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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최 Nov 12. 2023

아버지의 이름으로 1

아버지의 날을 만들다

아버지처럼 소외된 말도 있을까!


여동생 세명, 장남인 나도 늘 엄마, 엄마만 불러대며 살았다.


젊은 날 바람기도 많았고, 도박에도 빠졌었고, 아버지는 어땠는지 몰라도 우리가 보기엔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아버지를 우리는 늘 따돌렸었다.


어느 날은 둘째 여동생이 울면서 얘기했다.

"아버지가 너무 불쌍해!"


1년 반 전쯤 아버지는 폐결핵을 앓으셨다. 코로나19의 공포를 경험한 터라, 큰 일 날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불안감에 아버지를 공기 좋은 곳으로 모시고 싶었다.

나는 공기 좋다는 남해에 조그마한 촌집을 마련했다.


아버지는 물 만난 물고기 마냥 남해 촌집을 좋아하셨다.

본가가 있는 김해에서 반, 남해에서 반을 생활하신다.

좋은 공기 마시고, 남해에서 나는 먹거리와 밭농사로 얻은 채소를 꾸준히 드셔서 그런 지 최근 병원에 가셨을 때는 1년에 한 번 정도 검사를 받으러 오라는 의사 선생님의 얘기가 있었단다. 거의 2년만에 회복하신 샘이다.


둘째 여동생의 얘기가 나온 김에 나는 '아버지의 날'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1년에 한 번만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아버지의 날'을 갖자고 했다.


얼마 전에는 남해에 있는 돌창고로 모시고 가서 차도 마시고, 사진도 실컷 찍어 드렸다.

돌창고 옆에는 아주 오래된 팽나무가 있고, 팽나무를 볼 수 있는 모던한 정자가 있어서 거기도 모시고 갔다. 10년 여 년 전부터 성당에 다니는 아버지는 두 손 모아 당산나무에 기도를 하셨다. 무슨 기도를 하셨을까?

아버지가 기도하는 모습을 밥 먹을 땐 잠깐 보기는 했지만 눈여겨보지는 않았었다. 아버지가 달리 보였다.

모던한 정자 2층에 올라가 아들이 하라는 대로 연출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귀여웠다.

아버지와 엄마의 사이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진 속의 두 분은 다정해 보인다.


우리 집에는 '아버지의 날'이 있다. 시시때때로 한다.

최근 나는 손수 막걸리 담기를 시작했다. 막걸리가 익으면 '아버지의 날' 드려야겠다. 아버지와 한 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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