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전부터 딸은 신이 났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가는 소풍날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 이거 좀 봐줘."
"뭔데?"
딸이 내민 수첩에는 소풍 계획서가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1. 김밥 도시락, 과일(샤인 머스켓, 귤)
2. 작은 물 1개
3. 차 안에서 친구들과 몰래 나눠 먹을 간식
(키세스 초콜릿)
4. 소풍 가서 먹을 간식(자유시간)
5. 돗자리
6. 이어폰(차에서 듣기)
"우리 딸은 계획이 다 있구나."
"당연하지. 얼마 만에 가는 소풍이야."
"그렇게 좋아? 민속촌 가서 할게 별로 없을 텐데."
"그래도 기대돼. 친구들이랑 같이 가니까 좋아. "
코로나 시기에 입학을 해서 3학년이 되도록 학교에서 하는 행사나 현장학습을 경험하지 못한 딸의 들뜬 기분이 충분하게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사달라는 간식과 싸 달라는 김밥을 기꺼이 싸주기로 했다.
소풍 전날 저녁이 되자 딸은 나의 준비사항을 체크했다.
"김밥 재료는 다 산 거지?"
"당근이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김밥을 싸 주마."
나도 계획을 세워서 미리 준비할 재료를 체크했다. 7시 40분까지 학교에 가야 하니 5시에는 일어나서 김밥을 싸야 한다.
1. 시금치 미리 데쳐놓기.
2. 당근은 채 썰어서 소금을 뿌려놓았다가 볶아놓기.
3. 쌀은 씻어서 소금물로 밥물 잡기
4. 나머지는 내일 아침에 하기.
새벽 5시 알람 소리에 잠을 깼다. 일단 밥솥에 불을 붙였다.
1. 어제 닭장에서 꺼낸 가장 신선한 계란을 꺼내서 지단을 붙인다.
2. 계란지단을 끝낸 프라이 팬에 햄과 어묵을 살짝 익혀준다.
3. 단무지와 우엉을 꺼내서 물을 빼준다.
4. 맛살을 찢어준다.
5. 밥이 다 되면 볶아 놓은 당근과 비벼준다.
6. 김을 꺼내서 준비된 재료를 김으로 말아준다.
다음은 딸의 아침밥을 준비했다. 누룽지를 끓이면서 며칠 전에 담근 배추김치를 꺼내서 작게 잘랐다. 이 메뉴는 멀미를 대비해서 딸이 요구한 소풍날 아침 메뉴다.
"엄마 진짜 맛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준비했네."
누룽지에 김치를 올리면서 딸이 말했다.
"천천히 먹어. 나도 소풍 가고 싶다."
"오빠 시험 끝나면 우리 가족 모두 같이 가자."
도시락과 간식을 가방에 챙기고 소풍 룩으로 알아서 차려입은 딸은 출발을 명령했다. 집을 나와서 3분쯤 지났을까? 나는 챙기지 못한 것이 생각났다.
"아, 돗자리랑 젓가락을 안 넣었다."
"엄마 괜찮아. 돗자리는 가져온 애들이랑 같이 앉으면 되고 손은 깨끗하게 소독 티슈로 닦고 손으로 먹으면 된다니까."
내가 대책을 세우기도 전에 다 해결할 방법을 제시했다.' 다 컸다.'
딸을 학교에 내려주고 나니 '온수를 챙길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우리 딸은 냉수에 김을 불어서 온수로 만들어 먹을 것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싸다 만 김밥을 다 쌌다.
식구들 김밥은 식탁에 차리고 직장동료들 김밥은 도시락에 넣어서 가방에 넣었다.
"진짜 맛있어요. 요즘 어떤 엄마가 김밥을 사주지 싸줘요. 역시."
동료들의 칭찬에 소풍을 떠난 딸만큼이나 기분이 좋아졌다.
소풍에서 돌아온 딸이 나를 보자마자 물었다.
"엄마, 김밥 남았어? 저녁에도 또 먹고 싶어."
내가 싸준 김밥이 맛있어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한 개 두 개씩 먹어서 나는 많이 못 먹었어."
남겨 놓은 김밥을 먹으면서 딸은 오늘 소풍 얘기를 조잘조잘 떠든다.
코로나라는 낯설어서 두려웠던 시간을 보내면서 그다지 소중하지 않았던 일상의 것들이 우리에게 큰 행복을 주고 있었다는 걸 알게 해 주었다. 오늘 소풍과 김밥이 그랬다.