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좋아해서 비가 오는 요즘이 좋다. 그렇다고 축축한 바닥과 공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가물었기 때문에 비를 기다리기도 했고 열흘이면 끝날 거라고 생각을 해서 더 즐길 수 있는지도 모른다. 집안에 비가 세거나 바람에 부러진 고목이 나의 출퇴근 길을 막지않았음에 안심하고 출근을 했다.
내가 움직이기만 하면 쏟아지는 비를 뚫고 사무실에 도착했다. 옷에 묻은 비를 털어내고 차 한잔을 따랐다.'까똑'미술 선생님이다. 사진이 주욱 날아왔다. 사진을 보는 순간 '으악~' 또 일이 벌어졌구나. 통화 버튼을 누르기가 겁이 난다.
"선생님,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아."
"이 사진은 또 무슨 일이야."
"선생님이 상상한 그대로야."
"이 번에는 몇 마리예요?"
"다섯 마리.일곱 마리 같았는데 두 마리는 잘 못 된 거 같아요."
"이 비에 뭔 난리래요."
"우비 입고 빗속에서 건져왔어."
"선생님이 살려주는 거 알고 계속 거기서 낳는 거야."
"쌤네 컨테이너를 치워. 여름에는 컨테이너 아래, 겨울에는 울타리 풀 속에 아주 자리를 잡았어."
"장마 통에 참나."
"땅 주인 닮아서 자손이 번창하는 땅 같아."
"맞아요. 집터고 밭이고 다들 출산하고 있어요. 집은 병아리 고양이 새끼들 때문에 난리예요."
"여하튼 장마와 폭설 때마다 개 살리느라 고생이 많으시네요. 늘 말하지만 복 받을 거예요."
"복 그만 받고 싶으니까. 이제 땅주인이 해결해.ㅋㅋ"
"해결은 못하고사료 사 가지고 갈게요."
"분양할 분 있는지도 꼭 알아오세요."
작년 봄부터 우리 집고구마 밭에 유기견 부부가 자리를 잡았다.
작년 여름에 밭에 놓은 컨테이너 밑에 새끼를 낳았다.
겨울에는 추수가 다 끝난 밭 가장자리 햇볕 잘 드는 풀숲에 자리를 잡아 새끼를 낳았다. 그때마다 새끼들을 살려주는 분이 계시다. 고구마밭 바로 옆에 고구마빵 공장 사장님 부부가 주인공이다.
사장님 가족은 애완견을 키우고 있다. 그래서인지 동네 불쌍한 개들은 이곳으로 다 모인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찾아와서 가족이 되고 건강하게 살다가 수명을 다하고 떠나는 것을 몇 번을 봤다. 그때마다 여자 사장님이신 미술 선생님은 다시는 거두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하지만 매번 그 말은 그냥 하는 소리가 되어 버린다.
오늘도 작년 여름과 똑같이 같은 자리에 새끼를 낳은것이다. 유기견 부부는 미술 선생님의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새끼를 낳으면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같다.
어제는 폭우에 컨테이너 아래에 물이 차오르자 새끼들이 떠내려가는 줄 알고 동네가 떠나가라 짖으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구조를 요청한 것 같다. 그 불안하던 모습과는 달리 비로 잠긴 밭고랑을 피해서 물 위로 솟아 오른 두둑 위에 엎드려서 공장 카페를 쳐다보고 있다. 새끼들이 안전하게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듯 유기견 부부는 아주 편안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