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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만 5세)를 아시나요?

by 앞니맘


7세(만 5세) 조기입학 문제로 시끄러운 며칠이었다. 마늘이나 까먹으면서 지내는 곰 같은 나를 투사로 변하게 하는 일들이 생긴다. 사는 동안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모난 짱돌에서 매끄러운 조약돌이 되었다고 정리한다면 조금 슬프기도 하다. 그런데 아주 가끔 나는 모난 짱돌이 되는 경우가 생긴다. 아직도 자식에 대한 일이나 내가 맡고 있는 유아교육에 관련한 것들이다. 유아교육이 결국 자녀교육과 연결되어 있으니 같다고 볼 수도 있다. 용산으로 달려가자.


초등학교 입학을 8세(만 6세)에서 7세(만 5세)로 앞당겨진다고 합니다.


"뭔 개 소리야?"

뉴스를 틀어 놓고 빨래를 널다가 나도 모르게 개를 찾았다. 뉴스에서 7세(만 5세) 조기입학 이야기가 나오면서 카톡이 오기 시작했다. 부총리의 브리핑 내용을 보다가 집어던졌다. 말로만 중요했던 교육이 유아교육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타임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어른들 맘대로 해도 되는 대상이라는 것을 부총리가 설명하고 있다.

"저게 나쁜 건가?" 흥분을 해서 잠시 사람 됨을 포기하고 떠드는 나에게 남편이 한 마디 했다. 전 같으면 '마누라가 유치원 선생인데 그런 말이 나오는지, 7살 애들이 학교 가서 20분 이상 앉아서 있을 수 있겠냐고' 따지면서 화를 냈겠지만 나는 마늘을 많이 먹고 인간이 되기로 했기에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아꼈다.


"애들이 아무리 똑똑해졌고 과학이 발달했어도 6개월 때 걷지는 못하잖아."

"그러게 근데 왜 저렇게 바꾸지? 병설유치원도 있고 무상교육도 시작했잖아."

"뭔가 꿍심이 있겠지."

"애들 교육 가지고 정치적 계산이 끼면 망하는데. 애 더 안 낳지."

"금이(우리 집 첫째) 생일 빨라서 조기 입학시켜서 애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생각해봐."

"그때 진단서 내고 그냥 제 나이에 보냈어야 했는데..." 오랜만에 제대로 된 말을 해주는 남편에게 욕을 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당시 1995년 12월 교육법이 개정돼 7세(만 5살) 아동의 초등학교 조기입학이 허용되었다. 1999년생과 함께 2000년생 우리 아들에게도 취학 통지서가 나왔다. 입학 연기는 가능했다. 단 발달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서를 제출해야 했었다. 그런 진단서까지 받고 학교를 유예하기는 싫었다. '12월생이나 1월생이나 같지 뭐.' 하는 생각으로 학교를 보냈다. 사실 똘똘했기에 인지적으로는 따라가는데 문제가 없다고 판단을 했다. 그리고 학생이 된다는 것은 아이의 발달과는 별개로 엄마 손이 덜 가도 된다는 직장맘의 이상한 위안도 깔려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너무나 많이 가슴 아프게 후회한다. 아들의 능력을 믿었다고 아무리 포장을 해도 엄마 중심의 판단으로 힘든 초등학교 저학년을 보냈고 그렇게 무너진 자존감이 우리 아들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지금도 법적으로 초등학교에 조기입학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조기입학을 선호하지 않는다. 내가 근무하는 유치원에서만 보더라도 2009년 초등학교 입학 대상이 3월에서 2월이 아니라 1월부터 12월생으로 개편된 이후 유치원 학부모들이 조기입학을 신청한 경우는 단 1건도 없었다. 통계에 따르면 2009년 9707명이던 조기입학은 지난해 537명으로 줄었다. 나 같은 엄마들이 많았나 보다.


현재 정부에서 발표한 7세(만 5세) 초등학교 입학 계획이 여러 개 있다고 한다. 그중에 가장 많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4년 동안 매년 25%의 아이들을 조기에 입학하는 방안이다. 도입 시기는 2025년을 목표로 잡았다. 이 경우 2025년에 2018년 1~12월생과 2019년 1~3월생이 입학하고, 2026년에 2019년 4~12월생과 2020년 1~6월생이 입학한다. 일정 비율로 나눠서 입학을 추진하는 이유는 어느 한 해 만 5세와 만 6세 아동이 동시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가르칠 교사와 교실이 부족해 수업 환경이 열악해지고 입시·취업 경쟁이 치열해지는 부작용이 따르기 때문이다.
취학 연령을 앞당기려면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1949년 제정한 ‘교육법’에서 초등학교 취학 연령을 만 6세로 정한 뒤 지금까지 유지해왔다. 교육부는 올해 말 대국민 설문조사를 실시해 내년 구체 시안을 마련하고, 2025년부터 본격적으로 실시하겠다는 계획이다. 연내 학제 개편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정책 연구에 착수할 방침이다. 같은 방식으로 2028년까지 25%의 아이들이 조기 입학하면 2029년부터 모든 아이들이 한국 나이로 7세에 초등학교 입학을 하는 구조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이른바 '6-3-3 학제'는 조정하지 않는다. 취학연령이 앞당겨지면서 고등학교 졸업 시기도 1년씩 빨라진다. 그만큼 학생들의 사회 진출이 빨라진다. 교육부 장관은 취학연령 조정이 '영·유아 단계에서 국가가 책임지는 교육 대상을 확대하여 사회교육 격차를 해소하고 결과적으로 직업 시작 연령을 앞당기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처음에는 '미국 K학년처럼 운영된다고 해서 사립 유아교육계에서 반발하나? 생각했다. 미이 무상교육도 시작이 되었고 공립병설유치원도 다 있는데 뭐가 문제라는 거지?'자세히 보니 이 번에 발표한 취학연령 조정은 미국 등에서 7세(만 5세)를 대상으로 K학년처럼 운영하는 프리스쿨(preschool)을 도입한 게 아니라, 단순히 기존 체제에 7세(만 5세)를 조기 편입시키는 방식이다.


현재 영·유아 교육과정은 심신 발달과정에 따라 0~2살 표준교육과정과(어린이집) 3~5살 누리교육과정(어린이집, 유치원)으로 구분된다. 우리나라 초등교육 시작 시기는 국제적으로도 늦은 편이 아니다. 교육부와 한국 교육개발원이 발표한 ‘2021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를 보면, 아일랜드, 뉴질랜드 등을 제외한 미국, 독일, 일본 등 OECD 가입국 대부분은 초등교육을 만 6살에 시작하고 만 3~5살은 아동의 교육·보육·돌봄(ECEC)을 받는다. 더욱이 해당 지표에서는 ECEC가 유아가 학교와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지적, 신체적, 정서적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과정이라며, 여러 교과에 요구되는 선행적인 이해와 함께 문자언어 및 수학의 기초교육을 제공하는 초등교육과정과 나눠 설명한다. 이어 학업 중심 과정에 참여하기 전 유아 주도 자유놀이 학습에 참여하는 것이 유아의 발달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강조하며 초등교육과는 다른 영·유아 보육의 중요성을 밝히고 있다


정부는 사회교육 격차를 해소를 위한 정책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지금 같은 교육환경 안에서 일방적인 공교육 과정 확대는 숟가락, 젓가락 질도 서툰 아이들이 연필을 잡고 한글, 수를 배우기 위해서 만 3세부터 학원에 가는 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다. 오히려 사교육 의존으로 인한 교육 불균형이 유아기로 확대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교육부는 제도 시행 전 취학연령 하향과 관련한 교육수요자 의견을 수렴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학제 개편을 신속하게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교육부 다웠으면 한다.


지금 이 방안을 두고 유치원과 초등학교 현장은 물론 초등 교육을 준비하는 학생은 물론 학부모에게 큰 혼란이 되고 반발을 하는 이유는 각자의 상황과 입장에 따라 이유가 다를 것이다.


다 떠나서 이번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7세(만 5세)
우리 아이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유치원 7세(만 5세)는요?


* 점심 식판을 들고 제 자리로 돌아가다가(1미터 미만) 친구가 불러서 대답을 하다가 식판을 엎어버리지요. 하지만 괜찮아요. 선생님이 다 닦아주고 식판도 새것으로 제 자리까지 가져다줍니다.

* 색연필에 이름 스티커를 다 붙여 줬어도 쓸 때마다 찾아 달라고 선생님을 불러요. 아직은 글씨를 몰라도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하세요.

* 제가 물병이나 가방을 아무 곳에나 놓고 와도 괜찮아요. 다들 그러니까요. 결국 선생님이 찾아줘요. 아직 제 물건을 다 챙기는 게 어려워요.

* 요구르트, 요플레, 푸딩 껍질을 벗기다가 쏟아도 아직 서툴러서 그렇다고 하시면서 혼내지 않아요. 가끔 잘하는 친구가 해주기도 하지만 부끄럽지는 않아요.

* 아프거나 속상한데 말을 잘할 수 없어서 울고만 있으면 선생님이 추리소설 작가로 변신해서 제 마음을 읽어주세요. 선생님은 대단해요. 학교에 가려면 제 생각을 말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하세요.

* 밥을 먹다가도 응가가 마려우면 바로 화장실에 가야 해요. 식사 중이신 선생님을 화장실에서 큰소리로 불러요. 선생님은 바로 오셔서 응가를 다 닦아주시고 식사를 하세요. 싸면 선생님이 더 힘드시니까요.

* 집중력이 좋은 친구들도 선생님의 설명이 15분을 넘어가면 힘들어서 꿈틀거려요. 갑자기 물도 먹고 싶고 화장실도 가고 싶어요. 그리고 옆에 갖고 놀던 장난감이 나를 불러요. 나랑 놀자구요.

* 엄마랑 아빠가 직장 때문에 저를 약속보다 늦게 데리러 와도 괜찮아요. 친구들이랑 선생님이랑 같이 놀면서 함께 기다려주니까요.


"이런 저를 학교에 가라고요? 학교가 저를 도와줄 준비가 다 된 건 맞나요?
지금 유치원이 좋은데 왜요?
이제부터 저에게 먼저 물어봐 주세요. 어리다고 무시하면 화낸다."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단지 제도 개혁을 통한 사회구조 개선과 경제적인 목적 달성에만 초점을 두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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