레스건과 발바닥, 관절에 무리가 오는 게 바로 느껴졌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독일에서 2,000km 넘게 걸어서 산티아고에 오는 사람, 산티아고 길만 왔다 갔다 하며 2년 넘게 걷고만 있는 사람, 하루에 50km를 걷는다는 독일 사람, 대기업에 다니다 그만두고 알베르게를 차린 사람, 일자리를 잃어 친구들과 그냥 순례길을 걷기로 한 스페인 친구...

사람들은 참 다양했다.

가운데가 좋은 직장 다니다 그만두고 알베르게를 운영하던 다비드(David)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빅토르(Victor)는 회사에 다니는 스페인 친구인데 크리스마스 연휴가 되면 가끔 순례길을 걷는다고 했다.

나와 빅토르

마침 순례길 중간에 빅토르 장인집이 있어서 크리스마스이브를 빅토르 장인집에서 보냈다. 집에서 직접 담근 포도주와 신선한 해산물(marisco)이 넘쳐났다. 나는 스페인 노래 '베사메무초(Besame Mucho)'불렀다. 순식간 손뼉 치고 난리가 났다. 서로 노래를 주고받으며 2011년 크리스마스이브를 열광 속에서 보냈다. 초대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차고 있었던 대통령 서명이 있는 손목시계를 빅토르 장인께 드렸다. 대한민국 대통령 이름과 서명이 있는 귀한 시계이니 잘 간직하라고 뻥을 쳤다. 하필이면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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