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등원하는 금이를 살피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금이의 컨디션에 따라 오늘 나와 담임의 일과가 달라진다. 인형을 들고 연보라 원피스를 입고 유치원 입구에 서 있는 금이를 향해 방역 봉사자 선생님이 인사를 한다.
"금이야 안녕! 체온 재고 손 소독하자."대꾸도 없이 신발을 벗는다.
"오늘은 보라색 원피스를 입었네. 예쁘다."
"엄마가 사줬어."
"엄마가 예쁜 원피스도 사주시고 금이는 좋겠다." 말없이 교실로 들어가는 금이 표정을 유심히 살펴본다. 오늘 아침 컨디션은 그럭저럭 괜찮아 보인다.
다음날 아침 금이는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다. 인사도 받지 않고 소독도 거부한다. 체온 측정기도 일부러 피해서 간다. 담임은 불안하다.
"금이 오늘 기분이 별로 같네.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어?"
"엄마가 빨리 하라고 소리 질렀어."
"그랬구나. 그래서 속상했구나."
"버스 갈 때 나한테 손을 안 흔들어 주고 회사 갔어."
"유치원 버스 출발할 때 엄마가 손을 흔들어 주지 않아서 속상했구나."
담임은 금이가 오늘 왜 컨디션이 좋지 않은 지 파악을 했다. 그리고 추가로 확인을 했다.
"어젯밤에 일찍 잤어? 늦게 잤어?"
"늦게 잤어. 핸드폰 한다고 언니랑 오빠랑 나랑 엄마한테 혼났어."
"잠을 푹 못 자서 피곤하겠다." 담임은 불안하다. 오늘 금이의 유치원 생활이 예측되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이다. 놀이를 멈추고 화장실에 다녀오라는 말에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 놀이를 한다. 친구들이 정리한 장난감을 계속 꺼내 놓는다.
"금이야, 점심 먹어야 하니까 이제 정리하자." 하면서 교사가 다가가자 화가 난 금이가 소리를 지르면서 장난감을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애들은 '또 저러네.' 하는 표정으로 금이를 피한다. 교사는 금이를 말리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말릴수록 소리는 더 커진다. 밖에서 들어오신 기사님이 말씀하신다.
"지나가는 사람이 들으면 유치원에서 아동 학대하는 줄 알겠어요."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 나는 이 상황에 걱정을 하셨다.
"원장 선생님 친구가 갑자기 무섭게 변했어요." 내가 쫓아갔을 때는 교사의 목덜미와 팔뚝이 다 뜯긴 상태다. 장난감에 다른 아이들이 맞을까 봐 걱정도 되고 친구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금이에게 좋지 않다고 판단해서 밖으로 데리고 나오려 하다가 번번이 당하는 것이다. 사실 요즘 아이들을 함부로 잡을 수도 안아서 멈추게 할 수도 없다. 이런 상활 일 때 나는 오히려 cctv 앞에서 지도하라고 한다. 혹시나 상처가 생기면 교사가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간이 1시간 가까이 이어지면 다른 반 교사들은 교실 문을 닫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담임교사가 해결을 해야 1년을 지도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지켜보기만 하고 개입을 참았다. 하지만 나도 처음 겪는 금이의 모습을 10년 미만의 교사는 겪었을 리가 없다. 내가 개입을 해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아이들과 분리해서 진정되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을 내가 해야 했다. 금이 때문에 다른 아이들의 지도에도 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날이면 오후에 일과가 끝나고 금이와 같은 반 학부모들의 항의 전화까지 교사는 심신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런 시간을 1년 보냈다. 교사는 금이 때문에 심각하게 사직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자책감이 제일 컸다고 했다. 그리고 매일 아이에게 맞아줘야 하는 현실과 같은 연령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부모가 금이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기에 이렇게 분노를 주체 못 하게 만들었는지 그것도 너무나 화가 났다고 말했다. 그것은 학대와는 다른 문제였다.
"태어나서 뺨을 그렇게 많이 맞아 본 적이 없어요."
"그러게 말이야. 나도 턱 나갈 뻔했잖아."
"사실 애가 때리는 건 참을 수 있었는데 같은 반 아이들이 금이 행동을 모두 따라 하는 게 젤 문제였어요."
"부모님들 알림장 댓글 보면서 나도 알았어."
"반찬은 안 먹고 흰 밥만 먹는 것도 따라 하고 소리 지르는 것도 따라 하고 진짜 멘붕이었어요."
"볶음 밥하는 날이면 흰 밥 미리 챙겨 달라고 조리사님께 부탁하느라 고생했어. 이런 선생인 거 금이 부모님은 알려나? 수료할 때 고맙다는 인사는 들었어?"
"아뇨, 바라지도 않아요. 다른 엄마들이 1년 내내 상담할 때마다 아이가 갑자기 괴성을 지른다고 이유를 묻는데 모르겠다고 말할 수도 없고 솔직하게 말할 수도 없어서 너무나 난감했어요."
"그래, 너무 고생했어요. 선생님이 부족한 교사라서가 아니에요."
"사실 금이가 유치원을 결석하면 마음에 안정이 되었어요. 그때마다 드는 생각이 선생이 이래도 되나?" 하면서 교사는 눈물을 흘렸다.
"사실 나도 그랬어요. 미안해요." 원장인 내가 암묵적으로 '포기 못해.' 하는 태도 때문에 선생님을 너무 힘들게 한 것 같아서 미안했다. 원장인 내가 능력 부족임을 인정하고 부모님께 교육을 못 할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해야 했을까? 금이를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설득하는 게 잘하는 원장의 역할이 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다리고 기다리며 1년을 보냈고 교사는 조금씩 변하는 금이를 보면서 힘든 기억 위에 현재의 보람을 덮어 씌우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고맙다.
우리는 금이의 변화를 그냥 기다린 것만은 아니 었다. 1년 동안 매일 기록을 남기면서 원인을 찾았다. 엄마와의 1차 상담을 통해서 금이가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 양육이 되었고 진단서를 받지는 않았지만 엄마 또한 직장과 육아에 많이 지쳐있다는 것을 알았다. 몇 가지 기본 생활에 대한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그만두라고 오라는 줄 알고 걱정 많이 했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의 나를 떠 올렸다. 그래서 나는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상담 후에 우리는 오은영 박사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부터 '금쪽이'까지 시청하면서 공부하기를 이어갔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행동, 정서문제에 대한 전공서적을 찾아서 공유했다. 특수지원센터에 도움을 요청해 보기도 했지만 현재 특수센터에서는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발달지체 유아에 대해서만 지원과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다. 정서발달에 관한 것은 초등학교 이상이 되어야 지원이 가능하다. 금이의 상태가 갑자기 더 심해졌을 때는 녹화했던 비디오를 보면서 상담을 하기를 원했지만 부모님은 방문하지 않으셨다. 전화상담을 통해서 정서 발달과 관련한 가족치료를 권유했지만 크면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이 강하신 것 같았다.
"집에서는 안 그러는데 왜 그럴까요? 제가 그러지 말라고 잘 말할게요."
부모님들이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이기도 한 답변이 우리를 지치게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1년이 지나고 3월이 되었다. 금이는 새로운 반으로 진급을 했다. 새로운 금이 담임교사는 작년 담임교사와 많은 대화를 하고 인수인계를 받았다. 연령이 달라졌고 새로운 지도 방법도 공유하고 준비했다. 하지만 3월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점심시간에 금이가 소리를 지른다. 나는 습관처럼 급하게 교실로 뛰어갔다. 아이들은 화장실과 세면대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금이는 반대쪽에서 소리를 지르며 선생님을 향해 물건을 집어던지고 있다. 내가 들어가자 잠깐 울음을 그친다. 작년에 나를 때리는 금이를 뒤에서 안고 놓아주지 않고 행동을 멈출 때까지 기다린 적이 있었다. 그 뒤로 내가 나타나면 하던 행동을 조정한다.
화가 난 이유는 간단했다.'점심시간이라서 손 씻자고 했더니 다른 애들보다 맨 앞에 못 섰다고 애들을 때렸다. 교사가 그러지 말고 차례대로 하면 된다고 했다가 담임이 싸대기를 맞았다.
1년 전부터 일어나는 일이라서 익숙하다면 익숙하다. 하지만 처음 싸대기를 맞은 담임교사는 당황한 표정이 영력 했다. 아이들의 시선은 금이에게 집중해 있었다. 금이는 그런 집중을 싫어한다. 나는 교사와 눈짓을 하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우리 예쁜 반 친구들 점심 먹으려고 손 씻는구나."
"네, 원장 선생님 우리 친구들 이렇게 질서도 잘 지키고 정말 형님 같아요."
"와, 옆 반 동생들이 보고 배우겠어요. 진짜 멋지다. 원장 선생님이 감동 먹었어."
"원장 선생님, 우리 친구들 칭찬 많이 해주세요."
"우리 금이도 씻으려고 준비하고 있구나." 그제야 금이가 하던 행동을 멈추고 공격의 대상이었던 담임교사 앞으로 다 와서 줄을 섰다. 나는 금이를 칭찬했고 속삭였다.
"참 잘했어. 하지만 아무리 화가 나도 사람을 때리면 안 되는 거야. 알고 있지?"
금이는 전과는 다른 울음을 터뜨리며 담임교사에게 안겨서 울었다.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울었다. 교사는 울음이 그친 금이 마음을 읽어주고 교사의 마음도 얘기해주고 마무리했다.
오후에 우리는 다시 모였다. 오늘은 작년보다 많이 좋아졌다는 희망을 갖고 다시 논의를 시작했다.
"이제 나는 빠지고 담임교사가 끝까지 해결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고도 그 행동에 대한 제제를 받으면 분노를 표현하는 행동에 대해서 이제는 조금 더 단호하게 대처하기로 했다.
다음 날 금이는 놀고 있는 친구를 계속 방해한다.
"금이야, 같이 놀고 싶어서 그래? 그러면 말로 해야지. 친구가 속상하데."
금이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장난감을 마구 집어던진다. 교사는 사전에 논의대로
"금이야, 장난감 던지지 마세요. 친구들 다쳐요." 하지만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교사는 금이를 분리하기보다 다른 아이들을 옆반으로 이동시켰다. 금이가 행동의 잘못을 인정하고 멈출 때까지 교사는 계속 설명하고 기다렸다. 결국 금이는 행동을 멈추고 오래 기다려준 담임에게 와서 잘 못을 인정했다. 그리고 던진 장난감을 정리했다. 이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 반복되겠지만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내가 더 걱정하는 것은 아이의 자존감이다. 친구들에게 비친 금이의 모습이다. 금이를 이미 친구라기보다 이방인으로 보게 돼서 더 외로워질까 봐 걱정이다. 금이도 사랑받고 이쁜 모습만 보여주는 아이가 되고 싶을 것이다.
아이들의 교육은 가정과의 연계가 잘 이루어질 때 최고의 효과를 낸다. 학부모들은 가정에서 보는 것만으로 판단하기 쉽다. 그래서 간혹
유치원에서의 생활을 상담하다 보면 오해를 받을 때가 많다.
"다른 곳을 다닐 때는 그런 말 한 번도 못 들었는데요."
"우리 아이만 미워하시는 거 아닌가요?"
"아이들이 다 그런 거 아닌가요?"
"선생님이 실력이 없는 거 아닌가요?"
이런 의문이 슬프지만 절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유치원, 어린이집의 아동학대 뉴스가 나올 때마다 부모들의 불안감과 깨져 버리는 신뢰감을 이해한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서 유치원 생활에 대한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원장이나 교사가 있다면 마음을 열고 상담을 해 봤으면 한다. 결코 쉽게 꺼내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아이를 함께 교육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시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