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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최 Nov 08. 2023

낭만적이었던 스웨덴 시절 3

낭만적으로 미친 듯이 공부하다

정말 미친 듯이 공부했다.


대학시절 고시공부하면서 부모님껜 죄스러운 마음으로 보았던 '녹색평론'의 추억을 스웨덴에서는 마음껏 즐겼다. 대학원 수업은 물론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각종 원서와 강의(TED)를 잠을 설쳐가며 듣고, 읽었다. 재미가 있었다.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가 던진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가 사람을 위한 도시인지 돈을 위한 도시인지?', 조지 칼린(George Carlin)이 얘기한 것처럼 '지구는 우리가 아무리 망쳐도 끄떡없다, 다만 지구상의 생명체가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뿐이다, 지구를 구한다는 얘기는 어불성설이다'라는 관점,


캔 로빈슨(Ken Robinson)의 현 교육체제가 시험위주의 교육에 최적화되어 있는 특정한 종류의 재능과 창의성만 강요하고 있고, 그 밖의 다양한 개성과 창의성들이 존중받지 못하고 소외되고 있다는 주장,


팀 잭슨(Tim Jackson)이 역설한 인류가 함께 좀 더 오래 지구상에서 잘 살아가려면, 데카르트식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합리성보다는 ‘우리가 있으니, 나도 있는 것이다’라는 아프리카의 ‘우분투(Ubuntu)’적인 정신세계에 그 뿌리를 두어야 한다는 통찰,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의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미래의 시장은 지금과 같은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 즉 '가격(price)'이 아닌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공감(empathy)'에 의해 작동되어야 한 상상,


얀 겔(Jahn Gehl )의 사람을 위한 도시(Cities for people) 강조한 도시계획을 할 때 인류가 몇 백만 년 동안 걸어 다니던 존재였다는 진화적 측면을 고려해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친화적인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과학적 소신 등등


너무도 설득력 있고 매력적인 얘기들에 미친 듯이 빠져들었다.


외국 친구들과 만나면 토론이었다. 지속가능한 발전에 미친 청년들과의 대화는 진지하면서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왼쪽 : 이라크 친구 지바드(Javad), 중간 : 방글라데시 친구 도로시(Dorothi), 오른쪽 : 독일 친구 마리안(Marian)]


웁살라에 있는 발도로프 스쿨 견학 갔을 때도 큰 충격을 받았다. 꼬맹이들에게 자를 대지 않고 줄을 긋게 하는 훈련을 시킨다고 했다. 학교 분위기가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놀라웠다.

꼬맹이들이 흙을 만지고 뒹굴면서 자랄 수 있도록 시소가 놓인 곳도 흙으로 채워져 있었다.

시간은 흘러 흘로 논문을 써야 할 때가 왔다. 4학기 중 마지막 학기는 졸업 논문을 써야 한다.


주제는 서울과 유럽, 미국, 남미 등 자전거 정책이 발달한 나라와 비교 연구였다.


지도교수는 이태리에서 오신 여자 교수님이셨다. 무슨 모델인 줄 알았다. 키도 180이 넘는 것 같고 미모도 출중하셨다. 설레는 마음으로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 한두 시간 논문에 대해 얘기했다. 논문 체계도 잘 잡아주셨다.

[지도교수 : Cecilia Pasquinelli]

외국어로 논문을 쓴다는 건 참 머리가 터지는 작업이다. 미국, 영국, 캐나다와 같이 그나마 한국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영어를 잘하시는 분께 도움을 청해볼 수도 있었겠지만, 스웨덴은 상황이 달랐다. 그리고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논문을 포기하든지, 직접 다 쓰든지 두 가지 방법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여전히 마마보이 끼가 좀 있지만, 그 시절 어려울 때 가끔 어머니와 통화했다. 논문 쓰는 게 너무 힘들다,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가슴이 답답하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다를 연발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그 간 니 하고 싶은 대로 살았으니, 이번엔 니 하기 싫은 것도 해봐라. 마무리 잘하라!" 위로해 주셨다.


시간이 흘러 논문은 완성되어 있었다. 시간의 기적이다. 그 기적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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